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작가 오스카 무리조 첫 개인전
회화ㆍ드로잉ㆍ비디오 등 20여점
2014년 5월 미국 최고 화랑 중 하나로 꼽히는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의 뉴욕 전시장에 콜롬비아의 유명 과자 공장이 재현됐다. 실제 콜롬비아 노동자 13명이 전시장에 직접 나와 과자를 굽고, 포장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생존 작가’인 제프 쿤스의 작품 ‘풍선’에서 영감을 받아 드로잉 한 여성이 붙어 있는 샴페인도 함께 전시됐다.
이 전시로 영국의 젊은 작가 오스카 무리조(32)는 세계에서 가장 주목 받는 신예 스타로 급부상했다. 그의 작품은 전세계 주요 경매에서 수억 원에 거래되며 인기를 끌고 있다. 과감한 선과 강렬한 색상을 이용했던 이민자 출신의 미국의 거리화가 장 미쉘 바스키아(1960~1988)를 연상시킨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21세기 바스키아’라 불리며 상승가도를 달리는 그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는 국내 첫 개인전 ‘촉매(Catalyst)’가 29일부터 서울 삼청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회화, 드로잉, 비디오, 설치 등 다양한 형태의 20여점으로 그를 만날 수 있다.
전시는 입구에 드리워진 검은 캔버스 천, 그리고 그 뒤에 걸린 선명한 색의 추상 회화를 강렬하게 대비시키면서 시작된다. 가로 세로 2m 안팎의 대형 캔버스에 휘갈긴 듯 칠해진 회화 10여점에서는 폭발하는 그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작가는 “촉매는 에너지를 작품에 몰입하도록 하는 것이다”라며 “몰입을 통해 작품에 개입하고 에너지를 표출한다”고 했다.
그가 비행기 안에서 작업한 ‘비행(Flight)’ 드로잉 연작은 낙서처럼 보이지만 그의 생각이 두뇌에서 손으로 흐르듯 볼펜으로 그려낸 무의식의 일부다. 그는 전시 개막 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 드로잉 주변을 뱅글뱅글 돌며 그의 무의식에서 쏟아져 나온 단어와 숫자를 반복적으로 읊는 즉석 퍼포먼스를 펼쳤다. 그는 “비행기가 빠르게 상공을 지나가면서 드는 생각들을 강박적으로 드로잉하면서 풀어낸다”라며 “작품을 통해 관객들도 부유하는 느낌이 들기를 바란다”고 했다.
검은 캔버스 천을 전시장에 빨래를 널듯이 널어 놓은 설치 작품도 그의 작품 세계를 대변한다. 흡사 짐승의 거죽처럼 보이는 이 천 조각 설치 작품은 2015년 첫 선을 보인 뒤 전세계를 순회하며 전시됐다. 천은 곳곳에 다른 천으로 덧댄 듯 바느질돼 있거나, 긁히거나 덧칠한 흔적이 많다. 작가는 이 무거운 검은 천을 통해 무한한 변형의 가능성을 모색해 속박되고 정형화한 형태를 탈피하려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무리조는 콜롬비아의 작은 마을 라파일라에서 설탕 공장 노동자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부는 폭력적인 콜롬비아를 떠나 영국으로 이주했다. 이방인으로서의 외로움을 경험한 무리조는 예술로 외로움을 달랬고, 2007년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미술 교사로 일하다 2012년 영국왕립예술대학교에 진학한 뒤부터 런던에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뉴욕의 아트 페어에 작품을 냈다가 미국의 5대 컬렉터인 도널드 루벨 부부의 눈에 띠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루벨 부부는 당시 그의 작품을 보고 “바스키아 이후 이런 에너지는 처음이다”라고 격찬했다. 전시는 내년 1월 6일까지.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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