#예사 실종사건과는 다른 정황
집 주변 슈퍼서도 목격 안되고
대중교통, 택시 이용 전혀 없어
“동거남 싫어 도망… 얼굴에 상처”
본 사람은 없는데 소문만 무성
#단서는 없지만 희한한 우연
소문 만든 사람은 시장 모임 회원
피해자 목격 시점 등 추궁하다
아들과 렌터카로 움직인 동선에
피해자 폰 꺼진 곳과 위치 일치
#돌발상황… 예상 밖 반전
모임 회원 모자가 납치 추정
영장 발부, 집 압수수색 진행중
지켜보던 남편이 헛간서 목 매
모자도 마침내 범행 일체 자백
“이혼하려 남편과 성관계 부탁
발각되자 소문 퍼질까 두려워 살해”
검찰, 1심서 무기징역 구형
2017년 8월 10일. 이 날짜를 일단 기억해 두기로 하자. 경기 성남시에 살던 49세 여성 A씨가 “사라졌다”는 신고가 처음 경찰에 접수된 날이니까.
이날 동네 주민센터 사회복지사가 경찰로 전화를 걸어왔다. “기초생활수급자인 A씨가 생활비를 받는 날이 가까워지는데도 주민센터를 찾아오지 않고, 뭔가 수상해 집을 찾아가 봤는데 보이질 않네요. 평소에 그런 일이 없었는데 아무래도 실종된 것 같아요.”
곧장 경기 분당경찰서가 나섰다. 실종을 전담으로 하는 여성청소년수사팀에게 사건이 맡겨졌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A씨 행방을 쫓는 경찰이 들은 상당수는 “워낙 평소에도 집을 나가서는 잘 들어오지 않았다” “곧 돌아올 테니 너무 요란스럽게 찾을 필요 없다” 등 무관심이 잔뜩 묻어나는 증언들이었다. A씨는 그렇게 어디에나 있을 거 같았지만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 존재였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수사에 진척이 없자 살인 같은 강력범죄를 전담하는 형사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단순 실종으로 보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얘기가 조금씩 나왔다. 여성청소년수사팀에서 그간 조사했던 기록이 형사과로 넘어갔다.
일단 기록에는 ‘생활 반응’이 보이지 않았다. A씨가 사는 곳 주변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이라도 가는 걸 봤다는 증언이 나올 법한데, 없었다. 혹시 주거지를 떠났다면 택시를 타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모습이 포착돼야 하는데, 없었다. 집에는 분명 없는데, 집밖에서 그를 본 사람도, 없었다. 예사 실종 사건은 아닌 듯 했다.
사건은 강력5팀이 전담하기로 했다. A씨 행적을 다시 찾아 나섰다. A씨 주변인의 얘기가 가장 많이 들려온 곳은 ‘모란시장’이었다. “모란시장 모임이 있는데 거기서 사람들을 항상 만난다”는 말이 여러 번 겹쳐 들려왔다. 경찰은 장날에 맞춰 모란시장을 찾았다. 역시 A씨를 둘러싼 이런저런 소문이 시장 안을 가득 맴돌았다. “A씨가 동거남과 살기 싫어서 경기 광주시 쪽으로 도망을 갔다네” “도망 가기 전에 얼굴에 상처도 나 있다네” 등등.
팀장 김광식 경위는 소문 ‘내용’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그런 얘기를 하고 다닌 ‘생산자’가 궁금했다. “성남이 아닌 광주시라는 구체적인 장소가 등장한 거야. 이 소문을 누가 만들어서 얘기하고 다녔는지 찾아보자. 그 사람이 정말 A씨가 광주시로 가는 걸 보지 않았을까?” 팀원들이 고개를 끄덕했다. “소문을 만든 사람을 빨리 찾아봅시다.”
소문의 꼬리를 붙잡고 몸통인 ‘시작’을 쫓아갔다. 말 속에 등장하는 ‘동거남’을 만나는 게 먼저였다. “소문만 놓고 보면 동거남이 A씨를 폭행하고 그것 때문에 A씨가 도망간 꼴이었으니까요.”(김 경위) 참고인으로 나타난 동거남은 손사래를 쳤다. “그런 일은 없었어요. 나도 소문을 일방적으로 듣는 입장입니다.” 너무나 완강했다. 하지만 그의 말 속에서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다. “시장에서 만나는 모임이 있는데요. 이모(56)씨라는 여자도 거길 나오는데, 그 사람이 이 말을 하고 다닙디다.”
