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스피커가 음악재생 등 단순한 기능을 제공하는 플랫폼에서 감성 교류 상대로 진화하고 있다. “사랑해” “결혼해줘”처럼 감정을 고백하는 이용자가 늘고 있고 사람의 목소리만 듣고도 이용자의 심리 상태를 파악하는 등 감정 교류를 위한 AI 기술도 급격히 발전하는 추세다.
◇심리상태 드러내는 감성대화 급증
13일 SK텔레콤에 따르면 SK텔레콤 인공지능(AI) 스피커 ‘누구’ 이용자 사용패턴 중 “좋아해” “심심해” 등 감성대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4.1%로 집계됐다. 자연스러운 대화 능력이 높아지면서 서비스 초기 2%대에 머물렀던 감성대화 비중이 2배 증가했다. 초기 60%를 차지했던 음악재생은 42%로 낮아졌다. 미국 경제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아마존 AI 스피커 ‘알렉사’에 “나랑 결혼하자” 등 대화를 건넨 이용자가 작년 한 해에만 100만명이 넘었다고 11일(현지시간) 보도하기도 했다.
SK텔레콤은 감성대화가 날씨와도 깊은 상관관계를 갖는다고 분석했다. 장마가 이어졌던 2017년 7월 대화 패턴을 살펴본 결과, 평소 대비 대화를 거는 발화량이 8% 증가했다. “사랑해” 등 긍정적 감정 고백이 8% 증가(1,179건→1,273건)했고, “잘자” 등 취침전 인사는 11%(905건→1,004건) 늘었다. 이 외에도 “심심해”(12% 증가ㆍ658건→736건), “밥 먹었니”(22% 증가ㆍ303건→307건), “남자친구 있니”(29% 증가ㆍ276건→356건) 등 감성 대화가 늘었다.
반면 장마가 지난 후 찾아온 폭염에는 “짜증나” 등과 같이 상대적으로 부정적 감정을 표출하는 대화량이 22% 증가했다. “꺼져” 22% 증가(107건→131건), “더워/너무더워/왜이렇게 더워” 13% 증가(130건→147건), “너 바보지/바보야” 7% 증가(192건→205건), “닥쳐” 5% 증가(118건→124건) 등으로 집계됐다.
◇말투에 담긴 ‘기분’도 읽는다
AI 플랫폼은 데이터가 많아질수록 처리 능력을 스스로 향상하는 딥러닝 기술이 기반이기 때문에 이용자 규모가 늘고 사용 기간이 길어질수록 자연스러운 대화를 할 수 있다. ‘누구’의 경우는 국내에서 가장 먼저 출시된 AI 스피커로 출시 2년 만에 월 이용자 수가 400만명까지 증가했고 이용자와 ‘누구’ 사이 대화량은 72배 늘었다. 알렉사 이용자는 5,000만명에 달한다.
여기에 최근에는 음성인식으로 문장의 의미만 파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숨겨진 감정까지 읽을 수 있도록 기술이 발전하고 있다. 2012년부터 음성에 담긴 감정과 관련된 데이터를 축적해 온 이스라엘 스타트업 ‘비욘드버벌’은 지난해 알렉사, 애플 ‘시리’, 구글 ‘구글 어시스턴트’에 접목할 수 있는 감정 읽기 응용 프로그램을 내놨다. 사람의 목소리 억양이나 어조를 분석해 불안 분노 흥분 등의 감정을 짚어내는 게 특징이다. 아직까지는 분석에 10초 이상이 소요돼 상용화까지 이르진 않았지만, 유발 모어 비욘드버벌 최고경영자는 “디지털 세계가 사람과 기술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빠르게 바꿔갈 것”이라고 자신했다.
지난 9월 ‘삼성 AI포럼 2018’에서 인간의 감정을 파악하고 맞춤형 행동을 하는 소셜로봇 ‘지보’를 개발한 신시아 브리질 미국 MIT미디어랩 교수는 “10~20년 후에는 AI 로봇이 일상의 일부가 될 것”이라며 “인간과 자율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기술이 아이들이나 노인의 정서적 안정을 돕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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