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이은숙의 ‘서간도 시종기’
이 연재를 진행하면서 머릿속에 계속 맴돈 질문은 ‘역사란 무엇인가’였다. 역사란 지나간 시간 속에 일어난 사건과 형성된 구조다. 동시에 역사란 그 사건과 구조에 대한 개인적ㆍ집합적 기억이자 기록이다. 이런 역사를 배우는 까닭은 뭘까. 그 답변의 하나로 나는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의 말을 떠올리고 싶다.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그 역사가 반복될 것이다”라는 언명이 그것이다.
지난 100년 기억해야 할 우리 역사는 그렇다면 뭘까. 내일 1월 1일부터 시작하는 3ㆍ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출범 100주년을 앞두고 나는 먼저 두 사람을 기억하고 싶다. 이회영과 이은숙이 바로 그들이다. 두 사람은 부부다. 남편 우당 이회영이 널리 알려진 반면, 아내 이은숙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이은숙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것은 ‘서간도 시종기(西間島 始終記)’를 발표하면서부터였다. 원고가 완성된 것은 1966년이었지만, 책으로는 1975년 정음사에서 ‘민족운동가 아내의 수기: 서간도 시종기’라는 제목으로 나왔다. 1981년 인물연구소에서 ‘가슴에 품은 뜻 하늘에 사무쳐: 이은숙 자서(自叙) 서간도 시종기’라는 제목으로 다시 나왔고, 2017년에는 일조각에서 풀어 쓰고 주석을 덧붙인 ‘서간도 시종기: 우당 이회영의 아내 이은숙 회고록’이란 제목으로 한 번 더 나왔다.
‘서간도 시종기’는 책 제목이 보여주듯 수기이자 자서전이자 회고록이다. 이 저작으로 이은숙은 1975년 제1회 월봉저작상을 받았다.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 역사’에서 장하준의 ‘사다리 걷어차기’까지 지난 100년 우리 역사를 빛낸 저작들에 내가 ‘서간도 시종기’를 더하는 까닭은 두 가지다.
첫째는 역사적 가치다. 이 책은 일제 강점기에 이회영을 위시한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증언을 담고 있다. 둘째는 철학적 가치다. 이 책은 전통적인 한 여성이 민족적 자아를 획득해 가는 희생과 고난과 의지의 삶을 생생하고 기품 있게 보여준다. 어떤 저작이나 사상도 삶을 선행할 순 없는 것이다.
◇이회영의 삶과 항일투쟁
이은숙은 1889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다. 다른 이름은 이영구다. 양반의 후예답게 전통적인 유교 교육을 받았고, 1908년 이회영과 결혼했다. 이후 그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1910년 이회영이 형제들을 규합해 만주로 망명하자 그 역시 합류했다. 1917년 고국으로 돌아왔고, 1919년 이회영이 북경으로 가자 그곳으로 떠났다. 1925년 고국에 다시 돌아왔고, 고무공장을 다니고 삯빨래와 삯바느질을 하면서 생활비 및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했다. 1932년 이회영이 뤼순감옥에서 순국한 다음 그는 아버지를 쫓아 독립운동가의 길을 걸은 아들 이규창의 옥바라지를 하면서 서울과 만주를 오가며 광복을 기다렸다.
‘서간도 시종기’는 이러했던 자신과 남편의 삶을 돌아보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은숙은 이회영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이회영은 평생 민족독립과 해방을 꿈꾸고 이끌었던 혁명가였다. 1910년 나라가 망하자 그는 형제들과 재산을 정리해 만주로 망명해서 신흥무관학교를 세웠다. 신흥무관학교는 항일투쟁의 선봉을 이룬 독립군 양성소였다. 이회영과 그의 형제들은 우리 현대사에서 드문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이들이었다.
이회영은 교육ㆍ외교ㆍ무장투쟁 등 다방면의 독립운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다. 신흥무관학교 외에 신민회, 서전서숙, 상동청년학원, 헤이그 밀사 파견, 경학사, 신흥무관학교, 고종 망명 계획, 3ㆍ1운동, 의열단, 다물단, 재중국 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 항일구국연맹, 흑색공포단 등은 그가 이끌거나 관여한 조직 또는 운동이었다.
이승만ㆍ김구ㆍ안창호 등과 비교해 이회영이 뒤늦게 알려진 것은 그의 사상의 마지막 거처가 무정부주의였기에 자신에 대한 자료를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회영의 손자이자 김대중 정부 초대 국정원장이었던 이종찬은 말한다. “할아버지는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스스로 당신의 모든 자료를 전부 없애셨던 분이었습니다. (...) 이런 철저함 없이 어떻게 악독한 경찰 고등계나 헌병들을 따돌릴 수 있었겠습니까?”
