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리오ㆍ산지천 갤러리 등
최근 3년새 미술관 크게 늘어
서울보다 인구대비 문화시설 6배
백남준ㆍ앤디 워홀ㆍ키스 해링 등
거장들 작품도 많아 볼거리 풍부
“작품 활동 장려ㆍ지원은 없고
관광 상품화에 치우쳐” 우려도
‘제주도엔 돌과 바람과 여자가 많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다. 돌과 바람은 여전히 많고 최근 급격히 늘어난 게 있다. 미술관이다.
제주가 ‘예술의 섬’으로 거듭나고 있다. 관광 명소 일색이었던 제주 곳곳에 현대 미술 거장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미술관이 들어서고 섬을 찾는 작가들이 터를 잡고 있다. ‘제주 한달 살기’와 같은 귀촌 열풍에다 예술을 즐기기 위한 문화 관광 수요가 늘면서 미술관 등 문화공간이 급증하고 있다.
◇앤디 워홀 등 거장의 작품들이 제주로
14일 찾은 제주시 탑동 아라리오뮤지엄 탑동시네마는 입구부터 범상치 않다. 타일이 다 뜯기고 철근이 튀어나와 공사판을 연상시키는 1층에 눈부시게 반짝이는 일본 조각가 고헤이 나와의 사슴 5마리가 전시돼 있다. 영화관을 고쳐 만든 5층 미술관에는 가오 레이(중국), 미카일 카리키스(영국) 등 최근 주목 받는 신예부터 우고 론디노네(스위스), 수보드 굽타(인도) 등 유명 중견 작가와 백남준, 앤디 워홀, 듀안 핸슨, 시그마 폴케, 키스 해링 등 현대 미술 거장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아라리오뮤지엄은 제주의 예술 풍경을 바꿔놨다. 2014년 탑동시네마를 시작으로 2015년 모텔을 재생시켜 미술관으로 바꾼 아라리오 동문모텔 1,2까지 미술관 3곳을 연이어 열었다. 탑동시네마에서 동문모텔로 이어지는 칠성로는 섬에서 상업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제주의 명동거리’였다. 제주도청 등 주요 기관들이 이전하며 활기를 잃은 공간에 미술관과 갤러리, 공방 등이 들어서며 거리도 되살아나고 있다. 옛 여관을 개조해 만든 산지천 갤러리도 지난해 12월 칠성로에 문을 열었다. 산지천을 중심으로 김만덕 기념관, 아라리오 동문모텔 1,2와 산지천 갤러리, 비아 아트 등 전시공간이 이어진다.
칠성로 인근 삼도2동에 있는 문화예술공간 이아도 지난해 5월 문을 열었다. 옛 제주대 병원을 고쳐 작가 레지던시, 전시장, 연습공간 등을 갖췄다. 이 일대에는 그림책갤러리 제라진, 그릇이야기 최작 등 소규모 갤러리와 공방들이 있다. 이경모 이아 센터장은 “2009년 제주대 병원이 이전하면서 도심 공동화 현상이 계속됐다”며 “도시재생 차원에서 문화예술센터를 만들어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지역활성화를 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 서귀포시도 ‘미술관 도시’다. 이중섭 미술관, 소암 기념관, 왈종 미술관 등 기존 미술관에 더해 최근 3년 새 도립김창열미술관, 갤러리2 중선농원 등이 생겼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의 ‘전국 문화기반시설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제주 인구 100만명 당 문화시설 수가 200.54곳으로 나타났다. 제주 인구 5,000명당 1개꼴로 미술관, 박물관 등이 있는 셈이다. 서울(37.22곳ㆍ2만7,000명당 1개꼴)보다 문화시설이 6배나 많다. 특히 미술관 수(인구 100만명 당)가 월등히 많다. 제주(32.09개)는 서울(3.98개)이나 강원(7.23개), 전남(15.03개) 등 다른 시도를 압도적으로 제치고 인구당 미술관 수 1위에 올랐다.
◇제주 기반 활동 작가만 500여명
제주가 미술로 들썩이는 데는 제주를 찾는 작가들이 많아서다. 예부터 제주는 김정희(1786~1856), 현중화(1907~1997), 이중섭(1916~1956), 변시지(1926~2013) 등 걸출한 작가들을 배출해냈다. 제주시 서쪽의 제주현대미술관 주변의 저지예술인문화마을에는 박서보, 박광진, 현병찬 등 작가 40여명이 모여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제주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수는 약 500명으로 추산된다.
이아에서 운영하는 작가 레지던시에서 작업하는 강민수 작가는 제주로 유입된 대표적인 젊은 작가 중 한 명이다. 드론을 활용해 알려지지 않은 공간을 해석하는 그는 “동굴이나 숨겨진 공간 등에 관심이 많아 제주로 왔다”며 “대도시는 아무래도 예술적 영감을 받기가 어려운데 제주는 비교적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고, 자연에서 영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올해 제주에 와서 작업 중인 이지영 작가도 “낯선 문화와 환경에 관심이 많고 흥미를 느낀 지역을 조사한 작업을 기반으로 작업을 한다”며 “제주는 작가들에게 무궁무진한 호기심을 제공하고 새로운 실험을 하기에 최적의 장소다”고 말했다.
예술 수요도 많다. 아라리오 뮤지엄의 하루 평균 방문자 수는 60여명. 연간 2만명이 넘는다. 문화예술공간 이아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들도 연간 4만7,000명에 달한다. 귀촌 열풍으로 제주에 살고 있는 젊은이들 중 문화애호가가 많고, 최근 문화관광이 늘어난 덕분이다. 김병언 큐레이터는 “외부에서 미술관을 보기 위해 제주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문화 관광이 이미 일반화했다”고 말했다. 박은희 비아아트 관장은 “제주의 갤러리는 ‘뜻밖의 낯선 공간’이다”며 “의외의 공간에서 미술품을 즐길 수 있는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우려의 시선도 있다. 미술관 자체로만 수익을 내기 힘들다 보니 관광상품과 결합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한계다. 제주에서 작업을 하는 한 작가는 “미술관이 많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일이 다반사”라며 “미술을 논의하거나 작품활동을 장려하기 보다 관광상품화에만 치우쳐 있다”고 지적했다. 김석범 제주문화예술재단 본부장도 “제주 지역 작가들에게는 안정적인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지역 주민에게는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아직 제주 예술시장이 빈약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제주=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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