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손으로 끝난 탐문수사
신발 없어 타살에 무게 뒀지만
키 163~170㎝, 20 30대 추정
특이점 없는 평균적 여성 모습
제보도 들어오지 않아 공개수사로
어른 키만큼 겅중 자란 갈대가 우거져 있었다. 1994년 시화호 방조제 물막이 공사로 5,600만㎡ 개펄이 메워지면서 섬은 마침내 육지가 됐다. 경기 화성시 송사면 우음도. 사람들은 그 전보다 쉽게 그 곳을 오갈 수는 있었지만, 그리 즐겨 찾지는 않았다. 가끔 찾아오는 이들이 있었지만, 인적이 드문 곳만을 골라 누드 사진 같은 걸 찍으러 오는 모델과 사진가들 정도였다.
2008년 11월 4일, 겨울을 담은 바람이 조금씩 불기 시작했다. 굴삭기 기사 장모씨는 섬 갈대밭 옆 고속도로 공사장에서 크고 둔탁한 운전대를 이리저리 돌리며 갈대숲을 밀어내고 있었다. “처음에는 동물 뼈인가 했죠. 근데 한눈에 봐도 모양이 심상치가 않은 거라. 대수롭지 않게 치울 일이 아니다 싶어 바로 경찰에 신고를 했던 거죠.”
하필 화성이었다.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그 곳에서 부녀자 10명이 잇달아 살해됐다. 범인이 누군지도 모른 채 사건은 점점 공포가 돼 갔다. 2006년 12월과 2007년 1월 사이에는 화성과 군포 등 경기 서남부 지역에서 부녀자 3명이 살해된 또 다른 연쇄 살인 사건(뒷날 범인은 강호순으로 밝혀졌다)이 발생했다. 화성 일대에는 ‘네 번째 희생자가 나왔다’는 말이 무겁게 깔려 퍼져나갔다.
지역을 관할하는 화성서부경찰서에 비상령이 떨어졌다. 4월에 개소한 신생 경찰서가 맡은 첫 강력사건이었다. “백골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기는 했지만, 사망한 지 얼마 안 됐을 거라고 추정을 했어요.“ 현장에 도착한 강력2팀장 홍승만 경위는 그렇게 말했다. “여름 같은 때는 1~2개월만 지나도 부패가 빠르게 진행되는 법입니다. 게다가 아무래도 공기가 안 통하는 갈대숲이니까 부패 속도가 다른 곳보다 빠를 수밖에 없었을 텐데, 시신 부패 상태를 볼 때 갈대가 성장할 무렵인 4~5월 무렵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을 한 겁니다.”
시신을 포함해 현장 감식을 해봤지만 큰 소득은 없었다. 회색 니트와 운동복 바지, 수건 두 장과 흰색 꽃무늬가 달린 검정 브래지어 정도가 경찰 손에 들어왔다. 그나마 피해자가 신발을 신고 있지 않다는 것, 현장 주변 어디에서도 신발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은 의미가 나름 있었다. “자살이 아니라 타살일 가능성이 높다는 걸 없어진 신발이 말해줬던 거죠.” 피해자가 갈대숲 한가운데까지 맨발로 걸어 들어왔을 리는 없고, 그렇다면 누군가 맨발 상태인 시신을 옮겨와 버렸을 공산이 크다는 추정에 힘이 실렸다. 때마침 근처에서는 시신을 옮기는 데 사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여행가방이 발견됐다.
#국과수 소견에 수사 급물살
“광대뼈 축소 수술 흔적 보인다”
성형외과 1700여 곳 탐문수사
대상자 1949명 추려 일일이 전화
실종, 가출 28명 중 ‘DNA 일치’ 찾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1차로 파악한 시신 신원은 키 163~170㎝ 무렵의 20대에서 30대 초반 여성이었다. 두개골의 울퉁불퉁한 정도(요철)가 심하지 않고 두께가 얇은 것이 남성보다 여성일 가능성이 높았다. 엉덩이뼈 역시 분만을 위해 남성의 것보다 튼튼하고 폭이 넓은 전형적인 여성이었다. 치아 발달 상태와 43.6㎝ 정도 되는 양쪽 대퇴골을 근거로 나이와 키를 파악할 수 있었다.
