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집 걱정 사라져” “손녀 생겨 행복” 주거공유로 이룬 세대공감의 기적

입력
2019.01.17 04:40
1면
0 0

 [파편사회서 공감사회로 <4> 시작된 상생실험] 

 이예원씨 주거나눔 사업통해 김양순 할머니 집에서 함께 거주 

 “와이파이 사용법 알려드리니 좋아하셔… 대화하며 서로 위안” 

 노년-청년 세대갈등 원인이던 ‘집’이 공감매체로 거듭나 

81세 김양순 할머니와 25세 이예원씨는 ‘주거 공유’를 통해 56년의 시차를 뛰어넘은 친구가 됐다. “함께 살아보니 그제야 이해가 되더라”는 상투어도 차곡차곡 쌓인 5년의 시간 속에 현실이 됐다. 고영권 기자
81세 김양순 할머니와 25세 이예원씨는 ‘주거 공유’를 통해 56년의 시차를 뛰어넘은 친구가 됐다. “함께 살아보니 그제야 이해가 되더라”는 상투어도 차곡차곡 쌓인 5년의 시간 속에 현실이 됐다. 고영권 기자

“자식들 독립시키고 혼자 외롭게 사는 것보다는 젊은 사람이 들락날락하면서 옆에 있어 주니까 좋죠.”(김양순)

“전에는 그래야 하는 거니까 노인을 공경해야 된다고 의식적으로 생각했다면 이제는 마음에서 우러나 예의를 갖추게 된 것 같아요.”(이예원)

일찌감치 아들 셋을 독립시킨 김양순(81) 할머니는 홀로 밥 먹는 게 싫었다. 주인 없는 빈방이 유난히 휑뎅그렁했다. 휴학을 하면서 기숙사를 나와야 했던 대학생 이예원(25)씨는 당장 살 곳이 막막했다. 좁고 어두컴컴한 고시원도 월세만 35만원 이상을 내야 했다. 빈방을 놀리면서 적적하게 지내던 김 할머니. 그리고 온전한 방 한 칸 찾는 게 쉽지 않았던 이씨. 생판 모르던 두 사람이 한 지붕 아래 함께 산 지도 어느새 햇수로 5년이다. 12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빌라에서 만난 두 사람은 피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가족과 다름없는 사이가 되어있었다. 서울시가 2013년부터 추진 중인 노인과 청년의 주거 공유 사업 ‘한 지붕 세대공감’을 통해서다. 지난해 회계사 시험에 합격한 이씨는 “수험 생활을 하면서 심적으로 흔들릴 때나 밤늦게 공부하고 들어올 때마다 따뜻하게 맞아준 할머니께 누구보다 크게 의지했다”라며 “(이곳으로 오기) 전에는 어르신들과 대화할 기회조차 없었는데 함께 살아보니까 노년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세대갈등이 큰 원인을 차지하는 파편사회 속으로 공감사회로 이끌어줄 한 줌 볕이 들고 있는 것이다.

세대전쟁을 세대연합으로

집은 세대 간 갈등의 주된 소재다. 흡사 ‘세대 전쟁’에 가깝다. 주거난에 시달리는 청년들은 집을 소유하기는커녕 주거 빈곤층으로 추락하고 있다. 노후 대비로 집밖에 가진 게 없는 기성세대는 집값과 임대소득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일부 임대업자들은 대학 기숙사 건립까지 막는다. 이런 가운데 한 지붕 세대공감은 주거 공유를 통해 ‘세대 공감’의 기회까지 제공하고 있어 뜻 깊다.

