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피해, 첨단과학으로 줄인다] <상>지진
2016년 경북 경주시, 지난해에는 포항시에서 각각 리히터 규모 5를 훌쩍 넘는 큰 지진이 일어났다. 일터와 보금자리였던 건물들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갈라지고 기울어졌다. 과학자들은 국내 많은 건물이 지진 대비에 취약하다고 지적한다. 건물 안전은 둘째치고, 건물이 흔들릴 때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대로 머무는 게 나을지, 밖으로 나가는 게 안전할지조차 판단하기 어렵다. 이렇게 허술한 지진 대비로는 대형 사회재난을 피하기 어렵다.
국내외 23개 대학과 연구기관, 18개 민간기업이 참여해 2016년 12월 출범한 복합재난대응연구단(이하 연구단)은 지진 발생 순간 주민들에게 적절한 행동 요령을 자동으로 신속하게 전달할 수 있는 통합 재난대응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백용 연구단장은 “이른 시간 안에 주민이 대피할 수 있는 효과적 시스템을 구축해 내년 6월 경기 고양시 일산두산위브더제니스생활지원센터 건물에서 대국민 시연회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진이 났을 때 건물 내부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판단하는 데 필요한 기본 기술은 바로 거동감지 센서다. 건물이 얼마큼 흔들리고 있는지를 수치로 보여주는 기기다. 우리나라에선 50층 이상 또는 높이 200m 이상의 초고층 공공건축물이나 일부 공공시설에 의무적으로 설치하게 돼 있다. 하지만 설치만 해둘 뿐 활용은 제대로 안 되고 있다.
연구단에 따르면 국내 건물에서 측정된 거동감지 데이터는 지금까지 대부분 버려졌다. 고성능 센서가 있어도 건물 관리 담당자들이 센서가 내놓는 데이터의 의미를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데이터를 모으고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나 운영 주체도 없다. 이런 데이터를 지진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정보로 자동 변환해 알리는 시스템을 완성하는 게 연구단의 목표다.
이를 위해선 먼저 센서를 꼭 필요한 위치에 설치해 의미 있는 데이터를 뽑아야 한다. 가령 초고층 건물이면 최상부와 중간층, 지하층에 각각 센서가 있어야 한다. 건물 높이에 따라 지진에 따른 진동이나 파괴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10층 이상 건물이면 일반적으로 2, 3, 4층이 지진에 가장 취약하다. 백 단장은 “땅의 움직임과 구조물 상부의 흔들림이 만나는 부분이라 손상 위험이 가장 높다”고 설명했다. 거동감지 외에 건물 주변 지반의 움직임이나 부지가 받는 응력(외부 힘이 작용할 때 생기는 저항력)까지 함께 파악하면 위험 예측 정확도를 더 높일 수 있다.
연구단이 개발 중인 시스템은 실제 지진이 발생할 경우 현장에서 측정된 이들 데이터를 모아 내부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하게 된다. 이 데이터베이스는 발생 가능한 수많은 지진 시나리오를 시뮬레이션한 다음, 지진 강도나 건물 유형 등에 따라 시나리오별로 가장 적절한 행동 요령을 도출해놓은 것이다. 연구단은 현재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의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중이다. 일반 컴퓨터로는 한 구조물의 거동을 예측하는데 6, 7일이 걸리지만, 슈퍼컴퓨터로는 수초 안에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현장 데이터와 데이터베이스를 비교한 시스템은 수분 이내에 피해 상황을 예측하고 그에 맞는 행동 요령을 찾아내 사람들에게 알린다. 이를 통해 여진 발생 전에 대피해야 하는지 여부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이와 유사한 시스템을 상용화한 건물은 국내외에 아직 없다. 백 단장은 “선진국들보다 한발 앞선 재난 대응 기술을 내년에 선보이겠다”고 약속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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