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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2막!] “최고의 노후 설계는 평생 현역… 인생 N모작 준비하세요”

입력
2019.04.03 04:4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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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4모작에 성공한 장필규 컨설턴트 

서울50플러스 재단에서 중장년 취업지원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는 장필규 씨가 지난해 9월 서울 강남 서울무역전시장(SETEC)에서 열린 '신중년 인생3모작 박람회'에서 특강을 마치고 활짝 웃고 있다. 장필규 씨 제공
서울50플러스 재단에서 중장년 취업지원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는 장필규 씨가 지난해 9월 서울 강남 서울무역전시장(SETEC)에서 열린 '신중년 인생3모작 박람회'에서 특강을 마치고 활짝 웃고 있다. 장필규 씨 제공

49.1세. 우리나라 근로자가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평균 연령(한국고용정보원 추산)이다. 50대 안팎에 직장에서 밀려난 이들은 취업에 실패한 자녀와 고령 부모를 함께 부양해야 하는 ‘샌드위치’ 신세에 내몰린다. 하지만 재취업 시장은 냉혹하다. 가뜩이나 ‘백수 가장’이라는 자각에 자신감이 바닥을 기는데, 재취업마저 여의치 않으니 결국 얼마 안가 손쉬운 자영업의 길을 택하게 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8월 기준 비(非)임금근로자의 60.5%는 50대 이상이며, 최근 1년 내 사업을 시작한 자영업자의 56.9%는 임금근로자 출신이다. 편의점, 치킨집 등 자영업 시장이 레드오션이 된 배경이다.

신(新)중년(50~60대) 은퇴자를 둘러싼 엄혹한 현실을 뚫고 연이어 재취업에 성공한 사람이 있다. 현재 서울시 50플러스재단에서 중년층의 재취업을 돕고 있는 장필규(63) 컨설턴트다. 그는 2008년 50대 초반의 나이에 평생 다닌 대기업을 퇴직한 뒤 유통기업 대표→농촌진흥청 전문위원→재취업 컨설턴트로 ‘인생 4모작’에 성공했다. 지난달 20일 서울 구로구 노사발전재단 서울서부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에서 만난 그는 “최고의 노후대비는 영원히 현역으로 사는 것”이라고 밝혔다.

장필규(왼쪽) 씨가 지난해 10월 서울시50플러스재단 남부캠퍼스 열린상담실에서 재취업 관련 상담을 하고 있다. 장필규 씨 제공
장필규(왼쪽) 씨가 지난해 10월 서울시50플러스재단 남부캠퍼스 열린상담실에서 재취업 관련 상담을 하고 있다. 장필규 씨 제공

 

 ◇인생 1모작: 27년간 대기업 사원 

건국대 축산학과 74학번인 장 씨의 첫 직장은 두산그룹 계열사인 두산곡산(92년 두산종합식품으로 상호변경)이었다. 1981년 27살에 취업시장에 뛰어들어 ‘14전15기’ 끝에 겨우 얻어낸 일자리였다. 비교적 전공을 살려 생산부에서 배합사료를 만드는 일을 맡았다. 평생 ‘사료맨’으로 살다 정년을 맞는 삶이 그려졌다.

외환위기 직후 기로에 섰다. 그룹에서 ‘종가집’ 김치를 글로벌 브랜드로 육성하려는 목표를 세웠고, 99년 백승래 전 제일제당 전무가 두산종합식품의 식품사업부문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이후 사측은 장 씨를 식품사업부문의 김치공장 관리부장으로 발령 냈다. 입사 이래 사료 생산 업무만 맡아온 19년차 회사원에겐 이직과 다름없는 인사였다. 장 씨는 퇴사를 고민했다. 하지만 “리어카 끌 자신 있나? 가장으로서 대안은 있나?”는 아내 얘기를 듣고 받아들였다. 외환위기 여파로 사료 부문에서 매년 20~30%씩 직원들이 짐을 쌀 때였다.

장 씨는 김치에 빠르게 적응했다. 횡성공장 관리부장→횡성공장 공장장→거창공장 공장장 등을 거쳤다. 그는 “10년간 현장(공장)에서 김치 제조를 책임졌다”고 회상했다. 김치 매출도 가파르게 올랐다. 그러다가 2006년 10월 종가집 김치를 포함한 식품 부문 전체가 대상에 1,000억원에 매각됐다. 주인이 바뀌고, 6년 아래 후배가 상사로 승진하자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다. 2년 정도 있다가 2008년 4월 생산본부장 직함으로 퇴직했다. 27년 대기업 인생이 그렇게 막을 내렸다.

