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국왕까지 나서 무마 총력… 유럽은 여전히 사우디에 부정적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비판적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이 명확한 진실규명보다는 관련국의 정치적 이해를 반영한 외교적 타협 방식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사우디ㆍ터키ㆍ미국 3국 간 논란이 정리되는 가운데 사우디 정부가 이 사건의 여파가 통제 불능수준으로 확산되지 못하도록 외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카슈끄지의 친아들 살라흐 카슈끄지를 미국으로 보내는 한편 살만 국왕이 직접 각국 수장과 통화하면서 조사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나섰다. 다만 유럽을 중심으로 여전히 사우디에 부정적인 기류도 변수로 남아 있다.
25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카슈끄지의 아들 살라흐 카슈끄지는 24일 사우디를 떠나 미국 워싱턴에 도착해 모친과 세 형제자매와 재회했다. 살라흐는 미국과 사우디 이중 국적자로 그간 부친 카슈끄지의 활동 때문에 사우디에서 출국이 금지된 상태였다.
미 국무부의 로버트 팰러디노 부대변인은 “최근 사우디를 방문한 폼페이오 장관이 살라흐 카슈끄지의 미국행을 요청했다”며 사우디의 결정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살라흐는 앞서 23일 사우디 국왕과 사실상 사우디 권력자의 그의 아들을 만났다. 이 만남에서 살만 국왕과 ‘살만의 아들, 무함마드’라는 뜻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카슈끄지 피살에 대해 위로의 뜻을 전달했다. 살라흐의 미국행은 해외 여론을 돌려세우기 위한 사우디 왕가의 의도적 조치인 셈이다. 같은 날 살만 국왕은 직접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통화해 사건 수사 진행 상황을 설명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최소한 살인사건이 발생한 터키와 배후로 지목된 사우디, 그리고 양국의 핵심 동맹인 미국 사이에서는 이 사건을 정리하는 수순에 돌입한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 검찰이 25일 최초로 ‘계획된 살해’의 가능성을 수용, 터키 정부 설명과 보조를 맞춘 게 대표적이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26일 정의개발당 행사에서 사건 관련 증거를 더 보유하고 있다며 사우디를 압박했지만, 사우디 검찰총장이 28일 터키로 입국해 검찰당국과 조사 내용을 논의할 예정이라는 사실도 공개했다..
미국 역시 지나 해스펠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25일 백악관에 수사 진행 상황을 보고하면서 터키의 수사 결과를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22일 터키를 방문한 해스펠 CIA국장은 터키 정보당국으로부터 핵심 증거인 현장 녹음을 전달받아 직접 확인했다고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가 전했다.
다만 유럽을 중심으로 한 대 사우디 압박은 계속되고 있다. 사우디를 향한 무기수출을 중단한 메르켈 총리는 25일 살만 국왕과의 통화에서 직접 카슈끄지 살해를 규탄했고, 유럽연합(EU) 의장국인 오스트리아의 카린 크나이슬 외교장관은 26일 독일 일간지 벨트와의 인터뷰에서 EU 차원의 무기 판매 중단 결정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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