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 영업사원이 정형외과 의사 대신 수술을 하다가 환자를 뇌사에 빠뜨리는 사고가 최근 발생했다. 성형외과에서는 마취된 환자를 두고 성희롱을 하는 등 수술실 내 문제가 이어져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라는 목소리가 높다. 경기도는 도내 공공병원 수술실에 CCTV를 설치키로 결정했다. 그러나 의료계는 의료진의 사생활(프라이버시) 침해이며 의사와 환자 간 신뢰를 무너뜨린다며 반발하고 있다.
앞서 소비자시민모임, 한국소비자연맹,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10일 공동성명을 내고 유령수술(수술 집도 의사를 환자에게 알리지 않고 다른 의사나 간호조무사, 의료기기 영업사원 등으로 바꾸는 것) 근절 대책 마련을 정부와 국회에 촉구했다.
이들 단체는 “유령수술이 서울 강남 일대 성형외과에서 비양심적인 의사들에 의해 성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2014년 4월 폭로되면서 세상에 알려졌고, 최근에는 일부 정형외과에서도 유령수술이 적발됐다”면서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는 물론 해당 의사의 면허 취소와 실명 공개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자단체연합회 관계자는 “환자 동의 하에 CCTV 촬영을 의무화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지난 19대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의료계 반대로 폐기됐었다”면서 “의료진에 대한 주취자 폭력, 인권 침해 등을 우려해 응급실에는 CCTV를 설치하면서 의료계가 수술실 CCTV 설치를 반대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경기도는 다음달 1일부터 경기의료원 안성병원 수술실 5곳에 CCTV를 설치해 시범운영에 들어간다. 도는 운영결과를 보고 내년부터 경기의료원 산하 수원, 의정부, 파주, 이천, 포천 등 나머지 5개 병원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수술실은 철저하게 외부와 차단돼 있고 마취 등으로 환자의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수술이 이뤄지기 때문에 일부 환자의 인권이 침해되는 사건이 발생할 경우 환자 입장에서는 답답하고 불안한 부분이 있었다’면서 CCTV 도입 취지를 밝혔다.
류영철 경기도 보건정책과장은 18일 MBC 라디오 ‘이범의 시선집중’을 통해 “제도 도입 전 (개인정보보호법 등 현행 관계법령에 위배되지 않는지를) 많이 검토했다”면서 “녹화는 환자가 원할 경우 의료인 동의 하에 이뤄진다. 30일간 영상을 보관하며 환자와 대리인이 요청하면 즉시 열람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류 과장은 “CCTV 하에서 수술을 처음 하는 의료인 입장에서는 많이 긴장될 것으로 생각한다. 우려되는 바가 없는 건 아니지만 제도 보완을 해 확대할 계획이기 때문에 함께 논의해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의료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성균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크게 세 가지 문제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의료진의 프라이버시 침해, 환자와 의사들간 신뢰 손상, 의사를 잠재적인 범죄자로 의식해 최선의 의료를 제공할 수 있는 기회 차단 등 부작용이 있다는 것이다. 정 대변인은 “의사들은 환자들의 비밀스러운 부분까지 접근할 수 있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윤리기준을 유지하고, (환자와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부분으로 접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정헌 기자 xscop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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