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지난해 5월 여름휴가 목적으로 해외호텔 예약대행 사이트 ‘아고다’에서 인도네시아 발리 콘래드호텔을 4박(7월22~26일) 일정으로 예약하고 102만원을 결제했다. 그는 며칠 뒤 개인사정으로 예약을 취소하고 환불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계약 전에 이미 ‘환불불가’를 고지했기 때문에 돈을 돌려줄 수 없다는 것이다. A씨는 “숙박예정일이 두 달이나 남아 환불 후 투숙객을 다시 모집할 시간적 여유가 충분한데, 아예 환불이 안 되는 것은 너무한 것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B씨는 최근 ‘부킹닷컴’에서 필리핀 세부 소재 호텔을 예약했다. 그런데 예약 당시 사이트에서 최종 확인한 금액(21만9,000원)과 실제 신용카드로 결제된 금액(27만원)이 달랐다. B씨는 예약취소 및 환불을 요청했으나, 부킹닷컴 측은 “환불불가 상품”이라며 거부했다.
해외호텔 예약대행 사이트인 아고다와 부킹닷컴이 “예약취소 시점 등과 관계 없이 무조건 환불을 거부하는 약관을 시정하라”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권고를 무시하고 ‘배짱 영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위는 21일 이들 업체에 권고보다 수위가 높은 시정명령을 내리고, 이마저도 따르지 않으면 이들 업체를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들 업체들은 “(해당 약관이) 불공정하지 않다”는 입장이라 공정위 조치에 따를지 미지수라는 관측이 많다. 당분간 소비자들이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수밖에 없는 셈이다.
공정위가 자체 첩보를 토대로 해외호텔 예약대행 사이트 7곳의 환불불가 조항에 대해 조사에 착수한 시점은 2016년 7월쯤이다. 7곳 모두 약관에 ‘예약취소 시점을 불문하고 예약변경 또는 환불이 일체 불가능하다’는 식의 조항을 두고 있었다. 지난해 11월 공정위는 이 같은 조항이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소비자에게 불리해 무효라고 판단하고 아고다, 부킹닷컴, 호텔스닷컴, 익스피디아 등 4곳에 이를 바꾸라고 시정권고(나머지 3곳은 공정위 조사 기간 중 자진시정)를 내렸다. 가령 기존 ‘환불불가’ 문구를 ‘예약 확정 후 변경ㆍ취소 시 환불되지 않는다. 단, 체크일자까지 120일 이상 남은 경우 무료취소 가능’(인터파크) 같은 식으로 구체화하라는 것이다. 실제 호텔스닷컴과 익스피디아는 조항을 시정했다. 그러나 아고다와 부킹닷컴만 정당한 사유 없이 권고를 따르지 않아 시정명령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공정위의 시정명령을 받고도 60일 내에 해당 조항을 바꾸지 않으면 이들 업체는 검찰에 고발될 수 있다.
하지만 아고다와 부킹닷컴이 공정위 조치에 응할지는 미지수다. 다국적 기업인 이들 업체는 공정위에 △글로벌 시장에서 모두 동일한 약관을 사용하고 있고 △한국 시장에 적용되는 환불불가 조항이 크게 불공정하지 않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배현정 공정위 약관심사과장은 “(약관이) 어느 정도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것이기에 (이들의 주장이)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고 할 순 없다”면서도 “나라마다 독자적인 법이 있는 만큼 사업자들은 그 나라의 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해 9월 공정위는 과도한 예약취소 위약금 약관을 시정하라는 명령을 거부한 숙박공유 서비스업체 ‘에어비앤비’를 검찰에 고발한 바 있다.
소비자 피해는 계속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아고다, 부킹닷컴, 호텔스닷컴, 익스피디아 등 4개 사이트에 대한 피해구제 요청은 2015년 54건에서 지난해 130건까지 급증했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최근 해외호텔 예약 관련 피해구제 신청의 대부분은 아고다 또는 부킹닷컴”이라고 말했다. 소비자원은 해외호텔 예약사이트에서 객실 가격을 비교ㆍ선택할 때 △환불 및 변경 가능여부 △무료 취소기한 등을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밝혔다. 현행법상 아고다와 부킹닷컴의 약관 개정을 강제할 수 없는 만큼, 지금 단계에선 소비자들이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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