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안을 했던 의사가 처음부터 타살을 의심했더라면 더 쉽게 풀렸을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이라도 살인 사건으로 규명이 돼 다행입니다.”
‘충남 당진 의사 부인 살인’ 사건을 경찰이 해결하는데 최초 걸림돌은 무엇보다 의사의 최초 사망진단서였다. 시신을 검안한 의사가 ‘병사’로 최초 판정을 하게 되면 가족들은 사망신고를 할 수 있고, 더불어 장례를 치를 수도 있다. 범인 A씨가 곧바로 사망한 아내를 화장시킬 수 있었던 이유다. 살인 사건의 많은 증거를 담고 있는 시신이 장례 절차를 밟고 나면, 사망 원인은 그야말로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된다.
범인이자 남편인 A씨는 바로 이 점을 십분 활용했다. 게다가 부인에게는 2016년에도 심정지라는 같은 병력이 있었다. 그 병력이 A씨의 살인 시도에 따른 것이었다는 걸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김씨가 이송된 병원에서 검안의는 이 점을 감안해 병사로 인한 사망진단서를 발급했다.
죽음은 크게 자연사, 병사 등 내인사와 외인사(외부 원인으로 사망)로 나뉜다. 평소 앓고 있던 질환으로 숨지게 되면 자연사로 처리된다. 예컨대 나이 들어 노환으로 사망하는 노인 등은 자연사다. 자살ㆍ타살ㆍ사고사 등 다른 요인으로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경우는 외인사로 분류한다.
외부 요인으로 인한 죽음이지만 그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경우는 어떨까. 통상 형사 사건에서 그러한 죽음을 ‘변사’라 한다. 변사의 처리 과정에는 경찰이 개입해 그 원인을 명명백백 밝힌다. 경찰 조사 등을 통해 원인을 밝혀지지 않으면, 아무리 유족이라 해도 장례 절차를 밟을 수 없다. 검안의가 살폈을 때 범죄 혐의점이 있을 경우 부검을 통해 정확한 사망의 원인을 밝히고 나서야 변사자의 죽음은 마무리된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사망 처리 절차를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행 의료법에 따르면 사망한 환자를 접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한의사나 치과의사도 사망진단서 발행을 할 수 있게 돼 있다. 올해 대한의사협회에 제출된 한 보고서에 따르면, 주요 대학병원 4곳에서 작성한 사망진단서 절반 가량(47.8%)에서 크고 작은 오류가 발견됐다. 서중석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은 “현재 시스템상 의사가 ‘병사’ 처리를 해버리면 되돌릴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검시관 등 법의학 전문가가 사망 처리 절차에 개입할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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