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일본문화를 말할 때 ‘오타쿠’를 빼놓을 수 없다. 오타쿠란 만화 게임 등에 각별히 몰두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하지만 오타쿠는 한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덕후’가 그것이다. 우리 사회에선 ‘덕후’를 특수한 부류의 사람들로 바라보는 경향도 있지만, 오타쿠든 덕후든 사람이 아닌 특정한 문화 소비 방식으로 본다면 그런 경향은 우리 생활 깊은 곳까지 들어와 있다.
오타쿠들의 소비방식의 특징은 ‘2차 창작’이다. 2차 창작이란 원작을 재해석해서 제작돼 코믹마켓 등에서 교환ㆍ매매되는 창작물이다. 예컨대 창작만화 등을 실은 동인지나 동인 게임, 피규어 등이 대표적이다. 2차 창작은 단순 모방과 달리 주로 원작 속 특정 캐릭터를 원래 이야기로부터 떼어내어 별도의 이야기나 세계관과 연결시켜 표현한다. 달리 말해 2차 창작은 문화에 대한 일종의 탈맥락적 소비인 셈이다. 이러한 소비경향은 정보의 데이터베이스화와 정보 편집기술 보급으로 더욱 촉진된다. 인터넷 커뮤니티나 유튜브 같은 영상 데이터베이스가 여기에 해당하는데, 그곳엔 사람들의 주목을 끌만한 2차 창작물이 넘쳐난다.
이러한 탈맥락적 소비는 사람들의 지식과 정보에 대한 태도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어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가치가 있거나 생활에 필요한 정보가 모였다면, 오늘날 정보수집의 주요 동기는 바로 나의 관심이다. 이를 입증하듯 인터넷 공간에는 무수한 개인 블로그가 존재한다. 여기에는 과거엔 일기처럼 남몰래 기록될 내용들이 아무렇지 않게 공개된다. 블로그에 실리는 정보들은 대개 낮은 가치에 비해 거기에 투여된 주관성의 강도가 높다는 점이 특징인데, 달리 말하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진 않아도 사적 관심이라는 이유로 정보가 집적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이러한 변화된 사람들의 태도에 맞춰 특정 정보에 집중해 맞춤형으로 제공되는 미디어 서비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필자가 즐겨보는 모바일 콘텐츠 시장에는 특정 포지션 선수 움직임만 여러 각도에서 찍은 영상을 제공하거나 선수들의 플레이를 반복해서 볼 수 있는 프로야구 앱이 출시돼 있다. 골프 중계도 자신이 좋아하는 인기 선수만 골라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면서 볼 수 있는 골프 앱도 있다. 이는 승패를 둘러싸고 전개되는 스포츠라는 드라마에서 선수라는 캐릭터를 분리시켜 그 자체로 소비할 것을 직접 유도하고 있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는 일본보다 짧지만, 인터넷으로 야구중계를 보려면 돈을 지불해야 하는 일본에 비해 오타쿠 문화를 향유하는 측면에선 한국이 앞선 것 같다.
지식과 정보에 대한 오타쿠적 태도에는 분명 어떤 ‘가벼움’이 느껴진다. 교양과 실용성의 관점에선 비판받겠지만, 이러한 비판이 오타쿠 문화가 일상화되고 점점 익숙해지는 경향을 막을 순 없을 것 같다. 오늘날 우리를 둘러싼 정보와 미디어 환경은 일상적으로 2차 창작과 탈맥락적 소비를 권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타쿠적 소비 문화는 IT기술의 발달과 함께 더욱 일상 깊숙히 파고들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타쿠는 더 이상 특정 부류 사람들만이 즐기는 문화를 일컫는 말이 아니다.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며, 이것이 현대 소비사회의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이다.
서동주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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