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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장애 있어도 시험지 대신 못 넘겨준다” 공무원 시험 기회조차 빼앗는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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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장애 있어도 시험지 대신 못 넘겨준다” 공무원 시험 기회조차 빼앗는 서울시

입력
2019.03.18 04:4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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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병변 1급 장애인 조광희(21)씨가 학교 강의실에 놓인 휠체어 전용 책상 앞에 앉아 펜을 입으로 문 채 공부하고 있다. 조씨는 시험지를 대신 넘겨주는 편의 지원을 거부 당해 지난해 서울시 공무원 시험을 보지 못했다. 조광희씨 제공
뇌병변 1급 장애인 조광희(21)씨가 학교 강의실에 놓인 휠체어 전용 책상 앞에 앉아 펜을 입으로 문 채 공부하고 있다. 조씨는 시험지를 대신 넘겨주는 편의 지원을 거부 당해 지난해 서울시 공무원 시험을 보지 못했다. 조광희씨 제공

뇌병변 1급 장애인 조광희(21)씨는 지난해 6월 서울시 공무원 임용 시험장에서 시험지를 펴보지도 못한 채 떠나야 했다. 손을 쓰기 어려워 대신 책자형 시험지를 넘겨 줄 사람이 필요했지만, 도움을 요청한 감독관에게 “형평성에 어긋나서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기 때문이다. 시험을 포기한 뒤 곧바로 시청을 찾아가 민원을 제기했지만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2016년 대학 입학 이후 공공기관 일자리를 유일한 희망으로 보고 공무원 시험 준비에 나섰던 조씨와 서울시의 싸움이 9개월 째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최근 공고가 난 ‘2019년 임용 시험’을 앞두고 조씨는 “시험을 볼 환경도 마련되지 않는데, 합격을 한다고 해도 제가 일할 수 있는 곳이 있을까요”라는 좌절감에 빠져 있다.

서울시는 여전히 대필, 휠체어용 책상, 시험시간 연장 등 허용된 항목 외에는 편의를 제공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장애인이 원서를 접수할 때 기입할 수 있는 편의제공 요청 항목에 ‘시험지를 대신 넘겨주는 편의’ 사항이 없기 때문이다. 추가 요청 사항을 적을 수 있는 기타 항목이 있긴 하지만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지침도 서울시는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인재개발원 담당자는 “기타 항목에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적는다면 검토를 해볼 수 있다”면서도 “뇌병변 장애인들이 한 공간에서 시험을 보는데, ‘왜 저 사람만 시험지를 넘겨주느냐’는 불만이 나올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서울시의 입장은 공공기관 시험에서 장애인 능력 평가를 위한 보조수단을 두도록 하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국가직 공무원 시험을 주관하는 인사혁신처 관계자 역시 “공공기관 채용 시험을 볼 때 장애인 편의 제공이 이뤄지기 때문에 문제만 풀 수 있다면 응시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실제 국가직 공무원 시험에서는 뇌병변 장애인에게 시험지를 넘겨주는 편의를 제공한 사례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2015년 7급 세무직 시험에서 회계학 과목 메모 대필을 허용하도록 권고하는 등 수 차례 장애인 편의 제공과 관련해 유사한 입장을 밝혀 왔다.

조씨는 6월 시험을 앞두고 국가인권위원회의 유권 해석에 기대를 걸고 있다. 지난해 시험 포기 직후 서울시의 편의 제공 거부 문제를 고발한 진정서에 대해 인권위의 답변이 조만간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조씨를 지원하고 있는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의 김재왕 변호사는 “이번 시험에서도 서울시가 조씨를 지원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유지할 경우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라는 입장이다.

뇌병변 1급 장애로 10년 넘게 비장애인과 같은 조건 속에서 면접을 보며 연신 고배를 마셔야 했던 A(38)씨도 “제가 소송을 걸어 바꾸기 전까지 아무 조치도 없었다”며 공공기관들의 안이한 인식을 지적했다. 면접에서 보완대체의사소통기구(AAC) 지원이 필요하다며 2017년 광주시교육청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승소한 뒤 공립 중등고사 임용시험에 합격한 경험을 들려 준 A씨는 “상대적으로 장애가 가벼운 사람만 채용하는 것은 장애인 공무원 채용 제도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이어 “어떤 환경을 조성해야 장애인이 제 능력을 발휘하게 할 수 있을 지부터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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