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입양 건의 거부되자 연구원들이
동물단체와 연계 ‘극적인 구출작전’
한해 실험용 동물 308만 마리 달해
지적재산 유출 우려ㆍ비용 등 문제로
회복 잘된 경우도 대부분 안락사
#2
좁은 케이지에 갇혀있다 실험대로
운 좋게 연구실 탈출한 실험견도
반복적 불안감 겪은 트라우마에
짖지도 않고 제자리만 빙빙 돌아
#3
최근 “과학만큼 동물복지도 중요”
농약 섞은 사료 실험견 먹이기 등
불필요하고 지나친 실험 자제 나서
“선생님! 강아지들이 사라졌어요!”
서울 지역 모 기관의 한적한 연구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흰 가운을 입은 두 명의 연구실 소속 박사들이 달려와 숨을 몰아쉬며 소리쳤다. 며칠 뒤 안락사시킬 예정이던 비글 견 세 마리가 자취를 감췄다. 한낮의 ‘비글 실종사건’을 보고받은 연구소장의 낯빛은 납빛이 됐다. 그깟 개 세 마리가 사라진 걸 두고 왜 이렇게 호들갑일까 싶지만, 실험실의 비글은 이들 연구자에겐 전 재산과도 같아서다. 실험은 마쳤지만 실험의 목적인 논문 작성은 이제 막 시작한 상황. 논문을 마치는 데 길게는 3년이 더 걸린다. 그 전에 사라진 비글들이 경쟁 관계에 있는 연구소에 노출된다면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담 밖으로 사라진 비글은 연구소의 영업기밀인 지적재산 그 자체이다. 안타깝게도(?) 연구실 직원들이 몽땅 뛰어나가 비글을 찾아 헤맸지만 끝내 허탕을 쳤다. 연구실은 북새통이 됐지만, 어쨌든 비글들은 생명을 구했다.
연구자들 입길에 거듭 오르내리는 올해 초 ‘비글 실종사건’의 내막은 놀랍게도 해당 연구소 직원과 동물보호단체가 미리 준비한 ‘연극’의 결과였다. 비글 초롱이(가명)와 3년간 여러 실험을 함께한 연구자 양수진(가명ㆍ38)씨는 실험을 마치고 건강을 회복한 비글이 남은 생이나마 여느 개처럼 행복하게 살기를 간절히 바랐다. 양씨는 연구소장에게 “회복한 비글들을 입양 보내자”고 건의했지만, 소장은 “모든 연구과정을 몸에 지닌 비글을 실험실 밖으로 보내는 일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결국 양씨는 ‘은밀한 작전’을 실행에 옮겼다. 비글을 일부러 잃어버린 것이다.
비글을 연구소 밖으로 내보내기 직전, 양씨와 손발을 맞춘 비글구조네트워크 유영재 대표가 연구동 담장 곁 그늘 아래에 몸을 숨기고 대기 중이었다. 첩보 작전을 방불케 하는 비글 실종사건은 유 대표가 초롱이와 비글들을 개집 안으로 유인해 현장을 떠나면서 마무리됐다. 이렇게 목숨을 구한 비글들은 충남 논산의 보호시설로 옮겨졌고, 초롱이는 지난 5월부터 새 주인인 이민승(39)씨를 만나 광주광역시 가정집에 정착했다. 넓은 공간을 걷고 뛰고 냄새 맡는 모든 일이 초롱이에겐 새롭기만 하다. 이씨는 “이제서야 초롱이가 진짜 개다운 견생(犬生)을 사는 것 같다”며 “좁은 켄넬(개장) 안에 갇혀 실험을 반복하느라 다리근육이 덜 발달한 모양인데, 어설프게나마 뛰고 수영하는 모습이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실험실을 거쳐 간 다른 비글처럼 이빨이 평평히 갈려있는 모습(연구자를 다치지 않게 인위적으로 시술한다)만 제외하면 이제 초롱이도 영락없이 평범한 반려견이다.
실험뒤 갈 곳없는 동물 연간 300만 마리
‘실험동물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 무분별한 동물실험을 줄이고 실험동물을 윤리적으로 취급하기 위한 ‘동물실험윤리제도’가 도입된 지 올해로 10년. 하지만 여전히 연구현장에서 수많은 동물이 재산권 보호라는 명목 아래 죽임을 당하고 있다. 인간의 생명 유지를 위해 필요한 동물실험. 이를 위해 지난해 기준(농림축산검역본부 자료) 국내에서 실험대에 오른 동물은 308만2,259마리에 달하며 개와 고양이 등 포유류도 3만2,832마리에 이른다. 동물을 보호하는 각종 제도가 촘촘히 마련되고 있지만 2010년 143만8,681마리가 희생됐던 것에 비하면 8년 새 2배 넘게 실험실 동물수가 급증했다.
