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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종말, 그 폐허에서 예술의 의미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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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종말, 그 폐허에서 예술의 의미를 묻다

입력
2018.08.22 15:09
수정
2018.08.22 19:23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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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설치작가 문경원ㆍ전준호

11월 英 테이트리버풀 미술관서

신작 ‘이례적 산책’ 첫 공개

그림 1 11월 영국 테이트리버풀미술관에 설치될 문경원ㆍ전준호 작가의 신작 ‘이례적 산책’. 갤러리현대 제공

종잇장처럼 구겨진 폐선박 고철 더미 속 스크린. 그 화면 위로 폐허로 변한 영국의 항구도시 리버풀의 모습이 흐른다. 버려진 물건이 담긴 쇼핑 카트가 인적이 사라진 리버풀 곳곳을 누비고 다닌다.

마치 투명인간(작가)이 카트를 끌고 폐허가 된 도시를 떠돌며 버려진 물건들을 수집하는 듯한 이 영상은 미디어설치작가 문경원(50)과 전준호(50)의 신작 ‘이례적 산책’. 오는 11월 23일 영국 테이트리버풀 미술관 개관 30주년 기념전에서 처음 공개될 예정이다. 이 미술관에서 열리는 한국 작가 전시는 한국미술 그룹전(1992년), 백남준 회고전(2010년) 이후 처음이다.

‘이례적 산책’은 2012년 독일 카셀 도큐멘타 전시에서 화제를 모았던 영상 ‘세상의 저편’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다. 13분짜리 단편 영화 형식으로 제작된 ‘세상의 저편’은 지구 종말 상황에 처한 남녀 작가가 예술의 의미를 묻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례적 산책’은 ‘세상의 저편’에 등장했던 남자 작가가 시ㆍ공간을 뛰어넘어 종말 직전 영국 리버풀에 도착해 버려진 물건을 수집하는 상황을 묘사한다.

그림 2영국에서 첫 개인전을 여는 문경원(왼쪽)ㆍ전준호 작가. 갤러리현대 제공

지구 종말 직전에 이르러서는 아무 쓸모 없는 것으로 치부되던 것들이 인류의 재탄생과 함께 새로운 발명품으로 거듭난다. 작품을 위해 전세계 전문가들과의 협업을 거친 문경원ㆍ전준호 작가는 “대부분의 전문가가 공통적으로 하는 일이 ‘경계 무너뜨리기’ 였다”라며 “예술의 역할은 결국 경계를 지우는 일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입을 모았다.

문경원ㆍ전준호 작가는 2009년 의기투합했다.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예술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뉴스 프롬 노웨어(미지에서 온 소식)’ 연작을 선보여 왔다. ‘세상의 저편’, ‘이례적 산책’ 모두 이 연작 가운데 하나다. 의기투합 이유는 간단했다. 문 작가는 “스튜디오에서 혼자 작업하다 예술이 도대체 무엇이며, 예술가란 어떤 사람인가라는 회의를 느꼈다”며 “같은 고민을 하던 전 작가와 함께 모든 것이 제로 상태인 종말에서부터 답을 찾아보자는 취지로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전 작가도 “인류 종말에서 살아남은 작가와 새 인류로 재탄생한 작가의 극적 대비를 통해 예술의 의미를 묻고 싶었다”고 했다.

영국 테이트리버풀 미술관이 주목한 지점은 이들의 작업이 20세기 초 모더니즘 작가 페르낭 레제(1881~1955)에 닿아 있다는 점이다. 레제는 산업화 시대를 맞아 대체 예술이란 무엇인지를 물었던 작가다. 레제가 1919년 10명의 작가와 협업한 책 제목도 하필 ‘세상의 저편’이다. 문 작가는 “레제가 산업화 시대의 예술을 고심한 지 10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이 시점에서 살고 있는 현대 작가들 또한 같은 고민, 같은 제목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놀라웠다”고 말했다. 테이트리버풀 미술관은 문경원ㆍ전준호 작품과 레제의 작품을 함께 내건다.

강지원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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