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부문 심사평
201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문에는 270여분이 1,350여 편을 응모하였다. 지난해보다 적잖이 늘어난 분량이었다. 응모자의 신상이 블라인드 처리된 원고를 두 심사위원이 절반씩 나누어 읽은 다음, 다섯 분의 작품 25편을 본심에 올려 당선작 선정을 위한 논의를 진행하였다.
‘무궁화호’ 외 4편은 자기만의 시선과 목소리를 갖고 있었다. 분리수거와 같은 단골 소재를 다루더라도 구태에 떨어지지 않고 자기 해석을 기입할 줄 알았다. 청각과 시각, 촉각을 적절히 활용하여 그린 그림에선 따뜻함이 느껴졌다. 재치에 비해 인식의 깊이가 뒷받침되지 못해 아쉬웠다.
‘몸값 오르는 순간’ 외 4편은 여러 시인에 의해 짬짬이 시도된 적은 있으나 아직까지 한 권의 동시집으로 제출된 적은 없는 구체동시(具體童詩)의 면모를 개성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사물의 외형적 특징을 포착하여 그에 걸맞게 내용을 구성하는 재주가 남달랐다. 다만 언어에 대한 수련이 좀 더 필요해 보였다.
‘문 안에 있는 너’ 외 4편에서는 표제작과 ‘달리는 지렁이’가 눈에 띄었다. ‘문 안에 있는 너’는 반려동물을 다룬 동시 가운데서도 인상적으로 기억될 작품이었다. 만남의 반가움이 속도감 있게 처리된 행의 전개와 잘 어울렸다. ‘달리는 지렁이’ 역시 지렁이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나머지 세 편이 너무 단순하거나 장황한 것이 흠이었다.
‘그림 퍼즐’ 외 4편은 짜임새가 좋았다. 우리 동시가 최근 10년 간 이룩한 성취를 잘 흡수하고 있을뿐더러 이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밀고 나가려 애쓴 지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언어 감각 못지않게 사물과 세계에 대한 인식의 깊이가 확보된다면 좀 더 멀리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
‘친구 요청’ 외 4편은 큰 이야기든 작은 이야기든 잘 다룰 줄 알았다. 다섯 편 모두 쉽게 읽히면서도 잔상이 오래 남았다. 아이들의 생활을 다루거나 꿈을 이야기하는 방식에서도 새로움이 느껴졌다. 두 심사위원은 이 가운데 ‘가족 ver.2’를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이 작품은 옛이야기의 둔갑 화소와 첨단과학 시대의 상상력을 결합하여 오늘의 가족 문제, 인간관계를 생각해 보게 한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경계, 진짜 관계와 가짜 관계의 경계가 모호해진 현실을 살아가는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바쁘다는 핑계로 미처 돌보고 살피지 못한 소중한 것을 떠올리고 돌아보게 하는 시의적절한 작품이다. 축하와 함께 큰 시인으로 성장해 가기를 응원한다.
아쉽게 당선의 영예를 놓친 분들께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빠르게 변화 발전하는 동시의 현장을 눈여겨보되, 유행을 좇기보다 자기만의 각을 잘 간직하고 가꾸어 가는 길이 늦는 듯싶어도 가장 빠른 길이다. 얼핏 ‘동시스러워’ 보이는 것에 동시는 없다. 언제나 자기에게서 출발하기 바란다.
윤제림ㆍ이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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