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한국에 상륙한 넷플릭스는 초기만 해도 시장의 박한 평가를 받으며 맥을 추지 못했다. 이미 모바일로 영화와 드라마를 즐길 수 있는 토종 서비스들이 자리를 잡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듬해부터 넷플릭스는 ‘옥자’ ‘범인은 바로 너’ 등 한국 시장을 대상으로 한 콘텐츠를 조금씩 선보였지만, 이마저도 기대감에 비해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일부 ‘미드(미국 드라마)’ 마니아 층을 중심으로 입소문이 나는 정도에 그쳤다.
◇1년 새 500% 성장… 비결은 ‘콘텐츠의 힘’
그러던 넷플릭스가 지난해부터 급속 성장을 시작해 1년 만에 ‘500%’ 성장을 이뤄냈다. 28일 닐슨코리아클릭에 따르면 올해 2월 말 기준 넷플릭스 웹 및 안드로이드 앱의 순방문자 수는 240만 2,000명을 기록했는데, 이는 지난해 2월(48만5,000명)에 비해 무려 4.95배나 높아진 수치다. 평균 체류 시간도 지난해 2월(125분)에 비해 2.5배 증가한 306분을 기록했다. 올해 초 국내 기자간담회에서 “2016년이 ‘걸음마를 배우는 단계’였다면 올해는 ‘공을 차며 뛰어다니는 단계’가 될 것”이라던 넷플릭스의 자신감이 이용자 수로 증명된 셈이다.
넷플릭스의 ‘폭풍 성장’에는 올해 1월 25일 넷플릭스를 통해 독점 공개된 ‘킹덤’의 역할이 주효했다. 킹덤은 넷플릭스가 회당 15억~20억원을 들여 야심차게 제작한 6부작 ‘조선판 좀비’ 드라마로, 탄탄한 대본을 바탕으로 뛰어난 미술과 연출이 돋보여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넷플릭스는 킹덤을 전세계 190개국에서 27개 언어로 동시에 공개했으며, 방영 전부터 시즌2 제작 확정을 공표할 정도로 공을 들였다.
닐슨코리아클릭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126만명 수준이었던 넷플릭스 이용자 수는 킹덤이 공개된 올해 1월 209만4,000여명을 기록했다. 한 달 만에 65.6%가 증가한 것이다. 특히 기존 관심층인 20대(24만명)뿐 아니라 30대와 40대(각 23만명), 50대(13만명)에서도 가파른 이용자 수 증가를 보였다. 킹덤이 넷플릭스 이용자 저변을 넓힌 것이다. 지난해 11월부터 넷플릭스와 IPTV 단독 제휴를 맺고 있는 LG유플러스의 ‘U+TV’의 경우 킹덤 공개 직후 일일 유치 고객이 기존 대비 3배 이상 증가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국내 OTT의 견제에도 당분간 이어질 ‘넷플릭스 천하’
넷플릭스의 무서운 성장세에 국내 지상파와 OTT(인터넷 TV) 서비스들은 지난해부터 적극적인 견제에 나섰다. 자체 OTT 플랫폼 ‘옥수수’를 가지고 있는 SK텔레콤이 가장 적극적이다. SK텔레콤은 지상파 3사의 OTT ‘푹(POOQ)’과 오는 6월 통합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으로, 두 서비스 가입자 수를 단순 합산하면 1,300만명에 이른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26일 열린 정기주주총회에서 “넷플릭스가 OTT 대표 플랫폼으로 굳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국익에 도움되지 않는다”며 정면으로 넷플릭스를 비판하기도 했다. CJ ENM의 ‘티빙’과 네이버의 ‘네이버TV’ 등도 넷플릭스에 시장을 완전히 내주지 않겠다는 태세다.
그러나 투자 규모에서 오는 콘텐츠 제작 역량 차이가 문제다. 넷플릭스는 국내 6개를 비롯해 전세계 180여개의 오리지널(자체제작)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으며, 지난 한 해 여기에 투자한 금액만 80억달러(약 9조원)에 달한다. 국내 OTT 역사상 최대 규모 투자가 35억원 수준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전면 경쟁이 어려운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는 “킹덤 사례에서 보듯, 이용자들은 좋은 콘텐츠를 따라 서비스를 선택한다”면서 “매력적인 콘텐츠를 계속해서 발굴해내지 못하면 결국 시장에서 사장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넷플릭스에 ‘킹덤 효과’가 계속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2017년 6월 넷플릭스에서 단독 공개된 봉준호 감독 영화 ‘옥자’는 그 달에만 53만명을 넷플릭스로 끌어들였지만, 두 달이 지나자 이용자가 도로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이용자들이 넷플릭스의 ‘첫 달 무료’ 정책을 이용해 보고 싶은 콘텐츠만 즐기고 다시 빠져 나온 것이다. 닐슨코리아클릭 관계자는 “현재 킹덤으로 유입된 넷플릭스 이용자들의 충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이들이 지속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예상한 듯 넷플릭스는 다음달 아이유를 주인공으로 한 옴니버스 영화 ‘페르소나’를 단독으로 공개하기로 하는 등 공격적인 국내 콘텐츠 라인업을 세우고 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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