서울50플러스 재단에서 중장년 취업지원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는 장필규 씨가 작년 11월 고용노동부와 노사발전재단 주관으로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열린 '신중년 신바람 전직토크' 콘서트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장필규 씨 제공
서울50플러스 재단에서 중장년 취업지원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는 장필규 씨가 작년 11월 고용노동부와 노사발전재단 주관으로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열린 '신중년 신바람 전직토크' 콘서트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장필규 씨 제공

 ◇인생 2모작: 우연찮게 찾아온 CEO 기회 

50대 중반에 닥친 강제퇴직, 백수라는 자각, 가장으로서의 불안감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이어졌다. 치주염에 걸려 수술만 여섯 번을 했다. 수술 후 후배 권유로 재취업을 도와주는 노사발전재단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컨설턴트(전직상담)에게 과거 이력과 전문성, 재취업 희망분야를 설명했다. 이후 이력서ㆍ경력기술서 작성법, 면접 기법을 교육 받았다. 장 씨는 “과거 이력서도 많이 보고 면접관으로 수 차례 참여했지만 구직자가 되니 막막했다. 모의면접을 촬영해 복기하는 등 교육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정부가 ‘농업 최고경영자(CEO) 경영대학원(MBA)’ 과정을 연다는 얘기를 듣게 됐다. 농산물 가격 안정을 위해 각 지방자치단체에 직거래 유통회사를 만들고 여기에 MBA 출신 농업경영인을 앉힌다는 취지였다. 곧장 준비를 시작한 장 씨는 2008년 9월 약 6대 1의 경쟁률을 뚫고 MBA(60명)에 합격했고 4개월간(9~12월) 240시간 교육을 이수했다. 끝이 아니었다. 지자체가 필요로 하는 인력은 10명에 불과했다. 경북 울진군에 지원한 그는 또 다시 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이듬해 4월 설립된 ‘울진농수산물유통농업회사법인’ 대표로 취임했다.

하지만 일이 맞지 않았다. 장 씨는 “대주주인 울진군이 업무를 모두 컨트롤하니 적응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2009년 말에 취임 1년도 채우지 못하고 그만뒀다. 때마침 또 한 번의 기회가 왔다. 당시 일본의 햄버거 체인업체 ‘아레후’사가 울진군과 합작으로 김치공장을 설립하면서 장 씨에게 합작회사 ‘울진로하스코리아’의 대표를 맡아달라고 제안했다. 결국 2010~2012년 3년간 김치회사 CEO를 역임했다.

 ◇인생 3~4모작: 전직 경험 나누는 컨설턴트 

두 자녀가 대학에 다녀 가계는 빠듯하고, 모아놓은 재산도 없는 현실. 장 씨는 2012년 말 세 번째 인생 농사를 위해 다시 일자리희망센터를 찾았다. 6개월간 상담과 교육을 받고, 취업박람회를 돌았다. 농촌진흥청에서 강소농지원단 민간전문가를 뽑는다는 소식을 접했다. 세 차례 도전 끝에 합격했다. 2013년부터 5년간 근무하며 경기 일대 약 농가 500곳을 대상으로 컨설팅(마케팅)을 했다.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었다.

이후 꾸준한 컨설턴트 진로 개척을 통해 장 씨는 현재 △서울시 50플러스재단 남부캠퍼스 컨설턴트 △고용노동부 노사발전재단 ‘내공’(내 경험을 공유하는) 강사로 활동하며 재취업을 꿈꾸는 중년층에게 전직 성공사례를 공유하고 있다. 50플러스 재단은 50~60대 은퇴 세대의 재교육과 사회진출을 돕기 위해 2016년 설립된 서울시 출연 기관이다.

서울50플러스 재단에서 중장년 취업지원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는 장필규 씨가 작년 9월 서울 강남 서울무역전시관(SETEC)에서 열린 '신중년 인생3모작 박람회'에서 '행복으로 가는 천직여행'을 주제로 특강을 하고 있다. 장필규 씨 제공
서울50플러스 재단에서 중장년 취업지원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는 장필규 씨가 작년 9월 서울 강남 서울무역전시관(SETEC)에서 열린 '신중년 인생3모작 박람회'에서 '행복으로 가는 천직여행'을 주제로 특강을 하고 있다. 장필규 씨 제공

 ◇인생N모작의 비결은? 

