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북동부 신생독립국 소말릴란드
모바일 머니 ‘자드’, 인구 4분의 1이 사용
초인플레ㆍ경제적 고립에 빠르게 보급
모잠비크, 모바일메신저 ‘마약 유통’ 악용도
“저는 월급을 (휴대폰 결제 수단인) ‘자드(Zaad)’로 받아요. 현금은 자드를 쓸 수 없는 곳에서만 사용하거든요. 자드가 더 편해요.”
미래 사회의 이야기도, 첨단 정보통신기술(IT) 사업이 발달한 나라의 이야기도 아니다. 아프리카 대륙 북동부에 위치한 신생독립국 ‘소말릴란드’의 수도 하르게이사에 있는 한 슈퍼마켓 점원 카심 알리의 말이다. 1991년 소말리아로부터 분리 독립을 선언한 소말릴란드는 현재 국제사회로부터 정식 국가로 인정받지 못한 ‘미승인 국가’다. 다른 아프리카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만성적 빈곤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카심처럼 현금 대신 모바일머니 ‘자드’를 사용하는 사람은 전체 인구(350만명)의 25% 정도인 85만명에 달한다. 서방 선진국은 아직 시기상조라 여기는 ‘현금 없는 경제’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셈이다.
모바일 머니(Mobile Money), 가상 화폐, 보안 채팅 등 최첨단 암호화 기술을 접목한 거래ㆍ통신수단이 선진국보다 낙후한 저개발 국가에서 먼저 보편화하는 ‘역설’이 빚어지고 있다. 애당초 기본적인 금융ㆍ통신 인프라조차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던 만큼, 일단 유입되기 시작한 첨단 기술이 국민들의 일상 생활에 빠른 속도로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소말릴란드는 살인적인 초인플레이션과 경제적 고립 상태가 이러한 변화를 가져다 준 경우다. 이 나라는 독립 후 ‘소말릴란드 실링’이라는 자체 통화를 발행했지만, 환율이 ‘1달러=1만실링’일 정도로 화폐 가치가 낮다. 커다란 돈 자루에 넣어도 몇 달러 밖에 안 돼 불편할 뿐이다. 그런 탓에 2009년 한 통신사가 출시한 모바일 머니 ‘자드’(소말리어로 ‘성장’이라는 뜻)가 10년 만에 사실상 현금을 대체하고 있다. WSJ는 “이 나라 국민 1인당 자드 결제는 매달 35건”이라며 “자드 없이는 현금의 유통 자체가 힘들어진다”고 전했다.
극심한 경제난에 빠진 중남미의 대표적 산유국 베네수엘라도 원유 기반 암호화폐 ‘페트로’를 실물 경제에 적극 활용 중이다. 일데말로 빌라로엘 주택장관은 지난 5일 “노숙자의 주거지 건설 기금 마련을 위해 페트로를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경제 제재가 변수이긴 하지만, 한때 지상 낙원이라 불릴 정도의 자원부국이었음에도 IT 인프라가 취약했던 이 곳에서 가상화폐 시장이 성장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첨단기술이 가뜩이나 힘든 나라에 그늘을 더 드리운 경우도 있다. 영국 BBC방송은 10일 모바일 메신저 ‘왓츠앱’이 급속 보급된 덕분에 순식간에 마약유통대국이 되어버린 아프리카 모잠비크 사례를 보도했다. 인터넷 사용 범위가 모잠비크 북부 지역으로 확대된 가운데, 마약 브로커들이 문자 송ㆍ수신 주체, 위치 추적 등이 불가능하도록 암호화 기술이 적용된 왓츠앱이 보편화한 점을 악용해 이 나라를 헤로인 등의 새로운 국제거래 거점으로 바꿔 놓았다는 설명이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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