“화성부터 안산 일대까지 경찰에 접수된 실종·가출자와 파악된 정보를 하나씩 대조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근데 별다른 성과는 나오지 않았어요. 키가 163~170㎝ 정도 되는 20, 30대 여성이 어디 한 둘이어야 말이죠.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사실상 대한민국 여성의 평균 수치에 가까웠으니까요.”
현장에서 발견된 옷가지가 만들어진 곳, 만들어진 뒤 유통되는 과정을 역추적해보기도 했다. 중국에서 대량 생산된 제품이라 파악하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차라리 명품이었다면 판매처를 통해 구매자를 추려보는 것도 가능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탐문수사를 병행했다. 동네 사람들은 한결같이 ‘거기는 사람이 가는 장소가 아니다’라는 말을 할 뿐이었다. 수상한 사람을 봤다는 사람도, 만났다는 사람도 없었다. 인근 논에 물을 대기 위해 새벽에도 나간다는 한 부지런한 동네 주민은 ‘외지인이 눈에 띈 적은 전혀 없었다’고까지 했다. 어느덧 보름의 시간이 훌쩍 지났고, 수사는 결국 신고보상금(500만원)이 박힌 전단을 살포하는 공개수사로 전환됐다. 하지만 제보는 실망스러웠고, 그렇게 또 2개월이 지났다.
국과수로부터 부검 소견이 전해졌다. 앞서 받은 간단한 간이 부검보고서를 보다 상세하게 설명하는 부검 결과가 담겨 있었다. “양쪽 광대뼈 부분에서 일정한 두께로 절단한 흔적이 보입니다. 광대뼈가 머리 안쪽으로 휘어있는 걸로 봐서는, 광대뼈를 축소하는 수술을 받은 것 같습니다. 성형수술이요.”
피해자 범위가 광대뼈 축소 수술을 받은 여성으로 좁혀졌다. 게다가 안면윤곽 성형수술은 고난도 수술이었다. 대형병원이 아니고서는 함부로 시술할 수 없다는 뜻이다. 수사팀이 화성과 가까운 수원과 안산, 그리고 우리나라 성형외과 중 대다수가 몰려있다는 서울 강남의 성형외과 탐문에 투입됐다. 이들이 거쳐간 성형병원만 1,700여 곳. 수사팀은 그 중에서 강남에 밀집해 있는 572곳 성형외과를 중점으로 파고 들어갔다.
쉽지 않았다. “성형수술을 받았다는 흔적은 명확했지만 성형외과에서는 도통 개인정보를 내주려 하지 않았어요. 게다가 누가 봐도 남루한 옷차림의 시골 형사들이 들이닥쳤으니 상대조차 안 하려고 하더군요.” 홍 경위가 말했다. 어쩔 수 없이 영장이 필요했다. 압수수색영장을 일일이 발부 받아 병원을 찾았다. 떨떠름하던 병원 직원과 원장들이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장사에 방해가 되는 형사들이 병원을 들쑤시게 두는 것보다는 차라리 정보를 내주는 것이 낫다고 본 거겠죠.”
그제서야 수사의 물꼬가 터졌다. 성형외과 원장들이 회원으로 가입해 활동하고 있는 홈페이지에 절개된 자국이 나타난 피해자 두개골 사진을 올렸다. 같은 안면윤곽술이라도 의사마다 시술법에 차이가 있었다. 절개 흔적만 보면 자신이 한 수술이라는 걸 알아챌 수도 있을 거라는 기대였다.
#용의자와 기나긴 줄다리기
유흥주점 근무 동료 증언에
동거남 조사했지만 발뺌만 계속
팔아버린 차량서 숨진 여성 혈흔
돈 이체 기록 내밀자 고개 숙여
“생활비 문제로 다투다 그만…”
살인ㆍ사체유기로 무기징역 선고
그렇게 최근 3년간 안면윤곽 성형수술을 받은 20, 30대 여성을 추려낼 수 있었다. 1,949명이라는 숫자가 잡혔다. 연락처를 확보하고, 일일이 생존 여부를 확인하면서 명단을 다시 작성했다. 연락이 닿지 않는 사람들, 실종이나 가출신고가 들어온 사람들이 적혀 내려갔다. 명단 작성 완료 뒤 수사팀에는 총 28명의 여성 이름과 정보가 공유됐다.
