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출범한 동해안 산불방지센터 인력ㆍ장비 부족해 역할 못해
“야간 진화에 효과” 선전한 무인 드론 강풍 동해안에선 무용지물
정부 대처는 신속했지만 방제 시스템은 허술했다.
강원 고성ㆍ속초 산불 발생 직후 정부는 대응 단계를 재빨리 상향하고 재난안전특교세를 지원하는 등 나름대로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초동 대처 미흡 등으로 사전에 대형 화재를 막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자치단체에 헬기 등 진화장비를 속히 지원하고 현행 산림청 주관인 산불대응 주체를 소방청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4일 오후 9시44분 고성 토성면 원암리에서 발생한 산불이 초속 20m에 이르는 강풍을 타고 속초시내 장사동과 영랑동을 위협하자 재빨리 대응수준을 3단계로 올렸다.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서 가용 가능한 진화인력 3,250명과 펌프차 등 진화차량 872대를 고성과 속초, 강릉, 인제 산불현장으로 보냈다. “전국 규모의 소방차 출동요청은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이를 통해 속초시내 가스저장시설 등 대형 참사를 부를 수 있는 시설 몇 곳을 지켜낼 수 있었다”는 게 소방당국의 설명이다. 정부는 또 날이 밝자 소방은 물론 군 부대까지 출동 가능한 진화헬기를 끌어 모아 5일 오전 속초와 고성의 큰 불길을 잡을 수 있었다. 산불 확산을 대비한 주민대피령 등 강원지역 자치단체의 긴급 대응도 비교적 빨리 이뤄졌다는 평가다.
하지만 산불 초기 대응에는 여전히 아쉬움이 남았다. 무엇보다 강원도가 산림청 등의 지원을 받아 산불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출범시킨 동해안산불방지센터의 역할이 미미했다는 지적이다. 자체 진화인력은 물론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진화헬기를 확보하지 못해 고성 산불 이전 현장에서도 존재감이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최문순 지사는 이날 한 라디오 방송에 나와 “즉시 출동할 수 있는 헬기를 정부에 요구했는데 아직 받아들여 지지 않아 초동 진화에 어려움이 많은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강원소방본부는 지난 해 초속 25m의 강풍에서도 운항이 가능한 러시아산 ‘카모프 대형헬기’ 구입을 위한 국비지원 예산 확보를 요청했으나 예결위에서 반영하지 않아 무산됐다.
특히 산림청 등이 첨단 기술이라며 홍보하던 무인 드론도 이번 산불현장에선 무용지물이었다. 바람이 세게 불면 띄울 수 없는 한계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김재현 산림청장도 “통상 야간에는 드론 여러 대를 띄워 입체적인 진화에 나서는데 이번 산불에는 강한 바람으로 투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초속 10m가 넘는 양간지풍(襄杆之風ㆍ산악지대에서 국지적으로 부는 강풍)이 잦은 강원 동해안에선 웬만해선 투입이 어려운 장비인 셈이다.
방재 전문가들은 인력, 장비 보강과 함께 매년 봄철이면 반복되는 강원 동해안 산불에 대처하기 위한 시스템 변경을 주문하고 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산림에 대한 관리는 산림청이 맡고, 산불 등 재난 상황에는 소방당국이 주도로 거점별 포인트를 만들어 대응하면 보다 효과적인 대처가 가능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고성ㆍ속초=박은성 기자 esp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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