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ㆍ보조금 착취ㆍ강제 노역…
진술능력 없고 거처 폐쇄 우려
학대 사실 적극적으로 못 알려
천주교 대구대교구가 운영해 온 대구시립희망원 내 3개 시설 가운데 장애인 수용시설인 ‘시민마을’은 이달 말 폐쇄를 앞두고 있다. 희망원을 총괄했던 전직 원장 신부 배모(64)씨가 2011~2016년까지 생활인 중 177명의 생계급여를 허위 청구해 6억5,700만원을 부정 수급했다는 의혹이 재판 결과(항소심 징역 2년)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다른 직원들도 생활인들을 폭행ㆍ감금한 혐의 등으로 유죄를 인정받았다. 2010년부터 6년 간 이곳에서 숨진 병사자는 무려 201명이나 된다. 하지만 담당 공무원들은 시민단체의 폭로 전까지 이러한 사실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장애인학대 전문기관에 접수된 학대 사례 10건 중 4건의 가해자는 장애인거주ㆍ교육시설 등의 관계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아동학대, 노인학대 등의 가해자는 가족이 압도적 1위인 것과 대조된다. 장애인들은 피해를 진술할 능력이 없거나 해당 시설에서 미움을 사면 거처가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 탓에 학대 사실을 외부에 적극 알리지 못하고, 당국도 세밀한 관리ㆍ감독체계를 구축하지 못하면서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9일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 따르면 지난 9월까지 기관에 접수된 장애인 학대 의심 신고 1,438건 가운데 실제 학대로 확인된 사례는 793건(55.1%)에 달했다. 자칫하면 학대로 이어질 수 있는 잠재위험사례(90건)까지 합하면 전체 의심 신고의 61.4%에 달한다. 특히 학대 확인 사례의 가해자 중에는 장애인거주시설ㆍ교육기관 등 기관종사자가 315명(39.7%)으로 가장 많았다. 가족ㆍ친인척(245명ㆍ30.9%)이나 타인(222명ㆍ28.0%)보다 상당히 높은 비중이다.
지난 9월 경기 양평군의 한 장애인시설 원장은 거주 장애인이 김치통을 옮기다가 땅에 떨어뜨렸다는 이유로 쌀 창고에 가두고 죽도로 폭행해 징역 10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지난해 6월에는 전북 군산의 한 장애인시설에서 생활재화교사 등 4명이 발달장애인을 발로 차거나 목을 조르고, 전기파리채를 이용해 전기충격을 준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대구시립희망원 직원들도 생활인들이 이성교제, 금전거래 등을 할 경우 평균 11일씩 독방에 강제 격리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시설 관계자들이 장애인들에게 지급되는 보조금이나 급여를 받아 챙기는 ’경제적 착취’도 심각하다. 지난 5월 경기의 한 장애인시설 원장은 2015년부터 올해 3월까지 장애인 4명의 기초생활수급비ㆍ장애인연금 등 9,600만원을 횡령한 혐의로 경찰에 구속됐다. 전남 순천의 또다른 사회복지법인 원장은 2012년 1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시설에 입주한 지적장애인을 직원으로 고용해 빨래와 청소 등 허드렛일을 시킨 뒤 국고보조금으로 지급되는 급여 1억3,700여만원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 4월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다.
현장에서는 당국의 관리ㆍ감독망이 여전히 수박 겉핥기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꼽는다. 지자체는 매년 시설에 대한 정기지도ㆍ점검을 실시해야 하지만, 인력 부족ㆍ학대 증거 확보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대체로 예산 집행이나 인사 관리, 시설 운영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부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2012년 장애인시설 내 인권침해 사례를 발굴하는 ‘인권지킴이단’을 지원하고는 있으나, 장애인 스스로가 학대 실태를 적극 진술할 환경이 안 되거나 진술하더라도 곧장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는 등 후속조치가 안 된다는 목소리가 많다. 광주의 한 장애인기관 관계자는 “보조금 횡령이나 강제 노역 같은 경제적 학대는 오랜 면담이나 심층 관찰을 통해야 확인이 가능하지만, 지자체의 의지에 달린 문제라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학대 행위자에 대한 처벌이 법상으로는 크게 강화됐지만 실제 적용될 때는 솜방망이 수준이라는 점도 문제다. 일례로 지난해 4월 자신이 돌보는 지적장애인을 성추행하고 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경기 연천군 소재 장애인 시설 직원 이모(47)씨는 2심에서 징역 8개월ㆍ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는 데 그쳤다. 이정민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 팀장은 “장애인복지법상 폭행의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정도로 처벌 수준이 높다”면서도 “사안이 모호하거나 복잡하다는 이유로 수사단계에서부터 장애인복지법 대신 형법이 적용되는 경우가 많아 처벌이 솜방망이에 그치곤 한다”고 지적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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