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해외 학술회의에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한국정부의 대북정책이나 전략이 무엇이냐’다. 이에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비핵화인지, 평화인지, 경협인지. 이들의 우선순위도 모르겠고, 우리 정부 정책의 최고 목표가 무엇인지 혼란스러웠다. 대통령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평화라는데 이를 어떤 전략으로 어떠한 원칙을 가지고 구현하려는지 알 도리가 없다.
그래서 자료를 검색하다 통일부 홈페이지에서 한반도정책 소개란에 들어가 봤다. 거기서 ‘문재인의 한반도정책’이라는 문구를 보고 또 한 번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문재인의 한반도정책’이다 보니 ‘문재인’ 개인의 생각을 우선 파악해야 한다는 기분에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무엇보다 언제부터 우리 정부의 대북통일정책을 개인 명의로 명명했는지 한참을 생각했다. 과거 정부의 정책에는 이름이 있었다. ‘북방정책’ ‘민족공동체통일방안’ ‘햇볕정책’ ‘평화번영정책’ ‘비핵ㆍ개방ㆍ3000’ ‘한반도신뢰프로세스’ 등 한눈에 모든 국민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명칭들이었다.
통일부는 ‘문재인의 한반도정책’을 3대 목표, 4대 전략과 5대 원칙으로 나눠 기술했다. 3대 목표는 ‘평화 최우선 추구, 상호 존중 정신 견지와 국민과 함께하는 열린 정책’의 실현이다. 이 중 상호 존중의 정신을 “북한붕괴 불원, 흡수통일 및 인위적 통일 불추구(3-No)를 통해 남과 북이 서로를 존중하고 협력하면서, ‘함께 잘 사는 한반도’를 추구”하는 의미로 설명했다. 즉, 북한의 의지와 상관없는 통일을 반대하며 공존하겠다는 의지다.
4대 전략은 북한 비핵화의 해결 방식을 정의했다. 즉, “북핵문제는 제재ㆍ압박과 대화를 병행하면서 단계적(핵동결→비핵화)으로 해결하고, 남북관계와 북핵문제의 병행 진전, 제도화를 통한 지속 가능성 확보, 그리고 호혜적 협력을 통한 평화적 통일 기반 조성”으로 설명했다. 5대 원칙은 “우리 주도, 강한 안보, 상호 존중, 국민 소통과 국제 협력”이다. 국제 협력 원칙을 “개방과 협력에 바탕을 둔 ‘열린 자세’로 국제사회의 협력 견인”의 의미로 소개했다.
여기서 언급된 “개방과 협력”은 비단 우리만이 아니라 북한에도 적용된다. 북한이 개방적이고 협력적인 자세로 국제사회와의 협력에 임할 것을 요구한다. 북한의 태도는 그러나 적극적 경협과 소극적 비핵화로 양분화되어 현실적으로 괴리감만 가득하다.
문제는 목표에서 전략까지 국민과 함께하고 국민과 소통하는 점을 강조했지만 국민이 느끼는 체감은 상당한 괴리가 있다. 왜냐면 문재인의 한반도정책이 나열한 목표, 정책과 원칙 하나하나가 상호 모순적이며 불합리해서 설득력도 없고 난해하기 때문이다. 평화 정착과 합의 통일이 목표라면 외교에서 의미하는 전략은 이를 구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말한다. 외교에서 원칙은 전략이 제대로 이행될 수 있게 제공되는 가이드라인을 의미한다.
문재인의 한반도정책의 전략은 이미 국제사회가 수용할 수 없는 핵동결을 첫 단계 조치로 규정했다. 제재, 압박, 대화를 병행한다고 하나 남북경협과 북핵문제의 병행을 추구하다 보니 지금은 국제사회에 명분과 이유도 없는 대북제재의 완화를 촉구하고 있다. 5대 원칙에서는 북핵문제를 어떻게 견인하겠다는 가이드라인이 전혀 없다.
한반도 평화번영의 주체인 ‘우리’만을 강조하다 보니 ‘우리끼리’의 소통과 공동체 구현에 초점이 맞춰진다. 이렇다 보니 북한에 ‘개방과 협력에 바탕을 둔 열린 자세로 국제협력’에 임하는 문제는 부차적이다. 이런 식의 남북관계는 결국 북한이 경제제재 완화에서 자신의 비핵화 의지의 대외 홍보까지 모든 책임을 우리에게 전가하고 있다.
외교에서 설득력의 원천은 논리다. 논리는 편향된 인식을 극복하고 모순에는 균형이 필요하다. 이의 달성이 중용이고 중용의 실천이 실용주의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ㆍ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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