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블랙리스트로 자유영혼으로… 존 레넌, 프레디 머큐리 ‘불꽃 같은 삶’
알림

블랙리스트로 자유영혼으로… 존 레넌, 프레디 머큐리 ‘불꽃 같은 삶’

입력
2019.01.05 04:40
수정
2019.01.14 14:45
15면
0 0

이매진-존 레넌 전 & 보헤미안 랩소디 사진전

영국 록그룹 비틀스의 리더인 존 레넌(1940~1980)과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1946~1991). 두 사람은 굴곡진 삶을 딛고 따뜻한 음악으로 세상을 보듬었다. ‘팝 음악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드물게 세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록스타란 점도 닮았다.

두 사람의 사진전이 이달 동시에 열린다. ‘이매진-존 레넌 전’과 ‘보헤미안 랩소디 사진전’의 주인공으로 한국 관객을 찾는다. 이미 개막한 존 레넌 사진전은 3월 10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다. 프레디 머큐리 사진전은 2월16일 부산 벡스코 오디토리움에서 먼저 만나볼 수 있다. 록밴드 퀸의 트리뷰트 밴드인 랩소디 퀸 공연장에서다. 두 사람의 사진전이 국내에서 열리기는 처음이다. 레넌과 머큐리의 미공개 사진과 거기 담긴 사연들을 살짝 소개한다.

1974년 가을, 미국 뉴욕 자유의 여신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존 레넌. 한솔BBK 제공
1974년 가을, 미국 뉴욕 자유의 여신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존 레넌. 한솔BBK 제공

◇ ‘하우스 허즈번드’ 레넌의 재발견

우선 레넌이 피살되기 12일 전인 1980년 11월 26일에 찍은 사진부터. 레넌과 아내 오노 요코는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를 걷고 있었다. 헐벗은 나뭇가지 사이를 통과한 햇살이 부부를 반겼다. 레넌은 공원 벤치 등받이에 걸터앉은 아내의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레넌의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하다. 레넌과 요코의 마지막 사진을 카메라에 담은 건 부부의 오랜 친구이자 사진작가인 앨런 타넨바움이다. 그로부터 1주일 전 레넌은 낸 앨범 ‘더블 판타지’를 냈다. ‘다시 시작하자’는 뜻의 수록곡 ‘스타팅 오버(Starting Over)’처럼 부부의 외출은 즐거워 보였다. 레넌은 아무것도 다시 시작할 수 없게 됐지만.

전시장엔 레넌의 ‘뒷모습’ 사진이 가득하다. 머리에 기름을 잔뜩 발라 뒤로 넘긴 소년에서 비틀스 멤버들과 침대에서 베개 싸움을 하는 모습까지. 신인 시절 독일 기자와의 인터뷰 용으로 레넌이 썼다는 자기소개서를 보면 우리가 알던 ‘록의 전설’이 맞나 싶다. 그는 “리버풀 예술 대학에서 쫓겨 났고(LIVERPOOL COLLEGE OF ART THROWN OUT), 꿈은 부자가 되는 것(AMBITION. TO BE RICH)”이라고 적었다. 청년 레넌은 반항아스러운 펑크 로커에 가까웠다.

‘비틀스의 리더’라는 수식어는 레넌이라는 ‘인간’을 전부 설명하지 못한다. 전시장 한 쪽엔 머리카락을 짧게 자른 레넌이 미국 법정에 서 있는 모습을 촬영한 흑백 사진이 걸려 있다. 자신을 강제 추방하려 한 미국 정부와 소송을 벌인 1967년의 일이다. 레넌은 반전(反戰)을 외친 죄목으로 닉슨 정부 시절 ‘블랙리스트’에 올라 탄압받았다. 레넌은 투사였다. 비틀스 공연을 주최한 미국 공연기획사가 흑인과 백인 관람 구역을 나눈 것에 분개해 공연을 취소하기도 했다. 레넌이 요코와 신혼여행지인 암스테르담의 힐튼 호텔 스위트룸에서 1주일간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침대에 누워 평화 시위를 벌인 건 유명한 일화다. 당시 모습을 담은 사진도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다.

오노 요코와 존 레넌이 녹음실에서 노래 ‘스타팅 오버’를 듣고 있는 모습. 한솔BBK 제공
오노 요코와 존 레넌이 녹음실에서 노래 ‘스타팅 오버’를 듣고 있는 모습. 한솔BBK 제공

레넌은 다정한 아빠이기도 했다. ‘시 쓰고 그림 그리고 노래 부르는 아빠 바다코끼리’란 주제의 전시실은 ‘아빠 레넌’의 공간이다. 아들 션 레넌과 놀아 주는 레넌, 그런 레넌을 보며 활짝 웃고 있는 요코의 사진이 걸려 있다.

