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의 벗’ 이미지 연출하고
‘카리스마’ 부풀리고
사진에 나타난 김정은의 양면적 모습
“수령의 혁명 활동과 풍모를 신비화하면 진실을 가리게 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최근 제2차 전국 당 초급선전일꾼대회에 보낸 서한에서 최고지도자에 대한 신격화를 반대했다. 그는 또, “수령은 인민과 동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인민과 생사고락을 같이하며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헌신하는 인민의 영도자”라며 수령상 선전 지침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그런데 북한 선전 매체들이 그간 김 위원장의 활동을 촬영, 보도한 사진을 보면 이미 집권 초기부터 이 같은 수령상 구축에 전념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김 위원장 자신이 언급한 대로 주민들을 위해 헌신하는 소탈하고 자상한 지도자로 묘사돼 온 것이다. 다만, 미사일 발사를 비롯한 각종 군사 훈련이나 대규모 건설, 수확의 현장 등에선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는 듯한 몸짓과 표정으로 강력한 리더의 이미지를 강조했다. 김 위원장의 양면적인 사진 정치는 2012년 이후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이 보도한 사진에 그대로 담겨 있다.
#애민 행보로 인간적인 지도자 이미지 강조
지난해 12월 원산의 한 구두공장을 찾은 김 위원장은 직접 구두 밑창에 접착제를 바르는 장면을 연출했다. 이 같은 ‘애민 행보’를 통한 자상한 이미지 구축 작업은 집권 초기부터 최근까지 계속되고 있다. 가정집을 방문해 주민에게 술을 따라 주는가 하면 공중목욕탕의 물 온도까지 손으로 직접 느껴 보며 세심히 챙겼다. 염소 우리에 들어가 배설물을 밟고 선 채 현장 지도를 하거나 수산사업소 창고의 생선 더미 옆에 걸터앉아 기념사진을 찍는 등 소탈한 모습도 자주 보여 줬다.
2014년 10월 노동신문은 은둔 40여일 만에 지팡이를 짚고 나타난 김 위원장의 사진을 여러 장 게재했다. 건강 이상설 등 외부의 무성한 추측과 내부의 불안감에도 아랑곳없이 절뚝거리는 수령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촬영해 보도한 것이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현장 지도에 나선 인간적이고 헌신적인 이미지를 강조하려 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김정은의 애민 행보는 폐쇄적이던 김정일 시대의 신격화, 무오류성을 탈피하는 한편, 주민에게 소탈하게 다가갔던 할아버지(김일성) 시대로 돌아가려는 시도”라고 해석했다.
#강력한 리더십 갖춘 신적 존재로 부풀려
김 위원장은 강력한 리더십을 과시하고 체제를 안정시키는 수단으로도 사진을 활용해 왔다. 수천 명 단위로 기념사진을 찍는 등 ‘1호 사진(김일성 삼부자가 나온 사진)’을 활용해 주민들의 충성심을 확보했고, 각종 군사 훈련을 보도한 사진 속에서는 현장을 직접 지휘하며 강력한 전투력에 흡족해하는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2014년 6월 전술로켓 발사 실험 당시 뒷짐을 진 채 구름을 뚫고 솟아오르는 로켓을 내려다보는 최고지도자의 모습은 주민들의 뇌리에 전능한 신적 존재로 각인되기 충분했다.
경제 발전과 풍족한 수확을 최고지도자의 업적으로 선전하기 위해 북한 매체들은 김 위원장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1~2m 거리의 근접 촬영으로 강조하거나 수확 현장을 초광각 렌즈로 촬영, 더욱 풍성하게 표현하기도 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오로지 이 같은 선전ㆍ선동 전략의 성공 덕분이라고 단정할 순 없으나 집권 후 당ㆍ정ㆍ군을 빠른 시간 내 장악했고 저항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체제 안정화와 리더십을 다지는 데 성공적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라고 평가했다.
김 위원장은 최근 서한을 통해 인간적인 수령상과 더불어 자립 경제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 점으로 미루어 앞으로 북한의 선전 전략은 리더십 과시보다 주민 생활에 좀 더 다가가 함께 호흡하는 방식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 정상 국가의 면모를 갖춤과 동시에 자신의 권력 체제를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해서다. 홍 실장은 “인민들이 다양한 채널을 통해 세계와 맞닥뜨리는 상황에서 김정은은 절대적 신비감보다 애민 행보가 체제 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또, “민생에 생동감을 불어넣을 수 있는 젊은 지도자에 대해 주민들의 기대와 지지가 상당한데 김정은이 이런 여론을 파악하고 그에 부합하는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한편으로는 이처럼 높은 기대치 때문에 김 위원장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나름대로 눈높이를 낮춰 다가가려 노력해 왔으나 신격화에 익숙한 주민들의 기대가 너무 높아 오히려 괴리감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양 교수는 “김정은 입장에선 지도자와 주민의 눈높이가 서로 어긋났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면서 “최근의 서한은 주민을 향해 ‘지도자가 이렇게 낮게 다가가고 있으니 서로 눈높이를 맞춰서 함께하자’는 메시지로도 해석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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