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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소개하고 한국 소재 드라마 만들고... 미국서 세력 넓히는 '아시안 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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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소개하고 한국 소재 드라마 만들고... 미국서 세력 넓히는 '아시안 쿨'

입력
2018.11.01 04:40
수정
2018.11.01 09:51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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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계 배우들만 출연한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은 지난 8월 미국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킨 뒤 최근 한국에서도 개봉했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아시아계 배우들만 출연한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은 지난 8월 미국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킨 뒤 최근 한국에서도 개봉했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1. ’45 millions, 24 hours’.지난 9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의 샘 리처드 사회학과 교수는 강의실 스크린에 이 숫자들을 띄운 뒤 그 의미를 묻는 퀴즈를 학생들에게 냈다. 인종 관계 등을 다루는, 수강생 300명이 훌쩍 넘는 대형 강의 ‘SOC 119’에서였다. ‘하루에 4,500만’은 한국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이 신곡 ‘아이돌’의뮤직비디오로 유튜브에서 기록한 ‘24시간 최고 조회수’ 수치였다. 수강생 3분의 1이상은 방탄소년단을 알지 못했다. 리처드 교수는 “자신을 다문화적이라 생각하고 세계 시민이라 생각한다면 이 밴드(방탄소년단)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대학생들에게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지니려면 ‘우물’ 안에서 벗어나 세상의 새로운 흐름에 주목해야 한다는 걸 강조한 것이다. 강의 주제는 멋진 아시아 문화를 일컫는 ‘아시안 쿨(Asian Cool)’이었다.

#2. 10억달러(약 1조1,417억원)를 투자해 영상 콘텐츠 제작에 뛰어든 미국 정보통신기업 애플은한국계 미국 작가 이민진의 소설 ‘파친코’를 원작으로 역사드라마를 만든다.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간 재일동포 가족의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담긴다. 드라마 주요 인물이 한국인이라 배역은 아시아 배우들로 채워질 예정이다. 원작 소설은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와 영국 BBC에서 올해의 책으로 꼽은 화제작이다. 원작이 영미 문단에서 반향을 낳았다지만 애플이 한국의 역사물 제작에 나선 것은 파격이라는 평가다.

넷플릭스에서 최근 인기몰이중인 캐나다 공영방송 CBC 제작 드라마 ‘김씨네 편의점’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에서 최근 인기몰이중인 캐나다 공영방송 CBC 제작 드라마 ‘김씨네 편의점’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한국 아닌 미국 회사가 기획하는 ‘K콘텐츠’

K팝부터 드라마까지. 한국 문화의특성이 새겨진 ‘K콘텐츠’가 미국에서 세를 넓혀가고 있다. 이전까지는 ‘굿닥터’ 등 한국에서 인기를 끈 드라마나 영화를 미국 유명 방송사나 영화사가 판권을 수입해 리메이크하거나 미국 영화나 드라마에 한국배우가 출연하는데 그쳤다면 요즘엔 다르다. 한국인을 중심에 둔 소재이거나 미국회사가 기획 단계부터 제작을 주도한 K콘텐츠가 각광받고 있다. 바야흐로 K콘텐츠 2.0시대가 열린 셈이다.

미국 콘텐츠 회사들의 한국 콘텐츠 기획은 최근 들어 두드러진다. 유튜브는 지난달 31일 한국 드라마 ‘탑매니지먼트’를 선보였다. K팝을 소재로청년들이 꿈을 향해 나아가는 내용이다. 2005년 설립된유튜브가 한국 드라마를 제작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유튜브 아시아태평양지역 총괄책임자인 네이딘 질스트라는 “한국 콘텐츠가 글로벌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K팝뿐 아니라 예능프로그램 ‘런닝맨’ 등 K콘텐츠가 해외에서 수많은 팬을 거느리며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는데 대한 대응이란 설명이다.

아이돌그룹 NCT127이 지난달 미국 ABC 유명 토크쇼 ‘지미 키멜 라이브’ 야외 무대에서 공연하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
아이돌그룹 NCT127이 지난달 미국 ABC 유명 토크쇼 ‘지미 키멜 라이브’ 야외 무대에서 공연하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

