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를 강화한 뒤 부동산 시장에 거래 절벽이 이어지면서 양도소득세 등 거래세를 낮춰 시장의 숨통을 틔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양도세 등 거래세를 당장 낮출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게 관가 주변 분석이다.
당국이 거래세 인하에 적극 나서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공평과세’라는 문재인 정부의 조세 원칙과 어긋나기 때문이다. 정부는 그간 ‘소득과 자산간 과세형평 제고’를 조세 정책의 금과옥조로 삼아 왔다. 김태주 기획재정부 재산소비세정책관도 30일 “집값 급등 지역에 양도세를 중과하는 것은 자산으로 벌어들인 불로소득에 더 무거운 세금 부담을 지우고 과세 형평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며 오히려 양도세를 강조했다. 그는 “거래세는 장기적으로 검토한다는 방침만 세웠을 뿐 현재로선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양도세 등 거래세를 인하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에도 세제 당국의 생각은 전혀 딴판인 셈이다.
게다가 정부가 다주택자를 투기 세력으로 규정해 온 상황에서 양도세를 인하하면 결국 투기세력의 시세 차익 실현을 도와주는 꼴이 돼 버린다. 정부 방침에 따라 조정대상지역에서 다주택자의 양도세가 중과되기 시작한 지난 4월 이전 서둘러 주택을 매각한 이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
정책의 일관성이 훼손되고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점도 문제다. 그 동안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세제는 ‘보유세(종부세ㆍ재산세) 거래세(양도세ㆍ취득세) 강화 병행’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 그런데 갑자기 노선을 수정할 경우 혼선이 야기될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세금을 주택 시장 안정을 위한 수단으로 쓴 것은 지난해 8월부터다. 당시 국토교통부는 ‘8ㆍ2 대책’을 발표하면서 조정대상지역 양도세율을 2주택자는 10%포인트, 3주택자 20%포인트 중과하기로 했다. 같은 해 12월 발표한 ‘2018년 경제정책방향’에선 다주택자 보유세도 개편하겠다고 밝혔고, 이후 대통령 직속 재정개혁특별위원회와 기획재정부가 세 차례에 걸쳐 종부세 증세안을 내놨다.
그런데 조세 정책의 방향이 돌연 바뀔 경우 납세자들은 정책이 또 바뀔 것으로 보고 더 이상 정부를 믿지 않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아도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대책을 내놓은 지 1년도 되지 않은 이달 초 수정 방침을 밝히면서 정책 신뢰도가 추락한 상태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그간 쏟아낸 대책은 큰 효력이 없는 상황에서 부동산 정책의 일관성마저 깨진다면 시장의 내성만 커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도 “애초에 보유세와 거래세를 종합적으로 검토했어야 했는데 시장 반응이 없으면 또 다른 세금을 건드리는 식으로 대응해 온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양도세는 아니지만 또 다른 거래세인 취득세 인하도 당장 정부가 쓸 수 있는 카드는 아니다. 취득세는 지방세의 29.1%(2017년 잠정치)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지방 정부의 주요한 재원이다.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취득세 개편은 부동산 시장 정책뿐 아니라 중앙ㆍ지방정부간 세수 조정 문제가 함께 논의돼야 하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이 같은 딜레마에 빠져있는 가운데 야당은 정기 국회에서 거래세 인하를 본격 논의할 준비를 하고 있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시장에 매물이 나오게 하려면 거래세를 낮춰야 한다”는 입장이다.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도 최근 조정대상지역 양도세 중과를 아예 폐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세종=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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