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증 잘못된 대전 ‘윤봉길 의사 상’도 현충시설 지정
실제와 다른 모습, 관리는 소홀… 누구를 기리는 동상인가
‘드디어 11시 40분경, 운명의 시각이 되자 그는 도시락으로 된 폭탄을 땅에 놓고, 어깨에 걸메고 있던 수통으로 위장된 폭탄의 덮개를 벗겨 가죽끈이 붙은 그대로 오른손에 주고 왼손으로 안전핀을 빼면서 앞사람을 헤치고 2미터 가량 전진하여 단상 위로 투척하였다’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자 공훈록은 1932년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 공원 의거’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지난 2002년 국가보훈처는 이 같은 내용을 근거로 대전 중구 충무체육관 앞에 세워진 ‘윤봉길 의사 상’을 현충시설로 지정했다. 1972년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가 건립한 이 동상은 윤 의사의 의거 모습을 역동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동상을 자세히 살펴보면 공훈록의 내용과 전혀 다르게 재현된 것을 알 수 있다. 윤 의사가 실제 투척한 수통 폭탄은 어깨에 멘 채 오른손엔 수류탄이 쥐어져 있다. 이 같은 명백한 오류에도 불구하고 동상은 심의를 거쳐 현충시설로 지정됐고, 유지 보수 등을 위해 국고가 투입되고 있다.
9일 동상의 오류를 뒤늦게 인지한 국가보훈처 현충시설과 관계자는 “건립 당시 사료가 부족해 제대로 재현이 되지 못한 것 같다”면서 “동상의 형상이 독립유공자 공훈록과 배치되는 만큼 대전보훈지청과 협의해 개보수를 추진하는 방법을 검토하겠다”라고 밝혔다.
현충시설 지정은 건립 취지 및 독립운동과의 관련성, 비문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결정하는데, 외형적 고증의 정확성을 따지는 규정은 따로 없다. 현재 현충시설로 지정된 독립운동가의 동상은 95기, 기념관 등 다른 현충시설에 부속된 동상까지 합하면 수백 기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윤 의사 동상의 사례를 볼 때 고증 오류에 대한 전면적인 점검과 명확한 기준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실제 인물과 다르게 묘사된 동상
현충시설로 지정된 독립운동가 동상 중엔 실제 인물과 생김새가 전혀 다른 경우도 적지 않다. 한국일보 ‘뷰엔(View&)’팀이 서울과 대전, 충남 천안 등지에 위치한 유관순 열사, 이봉창 의사 등 독립운동가 동상 20여기를 직접 촬영한 후 비교해 보니 얼굴 생김새가 제각각일 뿐 아니라 안내문 없이는 누굴 형상화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인물의 특징을 살리지 못한 동상도 있었다. 역사적 인물의 동상이 실제와 똑같아야 한다는 법은 없으나 닮지 않은 동상을 세우고 기려야 하는 현실은 안타깝다.
지난 4일 서울 중구 장충단 공원. “사진을 보면 코가 뾰족하고 머리숱이 별로 없는 중년인데 동상은 전혀 다르다. 자료가 없다면 모를까 역사적 인물의 동상을 왜 저렇게 만들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시민 주모(64)씨가 독립운동가 이준 열사의 동상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1964년 ‘일성회(현 일성이준열사기념사업회)’가 건립한 ‘일성이준열사지상’은 양복에 나비넥타이 차림을 하고 있다. 1907년 이 열사가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파견됐을 당시 찍은 사진 속 복장과 일치하지만 얼굴은 머리숱이 많고 콧수염이 없는 청년으로 묘사돼 있다.
이 열사 동상에서 300여m 떨어진 남산2호터널 앞엔 1970년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가 건립한 ‘류관순상’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동상 역시 커다란 눈과 오뚝한 코 등 서구적인 얼굴로 표현돼 있어 익히 알고 있는 유 열사와 전혀 닮지 않았다. 동상 앞을 지나던 김모(73)씨는 “독립운동가들 동상 세우는 건 좋은 일이지만 한번 만들 때 실제 인물과 비슷하게라도 만들어야 헷갈리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엄연히 사진 자료가 남아 있는 독립운동가들의 동상이 이처럼 실제와 다르게 만들어진 까닭은 무엇일까. 미술평론가인 김영호 중앙대 교수는 “실존 인물의 동상은 외형을 닮게 만드는 것이 기본”이라면서 “그러나 1960년대 후반 국내 조각가들이 모방보다 표현에 집중한 ‘모더니즘’ 사조의 영향을 받은 데다 박정희 정권의 필요에 의해 선동적이고 극적인 표현에 더욱 중점을 두면서 이 기본이 소외되는 결과를 낳았다”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1960~1970년대 정부 산하단체인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 등에 의해 독립운동가를 비롯한 애국선열의 동상이 집중적으로 건립됐다.
소홀한 관리도 문제다. 3일 서울 강남구 양재시민의숲에 위치한 윤봉길 의사 동상과 용산구 효창공원 내 이봉창 의사 동상은 표면 부식과 오염이 심했고, 장충단공원 내 이준 열사 동상 주변에는 이불 등 각종 쓰레기가 방치돼 있었다. 양재시민의숲을 찾은 안모(33)씨는 “동상 관리가 제대로 안 돼 흉물스럽다. 우리가 과거를 얼마나 성의 있게 대하고 있는지 이런 부분에서 나타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가뜩이나 인적 드문 곳으로 밀려난 독립운동가의 동상이 부실한 고증과 관리 소홀 등으로 시민의 외면을 받는 사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의미는 무색해지고 있다.
김주성 기자 poem@hankookilbo.com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
박서강 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김혜윤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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