한두 차례의 실험으로 생을 마감한 동물은 그나마 고통의 시간을 짧게 견딘 편이다. 많은 동물이 죽음보다 아픈 기나긴 실험의 터널을 지나야 한다. 재정이 넉넉한 기관에서는 계획된 실험만 마친 뒤 법률에 따라 동물을 안락사시키지만, 그렇지 않은 연구실에선 ‘상태가 좋은데 안락사시키기 아깝다’는 이유로 잘 회복한 동물이 또 다른 실험에 투입되기도 한다. 국내 한 연구기관에서 동물실험을 하는 A씨는 “실험 후 회복한 동물을 곧바로 안락사 시키지 않고 다른 실험에 투입하는 일도 적지 않다”고 털어놨다.
여러 해 실험에 투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초롱이와 비글들은 그 트라우마를 온몸으로 드러낸다. 문밖으로 사람이 지나가는 소리만 나도 짖는 개들과 달리 탈출한 실험견들은 보호소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죽은 듯 고요했다. 천성이 사람을 좋아하고 붙임성 좋은 비글이건만 초롱이는 사람을 보면 숨었다. 빙글빙글 제자리를 도는 행동도 다른 실험견들보다 오래 지속됐다고 한다. 좁은 케이지 안에 갇혀 소음과 불안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며 생긴 스트레스 장애다.
실험에 가장 많이 활용되는 실험쥐의 운명은 이보다 불행하다. 임상시험을 하지 않는 경우 독성분야에서 치료약물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설치류에 대한 독성실험 연구를 제출해야 한다. 비교적 생애주기가 짧은 쥐들은 ‘종양모델’ ‘치매모델’ ‘질환모델’ 등으로 불린다. 종종 연구자의 이름을 따서 숫자와 함께 ‘M001’ ‘M002’ 같은 이름을 붙여주기도 한다.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정준영(가명ㆍ33)씨는 “행동실험의 경우 쥐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피려면 뇌를 들여다봐야 하기 때문에 살생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국내 한 병원 동물실험실에 근무하는 이유미(가명ㆍ38)씨는 “최근에는 굳이 해부하지 않고도 살아있는 상태에서 쥐 체내에 투입한 형광물질을 핵의학 장비로 추적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수사기법을 개발하기 위해 희생되는 동물도 있다. 2016년 6월 전북 김제시 백구면. 경찰이 사람 옷을 입힌 돼지를 승용차에 태워 안전벨트를 채우더니 차와 함께 수심 5m 저수지에 빠트렸다. 잠수복을 입은 누군가는 물속으로 따라 들어가 카메라가 제대로 설치됐는지 점검했다. 4년 전 이 담수호에서 수중 시신이 발견됐지만 부패가 심해 정확한 사망시점 등을 밝히지 못했던 것. 사람과 비슷한 피부조직을 가진 돼지는 물 속에서 부패하는 과정을 통해 과학수사에 기여했다.
‘필요악’인 동물실험…입양 막는 걸림돌 많아
실험실에서 희생되는 동물을 줄이고 복지를 증진해야 한다는 논란과 동물권을 지키려는 이들 덕분에 개선은 점진적으로나마 이뤄지고 있다. 동물실험윤리제도 도입 이후 모든 동물실험 기관에 설치된 동물실험윤리위원회(IACUCㆍ윤리위)는 연구자들이 윤리교육을 이수하도록 권고한다. 실험에 앞서 ▦적정한 수의 동물을 사용할 것인지 ▦고통이 심한 실험을 할 때 진통제나 마취제를 적절하게 사용해 고통을 줄여줄 것인지 ▦어느 시점에 안락사를 시킬 것인지 등을 적은 동물실험 계획서를 제출해 까다로운 승인을 거친다.
불필요하거나 지나친 실험은 그 자체를 줄이는 추세다. 농촌진흥청은 실험견에게 농약을 섞은 사료를 먹여 장기 등에 미치는 영향을 관찰하는 1년짜리 시험을 지난달부터 없앴다. 또 지난해부터는 화장품 제조사들의 동물실험이 전면 금지됐다. 그러나 농약 섞은 사료를 90일간 반복해 투여하는 실험은 여전히 남아있다. 농약원료를 수입하는 과정에서 이미 한 차례 독성시험을 하고도 국내에서 중복시험을 해가며 비글에게 고통을 줘야 하냐는 문제제기가 계속되는 이유다.
