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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미국의 셈법 의아하다는데… 더 의아한 북한의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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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미국의 셈법 의아하다는데… 더 의아한 북한의 논리

입력
2019.03.04 04:40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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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현지시간) 새벽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묵고 있는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 하노이 호텔에서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북미 정상회담 결렬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노이=정민승 특파원
1일(현지시간) 새벽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묵고 있는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 하노이 호텔에서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북미 정상회담 결렬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노이=정민승 특파원

1일 본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취재팀이 송고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 인터뷰 내용을 보면서 체한 듯 답답했다. 미국의 거래 계산법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게 최 부상의 토로지만 더 납득하기 힘든 건 불합리한 그의 논리였다.

대표적인 게 핵ㆍ미사일 실험을 멈춘 지 1년이 훌쩍 넘었으니 이제 미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경제 제재를 풀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결의를 초래한 원인이 사라졌는데, 게다가 영변 핵 생산 시설의 영구 폐기라는 망외의 소득까지 국제사회에 안겨줬는데, 대체 왜 국제사회를 이끄는 미국은 응당 해야 할 의무(제재 해제 주도)를 방기하고 있느냐는 게 그의 의문이자 항의다. 하지만 시험 중단 자체가 아니라 핵 무장 차단이 대북 제재의 목표라는 건 국제사회에서 상식에 가깝다.

제재 해제 요구 명분으로 내세운 ‘인민의 고통’ 역시 핵 개발을 포기하지 않은 자의 위선적인 핑계라는 게 국제사회의 의심이다. 가령 사치품 금수로 애를 먹고 있는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가 제재 해제 덕에 완공된다면 거기서 북한이 벌어들인 돈이 정권의 금고 대신 인민 경제에 들어갈 거라는 장담을 아직 국제사회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백번 양보해 자타 공인 핵 보유 목적이 체제 생존이고 핵 포기 이후가 정말 불안하다면 자기 안전을 담보할 장치부터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는 게 순서 아닌가. 제재 해제부터 노리는 저의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힘센 미국과의 협상이 쉬울 리 없다. 그래도 제재 면제를 통한 남북 경제협력이 가능해지는 길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욕심을 부렸다. 과욕으로 비핵화 선언의 진정성을 의심 받던 협상 초기로 회귀하는 상황을 북한은 자초했다.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지만 지금부터 선택이 어떻게 보면 더 중요하다. 최 부상이 김 위원장 신년사의 ‘새로운 길’을 다시 언급했다. 중국 도움을 받아 제재 국면을 버티는 자력갱생의 길일 수도 있고, 영국 주재 외교관으로 일하다 2016년 탈북한 태영호 전 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 말대로 이란에 핵 기술을 내다팔아 생존을 도모하는 길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협상이 한 번 망가졌다고 행여 극단의 자충수를 둬서는 안 된다.

차라리 잘됐는지도 모른다. 이번 담판 결렬을 교훈 삼아 핵을 가진 채 제재를 풀어보려는 꼼수는 포기해야 한다. 핵과 경제를 함께 못 가지도록 만드는 게 제재의 힘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선대보다 실용적인 지도자로 평가 받는다. ‘뭣이 중한지’ 알 것이다. 그러려면 포기도 해야 한다. 이왕 동결(핵 무기 생산 중단)을 결심했다면 과감히 이행해야 한다. 심장부(영변 핵 시설)를 주는데 나머지를 다 내놓는 걸 머뭇거릴 이유가 뭐가 있나. 승부는 결국 감축 협상에서 난다. 감축 의무 이행에 게으른 핵 보유국 미국도 당당할 게 없는 협상이다. 핵과 전쟁 없는 한반도는 좋은 명분이다. 북한이 진정성을 챙겨 돌아오기를 바란다.

권경성 정치부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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