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비핵화 협상을 벌이고 있는 미국 고위 관계자가 21일(현지시간) 전화 브리핑에서 “우리는 매우 신속하고 큼직하게(big bites) 움직여야 한다”며 “점진적 조치를 원하는 게 아니다”고 밝혔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연일 “서두를 게 없다”며 속도 조절에 나선 데 대해서도 “서두르지 않겠다는 게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며 “비핵화는 회담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강조했다.
미 협상팀의 이런 설명은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영변 핵 시설에 대한 형식적인 폐기 선언에 그칠 것이란 비관론을 잠재우는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회담이 나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이 정도 얘기가 나온다면 예상 밖의 큰 그림이 그려지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비핵화 개념이 서로 다른 것 아니냐는 지적에 “비핵화에 대한 공감대를 진전시키는 게 실무 협상팀의 최우선 과제”라고 밝힌 대목도 고무적이다. 비핵화에 대한 정의부터 분명하게 짚고 나간다면 ‘북한 비핵화’(북 핵ㆍ미사일 폐기)가 ‘한반도 비핵화’(주한미군 핵우산 제거)로 둔갑하고 있다는 일각의 우려는 설 땅을 잃게 될 것이다. 실무협상 의제로 비핵화에 대한 인식 공유에 이어 모든 대량살상무기(WMD)와 미사일 프로그램 동결, 로드맵 작성 등이 제시된 것도 전향적이다. 핵무기뿐 아니라 생화학무기도 포함하는 WMD가 의제에 오르는 것은 기대 이상이다. 전체 비핵화 로드맵까지 나온다면 큰 성과가 아닐 수 없다.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와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의 하노이 실무협상은 막판까지 이어질 공산이 크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전용 열차는 이르면 23일 평양을 떠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열차가 내려다 보이는 중국 단둥의 중롄호텔은 예약을 받지 않고 있고, 국경 경비도 삼엄해졌다. 한미는 북한이 비핵화를 통한 경제 발전의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다양한 당근을 내 놨다. 회담 성공 기대감은 커졌지만 북한이 과연 비핵화에 나설지는 장담할 수 없다. 미 당국자의 말대로 모든 게 합의될 때까지는 어떤 것도 합의된 게 아니다. 실질적 비핵화 조치 등 북한의 통 큰 결단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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