연구실의 자산인 연구의 전 과정을 몸에 지니고 있는 실험동물을 방생하는 일이 쉽지는 않다. 법적 공백 탓이다. 현행 동물보호법 제23조 제5항은 동물실험 후 검사 결과 “(실험)동물이 회복될 수 없거나 지속적으로 고통을 받으며 살아야 할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가능하면 빨리 고통을 주지 아니하는 방법으로 처리”하도록 정하고 있다. 문제는 회복이 잘 된 경우다. 내달부터 시행되는 개정 동물보호법은 실험이 끝난 뒤 검사 결과 정상적으로 회복한 동물을 분양하거나 기증할 수 있도록 정했지만, 아직 실험 후 건강을 회복한 동물들조차 실험실에서 최후를 맞는 일이 적지 않다고 한다. 동물을 구입할 때보다 키우는 과정에서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해지기 때문에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면 오히려 학대가 될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한진수 건국대 3R동물복지연구소장은 “2005년부터 연구실 분위기에 따라 실험이 끝난 동물을 직접 키우거나 입양을 보내기도 한다”며 “다만 너무 많은 동물을 관리하는 민간 동물보호소에 가게 되면 자칫 ‘동물학대소’에 방치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험 후 회복한 동물을 입양 보낼지는 각 연구기관에 설치된 윤리위가 독립적으로 결정합니다. 해외에선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동물보호소에서 입양해 관리하지만, 재정이 부족한 민간 보호소에서 충분한 보호를 받지 못하면 오히려 동물이 고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동물들과 오랜 시간을 보낸 연구자들이야말로 미안함과 애착이 크다. 때문에 동물을 폐기처분하는 대신 ‘제2의 삶’을 살게 해주기도 하지만 예상치 못한 오해를 받기도 한다. 서울의 한 대학 연구소는 실험을 마친 동물을 동물보호소에 입양 보낸 뒤 황당한 일을 겪었다. 지도교수와 연구자들의 동의하에 실험동물을 입양 보냈는데, 보호소에서 “안락사당할 뻔한 동물을 구출해왔다”고 홍보하며 연구진의 입장이 난처해진 것이다. 이 사례를 전해 들은 한 수의대 교수는 “연구자들이 동물을 살리고 싶은 마음에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인데 마치 동물을 괴롭힌 사람으로 몰아세우면 다음에 어느 연구실에서 마음 놓고 입양을 보내겠느냐”고 하소연했다.
인류의 건강 증진을 위해 불가피하게 행해지는 동물실험은 정녕 ‘필요악’이다. 연구자들은 과학의 발전과 동물의 복지를 조화시키기 위해 동물복지를 감독하는 윤리위의 적극적 감독과 전임 수의사 배치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국 370곳에 운영 중인 윤리위는 최근 10년간 실험의 윤리성을 고려해 동물실험을 허가하는 등 실험동물의 복지 확대에 큰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아 현장에서 효과적으로 실행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소장은 “윤리위가 지난 10년간 발전했지만 독립적으로 운영되는지 장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윤리위는 기관의 동물실험을 엄격하게 관리할 수 있어야 하지만, 연구기관 내부 연구자가 겸직하는 일이 많습니다. 이렇게 되면 서로 잘 아는 동료의 연구에 대해 내부고발이 불가능해집니다. 따라서 연구기관장은 동물실험을 윤리위에 위임하는 한편 전임 수의사를 배치해 이중, 삼중으로 감시하도록 해야 독립성을 보장할 수 있습니다.”
전임 수의사의 역할은 더 있다. 현행 동물보호법은 ‘고통이 따르는 실험은 수의학적 방법에 따라 고통을 덜어주는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정하는데 전임 수의사가 실험과정에 개입해 동물의 복지를 점검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한정된 수의사 인력 탓에 먼 미래의 이야기라는 게 연구자들의 이야기다.
연구자들의 심적 내상 ‘생명의 무게’
동물실험을 하는 연구자들이 실험 후 겪는 이별의 시간은 애잔하기만 하다. 자신의 연구를 위해 고통을 감내한 실험동물을 떠나보낼 때 복잡한 감정이 뒤섞인다. 한 대학병원 동물실험실에서 근무하는 수의사 문효정(가명ㆍ35)씨는 “안락사 직전 동물과 눈을 마주치면 마음이 너무 괴롭다”며 “약물을 주입할 때 좋은 곳으로 가서 다음 생은 더 나은 환경에서 태어나길 기도한다”고 전했다.
이런 슬픔을 보여주듯 ‘안락사실’을 ‘안녕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만의 동물보호소에서 안락사를 담당하던 수의사 지안지쳉(당시 31)은 유기동물을 돌보기 위해 동물보호소에서 일을 시작했다. 안락사 시간이 다가오면 그는 개와 산책을 하고 간식을 주며 3시간씩 이별의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더 많은 개를 보살피기 위해 초과근무를 마다하지 않았다. 2015년에는 한 방송에 출연해 “2년 동안 700마리 개를 안락사시켜야 했다”며 “사람들이 동물보호소에서 개를 입양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가 비난을 받았다. 결국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그는 “너무 많은 개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유서를 남긴 채 동물 안락사용 주사를 이용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 소장은 “동물실험을 동반한 모든 연구자는 이런 심리적 고통을 겪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30년 이상 동물실험을 했지만 실험이 끝나 비교군에 있는 여러 마리 쥐를 안락사한 날은 어김없이 쥐에게 쫓기는 꿈을 꿉니다. 일종의 양심, 미안함 같은 거죠.”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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