경찰을 만난 이씨는 덤덤했다. “7월 14일에 모란시장 입구에서 직접 본 적이 있었어요.” A씨가 사라지기 한달 전쯤이다. “그 사람이 저한테 와서는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나 도망쳐서 지금은 광주에 있어’라고.” 한마디가 덧붙여졌다. “근데 7월 19일이었나, 그 다음주에도 시장에서 만났어요.” ‘동거남을 피해 광주시로 갔다’던 A씨가 5일장이 서는 날이면 성남으로 찾아왔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씨 말고는 A씨를 본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14일에도, 19일에도 A씨를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씨 말대로면 다음 장날인 24일에도 시장에 모습을 드러냈을 텐데, 이날은 이씨마저도 “A씨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휴대폰 기록을 뒤져봤다. 14일을 끝으로 A씨 휴대폰은 꺼져 있었다. 장소는 뜻밖이었다. 성남시가 아닌 남양주시 어디쯤이었다.
김 경위 머리 속에서 ‘4가지 단어’가 떠나지 않았다. 생각이 거듭될수록, 단어는 더욱 선명해졌다. ‘▦14일 ▦모란시장 ▦남양주시 그리고 ▦이씨.’ 그는 일단 7월 14일 이씨가 어디에서 뭘 했는지, 행적을 따져보기로 했다.
지루한 탐문 끝에 “평소에도 장이 서는 날이면 이씨가 아들과 함께 차를 빌려 타고 나타났다”는 증언을 하나 확보했다. 실제 7월 14일에 이씨 아들이 한 렌터카 업체에서 차를 빌린 기록이 확인됐다.
차량 동선을 따라가보기로 했다. 빌린 차량을 타고 아들이 모란시장에 나타난 건 그날 낮 12시30분쯤. 다시 차량은 먼 길을 달려 오후 2시30분쯤 강원 철원군에 도착했다. “철원에 뭐가 있던 거지?” 팀원이 답했다. “이씨 전 남편이 사는 곳이네요. 모자가 같이 거길 갔거나 했나 보죠.” 수상할 게 없다는 투였다.
하지만 뭔가 수상했다. 마침 김 경위 눈에 불현듯 들어오는 게 있었다. “휴대폰 꺼진 곳, 남양주라고 했나? 기록 좀 가져와봐. 어서!” 이씨 아들이 모란시장에서 철원 쪽으로 향한 동선 위에 A씨 휴대폰이 꺼진 남양주 시내 도로 위치를 올려놓았다. 예감대로 둘의 위치가 정확하게 겹쳤다.
다음 차례는 명확했다. 이씨 아들을 찾았다. “차 빌려서 철원군에 간 게 언제죠? 혹시 7월 14일 아니에요?” 질문을 굳이 에두를 이유가 없었다. “14일에는 안 갔고, 그 이후로 두세 번 정도 갔는데요.” 거짓말이었다. ‘왜 거짓말을 합니까’라고 추궁할, 14일 차량 기록이 손 안에 있었지만 김 경위는 한 발 물러서기로 했다. 이 사건이 단순 실종이 아니라는 확신을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성과는 충분했다. ‘이씨 모자가 A씨를 차에 태워 철원으로 데려가 해를 가했을 것이다.’
확신은 있었지만 뒷받침할 단서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정황만 가득했다. 참고인 조사와 이들 주변 탐문조사는 더 이상 하는 게 무의미할 만큼 충분했다. “모험을 강행할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김 경위가 당시를 떠올렸다.
‘A씨 감금 혐의’로 이씨와 이씨 아들에 대해 체포영장을 신청했다. 철원군 이씨 남편 집에 대한 압수수색영장도 함께 신청했다. 다행히 검찰은 “A씨 찾을 수 있죠”라며 법원에 영장을 모두 청구해줬고, 11월 24일 법원에서 영장이 발부됐다.