명단 속 여성을 탐문하던 도중, 5년째 연락이 끊겼다는 곽모(30)씨 부모와 연락이 닿았다. “연락 끊고 산 지 오래됐어요. 어디서 뭐 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르니 당연히 가출 신고도 안 한 건데.” 곽씨 어머니는 딸이 강남의 한 유흥주점에서 일하고 있었다고 무심하게 전했다.
1월 21일. 국과수로부터 보고서가 도착했다. 혹시 몰라 비교를 요청했던 곽씨 어머니와 백골시신 뼈에서 추출한 DNA를 비교 분석한 내용이었다. 결과는 ‘일치’였다. 2006년 3월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거주하며 압구정동에 있는 성형외과에서 안면윤곽수술을 받은 30대 여성이, 2년 뒤 집에서 멀리 떨어진 화성의 갈대밭에서 백골로 발견된 것이다.
본격적으로 범인을 찾아 나설 차례였다. 곽씨가 일한 유흥주점 동료들은 곽씨가 당시 동거 중이었다는 말을 전했다. 곽씨 집 폐쇄회로(CC)TV를 분석해보니 동거남은 고모(34)씨로 확인됐다. 확실한 증거는 없었지만, 유력한 용의자가 등장했다.
꼬리는 쉽게 밟혔다. 2007년 10월쯤 고씨는 중고차매매센터를 통해 그랜저XG를 처분했다. 경찰은 부모의 증언, 업소 동료들 진술을 토대로 곽씨가 그 해 5월쯤 실종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었다. 만일 고씨가 범인이라면, 차량에는 흔적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컸다.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대단한 희망이 보였던 건 아닙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중고차를 샀다면 분명 새 주인이 세차를 꼼꼼히 했을 테고, 증거들은 다 사라졌을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아주 작은 희망을 품고, 경찰은 새로운 차 주인이 살고 있다는 남양주로 향했다.
새 주인은 흔쾌히 경찰 차량 조사에 응했다. 차량 좌석과 바닥, 어디에도 이렇다 할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트렁크 깔판을 벗겨내고 루미놀 시약을 발랐을 때, 기역(ㄱ)자 모양으로 흩뿌려진 하얀 자국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혈흔이었다.
예상대로 곽씨 혈흔이었다. 게다가 곽씨 소유의 오피스텔과 휴대폰을 해약하고 해지한 것이 고씨였다는 게 드러났다. 고씨 계좌에는 곽씨 계좌에서 6,000만원이 이체된 기록이 남아 있었다. 곽씨 시신이 발견된 지 석 달이 지난 2009년 2월 2일. 경찰이 고씨를 시흥에 있는 집 앞에서 체포했다.
고씨는 발뺌했다. “동거한 건 맞아요. 같이 살다가 사이가 틀어져서 헤어졌습니다. 그 이후 소식은 모릅니다.” 부인은 완강했지만 경찰이 내놓은 증거 앞에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차량에서 발견된 곽씨 혈흔과 6,000만원 이체 사실 앞에서 고개를 떨궜다. “우발적이었습니다. 다투다, 싸우다 그렇게 됐습니다. 무서웠습니다.”
고씨는 곽씨가 일하던 유흥주점 단골손님이었다. 한때 성인도박 사이트 운영 등으로 제법 돈을 벌면서 주점을 제집처럼 드나들었고, 둘은 자연스레 연인관계가 됐다. 고씨는 곽씨 환심을 사려고 술값으로 한 달에만 1억원 넘게 쓴 적도 있다. 그러나 둘이 살림을 합친 뒤 고씨 사업은 점점 기울었고, 채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2007년 5월이었다. 평소처럼 생활비 문제로 시작된 다툼은 몸싸움으로 이어졌고, 벽에 머리를 부딪힌 곽씨가 피를 쏟아내며 정신을 잃었다. 화가 난 고씨는 목을 졸랐다. 함께 산 지 고작 6개월 만에 벌어진 비극. 고씨는 시신을 여행가방에 넣어 차 트렁크에 실은 뒤 우음도로 향했다. 평소 고씨가 낚시를 즐기던 곳이었다. 경찰은 고씨를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법원은 고씨의 혐의를 모두 인정, 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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