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때 ADHD라는 것을 알았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치료를 하지 못했습니다. 충동조절이 되지 않아 사고를 치고, 집중이 되지 않아 성적이 저조했지만 부모님은 늘 ‘괜찮다.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된다’고 말씀하셨죠. 3년 전 조울증까지 생겨 하루하루 지내는 것이 고통입니다. ADHD 정말 몹쓸 병입니다. ADHD 우습게 여기면 저처럼 됩니다. 조기에 치료하는 것이 모두가 사는 길입니다.”
아동기 때 발견된 ‘성인 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장애(ADHD)’를 성인기까지 방치했다가 조울증까지 겹쳐 치료에 애를 먹고 있는 20대 남성 환자의 얘기다. 성인 ADHD 치료가 힘든 것은 질환이 의심돼도 정신질환자라는 사회적 낙인이 두려워 치료를 기피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11일 순천향대 천안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에서 만난 K(48ㆍ여)씨는 “4년 전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들이 매사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충동조절을 하지 못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 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결과 ADHD 진단을 받았다”며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아이가 대단히 산만하고 충동적이라 ADHD가 의심된다고 언질을 줬지만 ‘설마’라는 생각과 아이가 어려서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 평생 ‘정신질환자’라고 남들에게 손가락질 당하며 살 것이 두려워 치료를 기피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초등학교 때 치료를 받았으면 지금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은 되지 않았을 텐데 억장이 무너진다”고 눈물을 훔쳤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이들의 사회생활은 물론 조속한 발견과 치료 기회마저 놓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복수의 성인 ADHD 환자들은 ”최근 일부 조현병 환자가 저지른 강력범죄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정신질환자에 대한 공포감이 극도로 커져 우리를 범죄자 취급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말한다. 치료를 통해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조금씩 타인들에게 가까이 가려 해도 이들을 잠재적 강력범죄자로 생각해 맹목적 거부감을 보이는 경우가 잦다는 얘기다. 조현병은 망상과 환청의 내용에 따라 일부 폭력성이 나타날 수도 있는 반면, ADHD는 충동성이 나타날 수는 있어도 폭력적인 행동은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20대 이상 성인 환자를 발견해 치료할 수 있는 전문적인 상담시스템이 전무한 것도 문제다. 이해국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그나마 10대 환자들은 부모의 치료 의지가 있으면 지역의 정신건강복지센터나 청소년센터 등에서 상담과 검사를 통해 병원 치료가 가능하다”며 “하지만 뒤늦게 ADHD가 발병한 20대 이상 성인 환자들은 증상이 의심돼도 제대로 된 상담을 받을 곳이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결국 우울 및 조울증, 알코올중독 등 다른 정신질환이 겹쳐 문제가 발생한 후에야 너무나 늦게 치료를 받게 되고, 이런 환자들은 사회부적응 기간이 너무 오래 돼 약물치료만으로는 증상을 개선하기 힘들다는 것이다.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성인 ADHD 환자의 경우 사회불안장애와 ADHD가 공존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 경우 약물복용과 함께 심리치료를 받아야 증상개선 효과를 볼 수 있어 심리치료와 관련된 지원이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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