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사태를 사법부 스스로 매듭지으려는 김명수 대법원장의 구상에 차질이 생겼다.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된 현직 법관들에 대한 탄핵 소추 검토 의견이 나온 데 이어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된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김 대법원장 체제에서 세 차례에 걸쳐 실시한 자체 조사를 통해 사법부가 블랙리스트는 없다고 결론을 내린 게 자승자박이 된 셈이다. 김 대법원장 등 사법부 수뇌부가 어떤 식으로든 입장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사법농단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최근 ‘양승태 대법원’이 대법원장에게 비판적인 판사들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인사에 불이익을 준 사실을 확인했다. 당시 대법관 다양화 등을 요구하는 글을 법원 내부게시판에 올린 송모 판사의 인사평정을 인위적으로 조작해 지방으로 좌천시켰고,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의장이었던 김모 판사도 의장을 맡았다는 이유만으로 블랙리스트에 올라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다. 이 같은 사실은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입수한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보고’라는 문건을 통해 확인됐는데, 2015년부터 3년에 걸쳐 작성된 것을 보면 블랙리스트 피해 법관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블랙리스트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법원이 여러 차례 조사를 실시했지만 그때마다 “사실무근”이라는 결론을 냈다는 점이다. 지난해 4월의 1차 조사에서는 “블랙리스트가 존재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어떤 정황도 찾을 수 없었다“고 했고, 2차ㆍ3차 조사에서도 “인정할 만한 자료는 없었다”고 발표했다. 결국 법원의 조사가 터무니없이 허술했거나 블랙리스트 존재를 알면서도 은폐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어느 쪽이든 김명수 사법부에 치명타인 건 분명하다.
사법농단 의혹이 불거진 이후 법원은 스스로 신뢰를 회복할 의지와 능력이 있으니 기다려 달라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법관 대표들의 현직 법관 탄핵 소추 검토 결의와 판사 블랙리스트 존재 확인으로 사법부의 신뢰는 더욱 추락하게 됐다. 김 대법원장은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한다. 판사 블랙리스트 ‘은폐’ 의혹에 대한 진상 규명은 물론 국회에도 도움을 청해야 한다. 법관 탄핵 요청과 특별재판부 도입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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