장 씨가 말하는 평생 현역의 비결은 ‘자신감을 갖고, 늘 준비하고, 계속 부딪치고 도전하라’다. 교과서적인 얘기다. 대기업 출신이라는 우리 사회의 확실한 ‘보증수표’ 덕택에 재취업이 수월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장 씨가 밟아온 재취업 궤적을 따라가보면 그렇게 간단하게 얘기할 수 없다.

먼저 철저한 준비. 재취업의 관건은 수십 년간 직장에서 축적한 경험과 전문성이란 무형자산을 얼마나 잘 포장해 어필할 수 있느냐다. 장 씨는 “대부분 퇴직할 때 뒤도 돌아보지 않고 회사를 나오는데, 저는 재취업에 도움이 될 자료(회사 기밀과 무관)를 이동식저장장치(USB)에 담았다”며 “이력서나 경력기술서에 전 직장에서 생산본부장으로서 목표관리(MBO)를 얼마나 이행했는지, 15~20년 전에 사료를 얼마나 팔았는지 등 성과를 모두 수치화해 담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이력서 하나 쓰는데 한 달이나 걸린 적도 있다고 한다. 그는 “취업준비생처럼 평일엔 구직활동에 올인하며 간절하게 재취업에 임했다”고 덧붙였다.

끊임없는 ‘발품’과 적극적인 자기홍보(PR)도 중요하다. 보통 은퇴자들은 자격지심 때문에 현업에 있는 지인을 잘 만나려 하지 않는데, 장 씨는 시쳇말로 ‘DID(들이대) 정신’으로 이들과 적극 접촉하며 재취업 준비 사실을 알렸다. 모든 일자리 정보를 다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네트워크 덕에 인천시의 ‘6차 산업 현장 코칭위원’ 등의 일자리에 지원할 수 있었다. 2013년엔 취업박람회를 돌며 두 차례 방송사 인터뷰에 응했는데, 당시 이를 접한 농진청 관계자가 장 씨에게 강소농지원단 민간전문가 채용소식을 전해주기도 했다. 그는 “재취업 상담을 하며 구직정보를 알려줘도 10명 중 1명만 적극 나선다”며 “퇴직 후 자신감을 잃고 사람도 안 만나고 외톨이처럼 집에만 있으면 결코 재취업에 성공할 수 없다. 계속 부딪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50플러스 재단에서 중장년 취업지원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는 장필규 씨가 작년 11월 고용노동부와 노사발전재단 주관으로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열린 '신중년 신바람 전직토크' 콘서트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장필규 씨 제공
서울50플러스 재단에서 중장년 취업지원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는 장필규 씨가 작년 11월 고용노동부와 노사발전재단 주관으로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열린 '신중년 신바람 전직토크' 콘서트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장필규 씨 제공

 ◇청년 때보다 지금이 더 행복 

장 씨의 인생 N모작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그는 중년층을 대상으로 한 강의 때마다 “최고의 노후설계는 항상 배우는 자세로 평생 현역으로 사는 것, 최고의 재테크는 재취업”이라고 이야기 한다. 장 씨는 “노후에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면 돈과 건강, 가족관계, 친구관계, 여가 등이 모두 따라온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말미에 ‘청년 때보다 지금의 삶이 더 만족스럽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장 씨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는 “과거 직장을 다닐 때는 그 직업이 정말 좋아서라기보단 가장으로서 일을 해야 하는 의무감에 버틴 측면이 있었다”며 “지금은 제 정체성을 찾아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아가고 있으니 행복하다”고 설명했다.

내년부터 ‘지공세대’(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65세 이상 세대)에 진입하는 장 씨에게 향후 인생 5모작 계획은 무엇일까. 그는 “현재 서울시 50플러스 재단에서 재취업을 준비하는 중년층을 상담하고 있는데, 수입은 얼마 안 되지만 누군가를 도와주고 있다는 점에서 큰 보람을 느낀다”며 “현재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다. 노인 등 취약계층을 도와주는 삶을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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