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와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이해하고 이를 초월하거나 경고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대본을 쓰고 공연으로 형식화합니다. 저는 과학자가 아니기에 조사 방법으로 예술을 사용했고, 정치인이 아니기에 지역 사회에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 예술을 사용했습니다. 음악가가 아니기에 제 연극에 음악을 포함시켰어요.”
벨기에의 배우 겸 연출가인 안느 반달렘은 세계적인 연극 축제인 프랑스 아비뇽 축제에서2016년 선보인 정치풍자극 ‘트리스테스 – 슬픔의 섬’(‘트리스테스’)으로 단숨에 유럽이 주목하는 연출가로 자리매김했다. 자신의 말처럼 반달렘 연출가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어두운 단면을 끄집어 내 풍자하며 비튼다. ‘트리스테스’와 반달렘의 극단 다스 프로일라인이 다음달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ㆍ스파프)를 통해 국내에 첫 소개된다. 현재 임신 중이라 한국을 방문하기 어려운 그를 이메일로 먼저 만났다.
‘트리스테스’는 슬픔을 뜻하는 프랑스어로 이 작품에서는 덴마크 북부의 가상의 작은 섬을 일컫는다. 섬의 주요 수입원이었던 도살장이 파산한 후 섬에는 주민 8명만이 남았다. 극우 정당인 민중각성당을 이끌고 있는 마르타 헤이게르의 어머니인 이다는 도살장의 파산과 농부 두 명의 죽음에 민중각성당이 연관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려다 살해 당한다. 마르타는 섬으로 돌아와 도살장을 스튜디오로 바꿔 정치선전영화를 촬영하자고 제의하는데, 10대 자매 두 명이 이 뜻에 동의하지 않는다. 마르타를 암살하려다 실패한 자매는 죽음에 이르고, 섬 주민들은 극한으로 몰리게 된다. 현실을 풍자하는 블랙코미디이자, 스릴러와 초자연적 이야기까지 뒤섞인 이 작품은 비현실적이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다.
반달렘 연출가는 “전 유럽에서 극단적 보수주의가 일어나는 것을 지켜보며 2013년 이 작품을 쓰기로 결심했다”며 “픽션이 현실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돌리는 정치적 무기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유럽은 반 난민주의 기류를 타고 극우 정당들이 몸집을 키우고 있다. 지난해 독일 총선에서는 ‘독일을 위한 대안’이 극우 정당으로는 72년 만에 의회에 입성했고, 프랑스에서는 마린 르펜이 이끄는 극우 정당 국민전선의 지지율이 집권여당과 비등해졌다. 최근 스웨덴 총선에서도 극우 스웨덴민주당이 원내 제3당으로 올라섰다. 반달렘 연출가는 “인간이 느끼는 행복은 자신을 보호하는 것과 연계된 것인지, 이러한 행복감은 이방인의 배제를 필요로 하는 것인지” 고민하며 작품을 썼다고 했다. “단지 소설이 아니라 현재 유럽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더 늦기 전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길 바란다”는 그의 바람은 난민 반대 목소리가 커진 한국에서도 유효하다.
반달렘의 작품이 주목 받는 건 주제의식 때문만은 아니다. 음악과 영상 등 다양한 장르를 접목한 연출기법도 호평 받는다. ‘트리스테스’에서는 무대 위에 집 모양의 세트를 설치해 관객의 시야를 제한했다. 동시에 무대 위 스크린에서는 배우들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시각의 영상이 흘러 나온다. 반달렘 연출가는 “관객의 인식에 영향을 미치고 싶을 때 카메라를 사용한다”며 “한편으로는 대조를 만들어 관객이 특정 장면에 대한 다른 인식을 갖게 만들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영상과 함께 현장에서 연주되는 음악은 작품의 긴장감을 더한다. ‘트리스테스’는 아비뇽 축제 이후 프랑스 국립극장과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국제공연축제 등에 초청됐다.
‘슬픔’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반달렘의 작품은 그 안의 작은 불빛도 분명히 전한다. 반달렘은 “청소년기가 미래를 위한 힘이자 생명력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가장 최근 작품인 ‘북극’에서 기후 변화와 천연자원 개발, 그린란드 주민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운명에 관한 지정학적 문제를 다룬다. 현실에서 논쟁이 될 사안들을 꾸준히 무대에 올리고 있는 것이다. ‘트리스테스’는 10월 27, 28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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