이회영의 항일투쟁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이정규ㆍ이관식의 ‘우당 이회영 약전’(1985), 김명섭의 ‘자유를 위해 투쟁한 아나키스트 이회영’(2008), 이덕일의 ‘이회영과 젊은 그들’(2009), 김삼웅의 ‘이회영 평전’(2011) 등을 통해서였다. 한국방송공사(KBS)의 드라마 ‘자유인 이회영’(2011)은 그의 존재를 국민들 마음속에 뚜렷이 각인시켰다. 개혁적 유학자에서 개인의 자유로운 정신과 결합을 중시한 아나키스트까지의 이회영의 사상적 변화는 근대 초기 우리 지식인이 갈 수 있던 가장 먼 길이었다.
◇이은숙의 삶과 독립운동
‘서간도 시종기’를 보면 이은숙은 이회영이 순국하자 축문을 쓴다. 이은숙은 이회영에 대해 말한다.
“일생의 몸을 광복 운동에 바치시고 사람이 닿지 못하는 만고풍상을 무릅쓰고 다만 일편단심으로 “우리 조국, 우리 민족” 하시고 지내시다가 반도 강산의 무궁화 꽃 속에 새 나라를 건설치 못하시고 중도에서 원통 억색히 운명(殞命)하시니 슬프다.”
지난 100년 우리 현대사에서 내가 만난 가장 시리면서도 기품 있는 글 가운데 하나다.
이은숙이 이회영처럼 항일투쟁의 전면에 나선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활동은 주목받아 마땅하다. 그는 만주와 북경을 누비면서 남편 이회영을 도와 국내외 중요한 독립운동을 지켜보고 관여했다. 앞서 말했듯 공장에 다니고 삯일을 하면서 생계비를 벌며 독립운동 자금을 보냈고, 아들 이규창의 옥바라지를 맡았다. 1979년 세상을 떠난 이은숙에겐 올해 광복절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서간도 시종기’가 갖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우리 독립운동사는 남성중심적으로 기록돼 있다. 인류학자 한경구와 역사학자 한홍구는 말한다. 2017년 현재 “국가가 독립유공자로 서훈하고 있는 독립운동가들이 모두 1만3,000여 명에 달하는데, 그 중 여성은 3,000명이 아니라 300명도 채 되지 않는다. (...)정정화의 ‘장강일기’와 더불어 이은숙의 ‘서간도 시종기’는 우리 독립운동의 전체상을 복원하고 이에 대한 온전한 인식을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어떤 이는 ‘서간도 시종기’에 담긴 가부장주의를 비판할지 모른다. 이에 대해 사회학자 김귀옥은 말한다. “이은숙은 이회영을 중심으로 부차시된 아내로서의 모습이 역력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 구시대적 ‘마님’으로서의 지위에 대한 미련을 두지 않은 채, 디아스포라적 현실 속에서 ‘부재하는 남편’을 대신하여 자기 개척적인 모성으로서 자식을 키우고 생활을 책임지며, 적극적으로 남편의 민족운동을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면모를 보였다.” 한 개인의 삶을 평가하는 데는 시대적 강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은숙의 삶은, 김귀옥의 말처럼, 가부장 문화에 구속된 여성에서 디아스포라 난민을 경유하여 능동적으로 저항하는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획득해 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서간도 시종기’는 봉건적 자아에서 근대적 자아로, 개인적 자아에서 민족적 자아로, 순응하는 자아에서 저항하는 자아로 성숙하는 실존적 차원의 우리 현대사를 기억하게 하는 셈이다.
◇대한민국의 미래
3ㆍ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이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지난 100년의 역사를 이끌어온 시대정신이다. 이 정신은 임시정부 임시헌장 제1조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민주공화국이란 국민이 주인인 나라, 국민이 더불어 살아가는 나라라는 의미다.
민주공화국 100년을 일궈온 이들 가운데 앞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은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에 헌신해온 선조들이었다. 독립운동가 가운데는 보수도 진보도 무정부주의자도 있었고, 남성도 여성도 있었고, 노인도 청년도 있었다. 이렇듯 복수(複數)의 국민들 모두 한껏 힘을 모아 무궁화의 나라는 1945년 빛을 되찾았다.
다시 한번 더 말하면,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그 역사가 반복될 것이다.” 지난 100년을 돌아보고 새로운 100년을 그려보는 2018년 세밑, 우리는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어떤 이들의 삶을 기억하고 기려야 하는 걸까. 우리 사회를 공부하는 이로서 이회영과 이은숙의 삶과 역사를 여기에 적어둔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 ‘김호기의 100년에서 100년으로’는 지난 한 세기 우리나라 대표 지성과 사상을 통해 한국사회의 미래를 생각하는 연재입니다. 다음주에는 김용섭의 ‘조선후기농업사 연구’가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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