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에는 포장지에 한글로 커다랗게 ‘대박’이라 적힌 라면이 지난해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작년 3월 ‘김치 맛’과 ‘양념치킨 맛’ 2종으로 출시돼 월 평균 30만개, 누적 400만개가 팔린 ‘대박라면’이 주인공이다. 혀가 얼얼할 정도로 자극적인 매운 맛이 말레이시아 사람들의 ‘취향을 저격’한 것인데, ‘대박 라면’을 만든 신세계푸드는 여세를 몰아 지난 1일 후속 제품인 ‘고스트페퍼 스파이스 치킨 맛’을 출시했다. 이 라면 역시 2주 만에 초도물량 10만개가 완판됐다. 신세계푸드의 ‘대박라면’은 현지 라면보다 3배나 비싼 1,700원 정도에 판매되는 히트 상품이다. 그리고 국내에는 유통되지 않는 현지 식품이자, 무슬림(이슬람교를 종교로 가진 사람)들이 즐겨 먹는 ‘할랄 라면’이다.
◇무슬림에게 허용된 식재료만 사용
24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무슬림 비중이 높은 말레이시아는 1인당 GDP가 1만 달러 이상이고, 하루 400만봉 가량의 라면이 소비되는 거대 시장이다. 그러나 동남아시아 라면 시장 진입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무슬림이 먹을 수 있는 ‘할랄 라면’으로 인증받아야 하는데, 까다롭고 복잡한 생산 방식을 거쳐야 한다.
이슬람 율법에 따라 ‘허용되는 것’을 의미하는 ‘할랄’이라는 단어처럼 무슬림에게 허용된 식재료만을 사용해야 한다. 대부분의 야채나 과일, 곡류, 어류 등을 비롯해 소, 양, 염소, 사슴, 닭, 오리 등의 육류는 ‘할랄식품’으로 분류된다. 다만 육류는 반드시 ‘자비하’라는 이슬람 종교 의식에 따라 도축된 것만 먹을 수 있다. 금지된 음식은 ‘하람’이라고 하는데 돼지고기, 술 등 알코올이 들어간 음식, 장어와 메기 같이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물고기, 파충류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말레이시아에서 대박난 ‘고스트페퍼 스파이스 치킨 맛’ 라면은 할랄 식품인 닭이 들어가기 때문에 별 문제 없어 보이지만, ‘자비하’ 의식에 따라 도살된 것만 사용해야 한다. 한 번에 목을 쳐 피를 뺀 뒤 정육하는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또 할랄식품 전용 생산라인을 따로 마련해야 한다. ‘하람’에 해당하는 다른 식재료가 혼용된 라인에서 할랄식품을 생산할 경우 ‘교차오염’이 된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하람’이 담기거나 스쳤던 그릇 역시 사용해선 안 된다. 때문에 할랄식품을 만들 때는 일반 식품보다 비용이 더 많이 든다.
이런 모든 과정을 통과해야 현지에서 할랄 식품을 판매할 수 있다. 신세계푸드는 2017년 11월 말레이시아의 대형 제조ㆍ유통업체인 ‘마미더블데커’와 손잡고 합작법인 ‘신세계마미’를 설립했다. 또 말레이시아의 할랄 인증 마크인 ‘자킴’(JAKIM)을 획득해 다른 동남아 국가에도 수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했다.
◇할랄 라면 시장 눈독 들이는 국내 기업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2009년 6,350억 달러 규모였던 세계 할랄식품 시장은 올해 2조5,370억 달러로 10년 새 4배 이상 커졌다. 세계 식품시장에서 할랄식품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15.9%에서 21.2%까지 높아질 전망이다. 동남아 시장에 진출한 국내 식품업체들은 할랄식품 시장을 차지하려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신세계푸드와 함께 농심과 삼양식품의 활약도 눈부시다. 2011년 부산에 할랄식품 전용 공장을 마련해 생산을 늘린 농심의 ‘할랄 신라면’은 지난해 말레이시아에서 약 4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2014년 ‘불닭볶음면’으로 말레이시아에 진출한 삼양식품도 2016년 65억원에서 지난해 170억원으로 수출액이 3배 가량 뛰었다. 삼양식품은 본격적인 할랄식품사업을 위해 지난 1월 말레이시아 국영기업 FGV그룹과 손잡고 현지 생산공장 설립도 검토하고 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할랄식품이 까다로운 공정을 통해 만들어진 건강식으로 알려지면서 무슬림뿐만 아니라 비무슬림의 구매도 점차 늘고 있다”며 “할랄식품 시장이 식품업계의 미래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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