미국에선 신인 K팝 아이돌그룹 발굴에도 적극적이다. 북미 최대 라디오 방송인 아이하트는 아이돌그룹 몬스타엑스를 11~12월 뉴욕 등 6개 도시에서 열리는 연말 음악 축제 징글볼 투어에 초대했다. 또다른 아이돌그룹 NCT127은 지난달 미국 ABC의 유명 토크쇼 ‘지미 키멜 라이브’에 출연했다. 한국에서도 낯선 K팝 그룹을 미국에서섭외하는 건 이례적이다. 방탄소년단의 활약으로 미국에서 K팝 아이돌그룹에 대한 행사 초청이 부쩍 늘었다. 미국 팝스타 레이디 가가가소속된 에이전시 윌리엄 모리스 인데버와 계약을 맺은 국내 록밴드 롤러코스터 출신 DJ 히치하이커는 “미국에서 K팝은 ‘루저’가 듣는 음악이 아니라 ‘힙(Hipㆍ개성 있는)’한 문화가 됐다”며“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도 부쩍 높아진 결과”라고 말했다. 미국 내 아시아 문화의 위상과 문화 다양성 요구가 높아진 데 따른 변화라는 설명이다.

아시아계 배우가 주연인 넷플릭스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아시아계 배우가 주연인 넷플릭스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할리우드에 분 ‘아시아 열풍’

K콘텐츠의 부상은 할리우드‘아시아 열풍’과도 관련 있다. 아시아계 배우들로 구성된 로맨틱 코미디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이 8월 개봉해 3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점령하며 할리우드를 발칵 뒤집었다. 제작비 3,000만달러로 만든 이 영화는 북미 지역에서만 1억7,285만달러(박스오피스모조 지난달 29일 기준)를 벌어들였다. 로맨틱 코미디로서는 최근 10년간 최고 흥행 성적이다. 원작 작가 케빈 콴의 두 번째 소설 ‘차이나 리치 걸프렌드’를 토대로 한 속편 제작도 일찌감치 확정됐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은 세계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업체 넷플릭스와 할리우드 공룡 워너브러더스가 경쟁을 펼친 끝에 워너브러더스가 투자배급을 했다. 비슷한 시기에 한인 가족이 주인공인 추적 스릴러 ‘서치’도 개봉해 ‘아시안 어거스트(Asian Augustㆍ아시아인의 8월)’라는 말도 나왔다.

‘조이럭 클럽’(1993) 이후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까지 할리우드에서 아시아콘텐츠가 다시 나오는 데 25년 걸렸지만, 앞으로는 그 간격이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아시아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뜨겁고, 침체된 시장을 되살릴 대안으로까지 여겨지고 있다. 뉴라인시네마는 중국 배경 로맨틱 코미디 ‘싱글데이’를 제작하고, 폭스2000은 팝스타 저스틴 비버를 발굴한 유명 제작자 스쿠터 브라운과 협업해 K팝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한 대학생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 방송사들도 아시안 열기에 가세했다. 유료채널 HBO는 로스앤젤레스(LA)한인타운에 사는 한 가족 이야기를 그린 블랙코미디 드라마 ‘K타운’을 제작하고, ABC는 하와이를 배경으로 아시아계 이주민 후손을 다룬 드라마 ‘오하나’를 기획하고 있다. ‘슬리피 할로우’의 작가이자 책임프로듀서였던 한국계 앨버트 김도 한국 재벌 가족을 다룬 드라마를 준비 중이다.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에선 한국계 소녀가 주인공인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와 캐나다 CBC에서 방영했던 ‘김씨네 편의점’이 화제를 모았다.

아시아의 자본력과 미국 내 아시아인의 영향력이 강해지면서 나타난 현상이기도 하다. 코트라 뉴욕무역관에 따르면 지난해 아시아계 미국인 가구의 연평균 소득은 11만523달러(약 1억3,000만원)로, 백인 평균 8만6,221달러(약 9800만원)보다 높다. 미국영화협회는 지난해부터 아시아 관객을 백인, 라틴계, 흑인과 함께 별도 카테고리로 구분해 집계하고 있다. 2016년까지는 아시아 및 기타로 분류됐다. 지난해 아시아 관객은 전체 7%에 불과했지만,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경우 개봉 첫 주말 사흘간 아시아 관객이 38%를 차지했다. 덕분에 여름 시장 매출도 지난해 대비 12% 이상 급증했다. 미국 컴스코어의 미디어 분석가인 폴 더가라베리언은 “올여름 영화들의 성공은 다양성이 곧 훌륭한 비즈니스라는 깨달음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김철민한국콘텐츠진흥원 LA사무소장은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의 백인 편향성 논란과 유색인종 캐릭터에 백인 배우를 캐스팅하는 화이트워싱 논란 등 인종적 다양성 요구도 이런 변화를 추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에서 K콘텐츠의 유행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백인과 라틴 문화에 포섭됐던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문화적 주체성을 내세우기 시작했다”며 “K콘텐츠가 그 해방구가 됐고 아시아 문화 소비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흐름은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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