레넌은 1975년 션을 낳은 뒤 5년 동안 ‘육아 휴직’을 했다. 아버지로서의 삶에 충실하겠다며 신작도 내지 않았다. 레넌에게 아버지가 ‘상처의 존재’여서 그랬다. 그는 아버지 없는 유년기를 보냈다. 레넌은 그 상처를 첫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얻은 첫아들 줄리안 레넌에게 물려 주고 말았다. 그는 어린 줄리안에게도 ‘없는 아버지’였다. 요코는 션을 낳기 전 한 차례 유산의 아픔을 겪었다. 그래서일까. 레넌의 션 사랑은 극진했다.

레넌은 요코 앞에선 ‘아이’가 됐다. 레넌이 아이처럼, 태아처럼 요코 옆에 발가벗고 누워 잔뜩 웅크린 채 찍은 사진은 유명하다. 리버풀 노동자 계급 출신인 레넌은 가부장적이었다. 요코를 만나 모성, 그리고 여성주의에 눈 떴다. 스스로를 ‘하우스 와이프’의 반대 개념인 ‘하우스 허즈번드’라 칭했다. 레넌은 반세기 전 페미니즘에 동참한 ‘멋진 남편’이었다. 요코에게 바치는 ‘우먼’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발표하기도 했다.

전시장 한 곳엔 레넌이 ‘이매진’을 작곡할 때 쓴 붉은색 피아노가 놓여 있다. “이매진 올 더 피플 쉐어링 올 더 월드(모든 사람이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피아노 옆 스피커에서 ‘이매진’이 울려 퍼진다. 연대를 향한 레넌의 목소리가 뜨겁다.

1985년 영국에서 열린 자선 공연 라이브 에이드 무대 모습. 왼쪽 세 번째가 프레디 머큐리다. 리처드 영 제공
1985년 영국에서 열린 자선 공연 라이브 에이드 무대 모습. 왼쪽 세 번째가 프레디 머큐리다. 리처드 영 제공

◇일상에서도 빛난 머큐리의 쇼맨십

‘보헤미안 랩소디 사진전’에선 사진작가 리처드 영이 머큐리를 10여 년 동안 동행하며 무대 안팎에서 찍은 사진들을 볼 수 있다. 무대 위 머큐리는 카리스마와 파격 자체였다. 일상 속 머큐리는 다른 사람 같다. 그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다정다감했다. 1985년 7월 13일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자선 공연 라이브 에이드에서 찍은 사진 속 머큐리가 그렇다. 공연을 마친 가수들이 모두 무대에 모인 자리에서 머큐리가 록밴드 U2의 보컬인 보노와 이야기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담겼다. 사진 속 머큐리 뒤편엔 ‘글램 록의 대가’ 데이비드 보위가 환하게 웃고 있다. 두 사람은 ‘절친’이었다. 머큐리와 보위는 ‘언더 프레셔’를 함께 만들고 부른, 둘도 없는 음악 지기이기도 했다.

1984년 영국 런던의 한 카페. 머큐리가 연인 메리 오스틴을 끌어안고 볼에 입을 맞추는 그 유명한 사진이 찍힌 역사적 장소다. 두 사람은 머큐리의 38번째 생일 파티를 즐기는 중이었다. 머큐리와 오스틴의 눈에 사랑이 가득하다. 두 사람은 1978년부터 연인이었다.

프레디 머큐리와 그의 연인인 메리 오스틴. 리처드 영 제공
프레디 머큐리와 그의 연인인 메리 오스틴. 리처드 영 제공

무대 밖의 머큐리가 얌전한 남자이기만 한 건 아니었다. 그는 쇼맨십을 알고 즐겼다. 머큐리가 1986년 생일 파티에 흰색 꽃 모양을 한 모자를 쓰고 나와 분위기를 띄우는 모습을 비롯해, ‘발랄한’ 머큐리의 일상도 전시에서 확인해 보자. 머큐리가 솔로곡 ‘더 그레이트 프리텐더’의 뮤직비디오 촬영을 기다리며 대기실에서 여장하는 모습, 테니스를 친 뒤 라켓으로 장난을 치는 모습도 흥미롭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라이브 공연 영상을 보고 또 봤을 머큐리의 팬들이여, 이제 사진 속 머큐리를 만날 시간이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