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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공예의 정체성, 가능성을 보다

입력
2018.12.07 04:40
수정
2018.12.07 10:04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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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 적어도 한국 공예는 아직 자기만의 언어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한국 공예의 미성숙은 작품의 질, 각 분야 사이의 균형, 시장의 규모와 안정성 등에서 고루 나타나고 있지만, 무엇보다 자기 언어를 확보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두드러진다. 현대미술이 탄탄한 자기 언어의 확립과 확장을 통해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설득하며, 하나의 장르로 자리를 잡은 것과 구별되는 지점이다.

한국 공예는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지향하는지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할 만한 설명을 하고 있지 못하다. 특히 이 시대에 공예의 필요성을 설득하지 못한 채 역사성만을 강조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필자는 한국 공예에 있어 가장 시급한 문제가 공예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디자인도 멋지고, 품질도 모자람이 없고, 가격도 싼데, 왜 굳이 비싼 공예품을 써야 하나.”라는 질문을 받아보지 않은 공예가는 없을 것이다. 한국의 공예계는 아직 그 질문에 대한 적절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공예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의 공예계는 답을 찾기는커녕 이 질문 자체를 시도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정체성이란 하나의 요소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필자의 정체성이 김윤관이라는 이름, 목수라는 직업, 172cm라는 신장, 서울 태생 등 다양한 요소의 집적체인 것과 같다. 때문에 다양한 방식을 통해 그 질문에 접근해야 한다. 한 분야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이, 특히 공예처럼 문화를 규정하는 것이 몹시 어려운 이유다.

지난달 23일 코엑스 콘퍼런스룸에서는 ‘로컬 지향 시대의 공예성’이라는 주제로 국제공예포럼이 개최됐다. ‘(재)한국 공예ㆍ디자인문화진흥원(KCDF)’이 주관한 이 포럼은 ‘2018 공예트랜드페어’의 부대행사로 열렸다.

필자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담아내지 못한 채 벼룩시장처럼 산만한 페어를 보며 느낀 피로함이 이 포럼을 들으며 희망으로 바뀌었다. 이소벨 데니스 컬렉트 페어 디렉터, RADI 디렉터인 캐롤 프티장, 쉴라 로에베 로에베재단 회장 등이 발제자로 참석한 이 포럼은 시장의 시각에서 공예의 정체성을 돌아보기에 충분한 자리였다. 이들이 제시한 시각을 통해 페어장에서 만난 몇몇 공예품을 새롭게 인식할 수도 있었다.

조언은 조언의 진정성과 함께 조언자의 이력에 따라 무게감이 다르다. 이날 나선 발제자들의 면면과 이들이 제시한 예시들은 공예의 정체성에 대한 직접적인 내용을 다루지 않았지만, 그들이 시장에서의 경험을 통해 접한 공예의 현상과 가능성에 대해 인식을 갖게함으로써 ‘공예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새롭고 깊은 인식을 주었다.

필자는 공예에 대한 관의 지원이 단순히 작가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형태를 넘어 이번 포럼과 같이 방향성을 제시하는 쪽으로 확대되기를 희망해 왔다. 그동안 이런 학술행사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단지 유명인들의 나열에 만족하는 유명무실한 행사에 그친 경우가 많았다. 발제자의 선정과 발제 내용에 대한 주최 측의 적절한 조정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유명인들의 이름에 끌려다니는 불썽사나운 모습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국제 포럼과 같이 규모가 큰 행사는 한 개인이 치르기에는 무리가 많다. 결국 관이 주도하는 형태가 될 수밖에 없는데, KCDF의 이번 포럼이 유의미한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한 가지 더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런 흔치 않은 기회에 공예 작업자들의 참여도가 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공예가들이 발끝만 보지 말고 나아갈 길을 멀리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공예, 한국 공예의 정체성 확립에 대한 중요성이 공예인들에게 깊게 인식되기를 바라며, 이번 국제 포럼과 같은 학술행사들이 공예계에서 활성화 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윤관 김윤관목가구공방 대표 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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