이 사업에 참여하는 홀로 사는 노인이나 노부부는 보증금 없이 시세의 절반 가격에 남는 방을 대학생들에게 내어준다. 노인들은 약간의 임대수입을 챙기고, 적적함을 달랜다. 대학생 김혜윤(27)씨는 지난해 보증금 없이 월세 25만원의 방을 찾아 헤매다 한 지붕 세대공감 사업을 알게 됐다. 그는 “집에 들어가면 할머니께 이런저런 말도 먼저 하고, 식사도 자주 함께했다”라며 “그렇게 잘 먹다 보니 살이 찔 정도였다”고 말했다. 김씨는 “할머니가 와이파이 사용이나 사진을 컴퓨터로 옮기는 방법을 잘 몰라 도와드렸더니 너무 좋아하셨다”라며 “노인 계층이 디지털 소외를 겪고 있다는 걸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함께 밥을 먹고, 대화를 하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로 나아가게 된 경우다.

노후 주거의 대안을 개발하고 있는 더함플러스협동조합의 김수동 이사장은 “세대 간 주거공유 사업은 일상에서의 교류와 활동을 통해 세대 공감의 기회를 제공하고 세대 통합의 장이 되어야 한다”라며 “집을 둘러싼 세대전쟁을 세대연합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고 말했다.

노인과 청년세대 마찬가지로 고통

“노인층과의 세대 간 소통이 어려웠다.” 우리나라 청ㆍ장년 10명 중 9명(90.0%)의 생각이다. 청ㆍ장년층의 87.6%는 노인층과 청년층 간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2018년 노인인권종합보고서 내용 중 일부다. 노인층과 젊은 세대 간 단절이 심각하다. 급격한 사회 변화로 인해 필연적으로 발생한 세대 간 차이가 쉽게 세대 갈등으로 비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핵가족화는 주변에서 자연스럽게 노인세대와 부딪히며 알아가는 기회 자체를 앗아갔다. 오늘날 젊은 세대가 노인의 존재를 접하는 곳은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 안뿐이다. 이도 아니면 언론이나 미디어에 비친 노인들이다.

최샛별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미디어에 보도될 만큼의 심각한 문제나 사건 사고를 통해 노인을 접하면서 이들에 대한 인식이 단편적이거나 왜곡될 수밖에 없다”며 “모든 노인 세대가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젊은 세대에게 각인된 노인의 모습은 선거에서 무조건 1번 찍는 보수 꼰대, 어버이연합, 지하철에서 소리 지르는 사람, 그래서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나이든 사람일 뿐이다”라고 설명했다.

노인과 청년이 얼굴을 맞대는 것조차 어렵다 보니 서로 공유하는 역사와 가치관이 다른 데서 오는 세대간 격차가 자주 갈등의 불씨가 된다. 장유유서(長幼有序)가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관을 이루던 시절을 살아온 노인층과 탈(脫)권위주의, 평등주의를 배워온 젊은층의 가치관이 맞서게 된 것이다. 최 교수에 따르면, 노인세대는 대중교통 노약자석을 당위로 생각하는 반면 젊은 세대는 ‘나와 동등한, 그러나 단지 나이가 많은 사람’인 노인에 대한 배려라고 본다.

오늘날의 세대 갈등은 특히 계층 간 갈등과 맞물리면서 그 폭발력이 커졌다. ‘노인네’, ‘꼰대’는 애교일 정도로 ‘노인충’, ‘틀딱충’, ‘할매미’ 등 노인에 대한 혐오 표현이 만연한 것은 그 단초다. 마이너스 성장 시대 극한 경쟁에 몰려 불안한 사람들은 ‘젊은 세대의 몫을 노인 세대가 빼앗아간다’는 레토릭에 현혹되기 쉽다. 사실은 소수의 기득권층을 제외한 대부분의 노인과 청년의 삶이 마찬가지로 힘들어졌다는 게 현실인데도 말이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 세대가 얻는 이익은 다른 세대의 희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며, 서로 다른 세대는 경쟁하기보다 공동의 이익을 추구한다”라며 “세대공존, 세대통합의 시각이 노인차별, 세대갈등의 해소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권영은기자 you@hankookilbo.com

김수진 인턴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