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균 장군의 숭고한 호국정신이 역사학자들로부터 재조명되고 있다.”
임진왜란기 조선의 대표적 패장으로 꼽히는 원균에 대해 “그의 숭고한 호국정신”을 홍보하겠다며 기념관을 지은 평택시가 원씨 종중이 원균에 지내는 제사까지 지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각에선 역사적 인물에 대한 충실한 검증 없이 지방자치단체가 무분별하게 예산을 사용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10일 평택시에 따르면, 원균의 생애와 공훈 등을 소개하기 위해 원균 장군묘 인근에 지난 4월 16일 개관한 ‘원릉군기념관’ 건립에 시비와 도비 각각 2억 5,000만원씩 총 5억원이 투입됐다. 건립에 1억 7,000여 만원을 부담한 원주 원씨 대종회 측이 운영비를 부담하되, 평택시에서 문화유적 관광 해설사 배치 비용까지 떠안는 조건이다. 4월 16일 열린 개관식에는 원유철 자유한국당 의원 등 원씨 종중 인사들이 참석했다.
평택시가 공식 블로그에 공개한 사진에 따르면, 기념관은 원균의 과오를 축소하고 공을 부각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1597년 당시 원균이 출전해 대패하고 결국 목숨까지 잃었던 칠천량 해전에 대해서는 “출전을 강요당하다”는 문구를 앞에 붙여, 패전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원균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없었다는 식으로 묘사됐다. ‘정유재란 속 원균’을 설명하면서는 “원균과 이순신의 갈등은 있었으나 모함한 일은 없었다”는 주장을 실었다.
이런 설명은 원균을 대표적 역사 인물로 다뤄온 평택시의 홍보와 맞물려 있다는 지적이다. 평택시 홈페이지 역사문화 항목에는 기념물 중 하나로 원균장군묘를 소개하고 있다. 원균 장군에 대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수군을 통솔하는 절도사로서 옥포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에게 구원을 요청하여 적을 물리쳤다. 그 후 합포해전, 적진포해전 등 여러 차례 해전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고 서술해 승전을 부각했다.
평택시의 원균의 공적 부각에 네티즌은 반발하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원균 기념관 건립에 대해 민원을 제기한 네티즌이 평택시로부터 받은 답변이 화제가 되고 있다. 한 시민이 “원균은 이순신 장군이 심혈을 기울인 조선 해군을 증발시켜버린 인물”이라며 “기념관을 세운 시의 입장을 듣고 싶다”고 지난 4월 민원을 제기했는데 평택시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원균 장군의 숭고한 호국정신을 홍보하고 교육의 장소로 활용하고자 개관했다”고 답변했다. 네티즌들은 “세금이 원씨 가문의 명예회복을 위해 쓰이고 있다”며 비판하고 있다
평택시는 “원균 장군에 대한 숭고한 호국정신이 역사학자들로부터 재조명되고 있다”고도 덧붙였으나 구체적인 연구자나 논문을 근거로 제시하지는 않았다. 조선사를 연구하는 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는 “80년대에 논문 한두 편이 나왔을 뿐, 지금 원균이 학계의 재조명을 받고 있지는 않다”며 “원균에 대한 재평가는 주류 학계가 아닌 소수의 주장”이라고 설명했다.
계 교수는 “인물을 평가할 때는 그 인물이 어떤 지위에 올랐을 때, 그 지위에 요구되는 책임과 역할을 다 했는지 등이 기준이 돼야 한다”며 “원균이 장렬히 전사했다고 그를 높이 숭앙할 일이 아니다. (그의 행적은) 기념할 사안이 아니라 반면교사 삼아야 할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계 교수는 왜군 침략 당시 원균 행적 중 △경상 우수사 재직 시 전쟁에 제대로 대비하고 있지 않다가 전쟁 발발 후 소속 4척의 군함을 직접 수장한 것 △같은 야전 지휘관이면서 왜군을 상대로 전략적으로 출전하고 있지 않던 이순신을 깎아 내리고 ‘수군통제사’ 직에 오르기를 희망한 것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원균 기념관 건립 비용 일부를 부담했던 평택시는 올해부터 원씨 종중의 원균 제사도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평택시는 향교의 충효 예절 교육 지원 사업이었던 ‘충ㆍ효ㆍ예ㆍ도의 선양사업’ 예산을 2,700만원 증액해, 정도전 등 평택시 내에서 진행되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제사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원씨 종중의 원균 추모제향도 지원 대상에 포함돼 300만원을 지원받았다.
평택시 문예관광과 관계자는 기념관 건립 지원 이유에 대해서 “시는 지역에 어떤 문화 유산이 있는지 홍보해야 하는 입장”이라며 “원균장군묘에 관광을 오는 이들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원씨 종중에 요청해 해설을 부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원균 추모제향 지원에 대해서는 “관내 역사 인물에 대한 9건의 제사 지원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원균 기념관을 운영하고 원균장군묘를 소유ㆍ관리하는 원씨 종중은 “원균은 패장이기 이전에 왜군에 맞서 36번이나 싸웠던 인물”이라며 “패전의 책임을 400년간 지고 있는 원균에 대한 진실을 알릴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원주원씨 대종회 관계자는 “이순신에 대한 성역화를 국민 세금으로 하는 것은 문제가 없고, 원균을 기념하는 것은 문제가 되는가”라며 반문했다.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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