나흘 뒤 영장 집행은 일사천리였다. 이씨 남편 집에선 압수수색과 함께 ‘혈흔반응’ 조사도 이뤄졌다. 남편이 안절부절하며 집 안을 헤집고 있는 경찰을 지켜보고 있었다.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한창 압수수색이 진행되는 와중에 “화장실을 갔다 오겠다”고 자리를 비운 남편이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았다. 현장의 모든 경찰 인력이 그를 찾는데 투입됐다. 그리고 집 근처 헛간에서 목을 매 숨진 남편이 발견됐다. 피의자도 아닌, 압수수색 대상지에 사는 사람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는 수사 경력이 많은 고참 형사들도 겪어보지 못한 경험이었다.
이씨 모자의 진술이 사건 해결의 핵심 열쇠였다. 조사를 받는 둘은 처음에는 횡설수설로 일관했다. 그러나 명확한 기록 앞에 대부분 용의자는 무너지기 일쑤다. 이씨 아들의 7월 14일 동선과 A씨 휴대폰이 꺼진 위치, 그리고 이씨가 이날을 콕 집어 소문을 내고 다닌 점 등을 근거로 추궁하니, 이씨가 먼저 무너졌다. “저와 제 아들이 A씨에게 수면제를 먹여서 철원군으로 데려갔고, 잠든 A씨를 남편과 아들이 묻었습니다.” 이씨는 A씨를 묻은 장소까지 정확히 짚어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이씨가 지목한 장소를 수색했다. “나왔습니다! 나왔습니다!” 수색 인력들이 땅을 약 50㎝ 정도 팠더니 사람 형태로 보이는 물체가 조금씩 드러났다. 흙을 걷어내자 땅속에서 무릎을 굽히고 옆으로 누운 상태의 A씨 시신이 보였다.
둑이 한번 터지자 이씨와 이씨 아들은 구체적으로 범행 경위를 술술 털어놨다. 이씨는 7월 14일 그날, 아들이 빌려온 차에 함께 타 모란시장 입구로 가 장날이면 나타나는 A씨가 오기를 기다렸다. A씨가 나타나자 이씨는 “잠시 할 얘기가 있다”고 차에 태운 뒤, A씨가 평소 즐겨 마시던 ‘커피’를 건넸다. 이씨가 먹던 불면증 약에서 골라낸 ‘수면제’ 20알을 녹여둔 커피였다. 철원으로 향하는 중 이씨는 남양주시쯤에서 A씨 휴대폰을 꺼버렸다. 수면제 성분에 A씨는 철원에 도착한 뒤에도 잠에서 깨질 못했다. 이씨와 그의 전 남편, 아들 셋이 집에서 약 1㎞ 떨어진 밭에 묻었다. 죽은 게 아닌 잠든 A씨 위로 흙이 덮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A씨 코 안에서는 ‘흙’이 발견됐다. 묻힌 뒤에도 얼마 동안 ‘숨을 쉬었다’는 증거다.
범행 동기는 사소했다. “A씨와 10년 알고 지낸 사이인데, 2016년 6월쯤인가 A씨 부탁으로 A씨 집에서 물건을 챙겨 가져다 줬습니다. 이 과정에서 A씨 동거남이 저를 절도범으로 경찰에 신고했어요.” 이 일로 경찰에 입건된 이씨는 벌금 100만원을 내야 했다. ‘앙심을 품고 살해하기로 했다’는 얘기다.
그래도 ‘이씨 남편의 죽음’이 영 석연치 않았다. 김 경위는 피의자도 아닌 그가 왜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씨에게 범행 동기와 남편의 죽음을 다시 묻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진짜’ 범행 동기는 따로 있었다.
“몇 년 전부터 남편과 별거해왔고,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이런 남편과 이혼하려고 A씨를 이용해야겠다 마음을 먹었어요. 2016년 5월쯤 A씨에게 남편과 성관계를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A씨와 남편이 성관계를 맺게 되면 이를 빌미로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할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A씨 동거남이 이 사실을 알고 저에게 ‘왜 내 동거녀에게 그런 일을 시켰냐’고 따졌고, 주변으로 이런 얘기가 퍼져나갈까 두려웠어요. ”
경찰은 이씨와 이씨 아들을 살인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고, 얼마 전 검찰은 1심 재판에서 이들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재판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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