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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손댄 연예인, 공식처럼 ‘집유→자숙→복귀’…경각심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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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손댄 연예인, 공식처럼 ‘집유→자숙→복귀’…경각심 무너졌다

입력
2019.04.11 04:4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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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복되는 연예인 마약 파동] 

 하일 필로폰 투약 혐의 검거 이어 황하나 공범으로 연예인 지목 

 일반인도 심각한 범죄로 인식 안해 청소년들 모방범죄 우려까지 

필로폰 투약 혐의로 체포된 방송인 하일(미국명 로버트 할리)이 9일 경기 수원시 경기남부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서 조사를 마친 후 수원남부경찰서 유치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수원=연합뉴스
필로폰 투약 혐의로 체포된 방송인 하일(미국명 로버트 할리)이 9일 경기 수원시 경기남부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서 조사를 마친 후 수원남부경찰서 유치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수원=연합뉴스

변호사 출신 방송인 하일(61ㆍ미국명 로버트 할리)이 마약 투약 혐의로 검거된 데 이어 남양유업 창업주 외손녀 황하나(31)씨가 마약 투약 공범으로 연예인을 지목하면서 과거 연예계를 강타했던 마약 파동이 재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반복되는 연예인 마약 사건으로 대중들까지 마약에 대한 내성을 키운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집행유예→자숙→연예계 복귀’로 굳어진 공식이 작동하면서 일반인이나 청소년들까지 마약 범죄를 가볍게 여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저작권 한국일보] 최근 10년간 주요 연예인 마약사건 - 송정근 기자/2019-04-10(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 최근 10년간 주요 연예인 마약사건 - 송정근 기자/2019-04-10(한국일보)

 ◇반복되는 마약 잔혹사 

연예계 일탈 행위가 불거지기 시작한 건 올해 초부터다. 그룹 빅뱅의 전 멤버 승리(29ㆍ본명 이승현)가 이사로 재직했던 서울 역삼동 클럽 버닝썬에서 일명 ‘물뽕’으로 불리는 마약 GHB가 공공연하게 유통된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클럽 영업사원격인 엠디(MD)들이 물뽕을 영업 수단으로 삼았고, 일부 고객들도 여성들에게 마약을 투약하고 성폭행을 일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지난 2월부터 대대적인 마약 단속에 착수했고 하씨와 황씨 혐의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10일 가수 박유천(33)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마약을 한 적도, 권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날 하씨 구속영장은 기각됐으나, 하씨는 마약 투약 사실을 인정했다.

연예계 마약 파동은 최근에도 있었다. 2012년에는 수면마취제인 프로포폴을 상습 투약한 연예인들이 대거 적발돼 연예계가 술렁였다. 방송인 에이미(37ㆍ본명 이윤지), 배우 이승연(51), 박시연(40ㆍ본명 박미선), 장미인애(35) 등이 미용 시술과 통증 치료를 빙자해 프로포폴을 상습적, 불법적으로 투약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산부인과 전문의, 마취 전문의 등 의사들이 이들의 불법 행위를 거든 것은 물론 진료기록부를 허위로 작성하거나 프로포폴 관리대장을 부실 기재하기도 했다.

[저작권 한국일보] 마약류 시범 1심 재판 결과- 송정근 기자/2019-04-10(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 마약류 시범 1심 재판 결과- 송정근 기자/2019-04-10(한국일보)

‘K팝’ ‘한류’ 바람으로 명성을 쌓은 아이돌 스타들도 어김없이 마약의 유혹에 빠졌다. 그룹 빅뱅의 지드래곤(31ㆍ본명 권지용)은 2011년 대마초 흡연 혐의로 입건됐으나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같은 그룹의 탑(32ㆍ본명 최승현)도 2017년 의무경찰로 복무하기 전 대마초를 피운 사실이 뒤늦게 적발돼 1심에서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은 뒤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 중이다. 2016년에는 래퍼 아이언(27ㆍ본명 정헌철) 등을 비롯해 작곡가, 공연기획자, 연예인 지망생 등이 서로의 집을 방문해 수 차례 대마초를 흡연한 혐의로 줄줄이 입건되기도 했다.

2009년 엑스터시 등을 투약한 혐의로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 받았던 주지훈. 그는 3년 뒤인 2012년 영화 ‘나는 왕이로소이다’로 대중 앞에 다시 섰다. 넷플릭스 제공
2009년 엑스터시 등을 투약한 혐의로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 받았던 주지훈. 그는 3년 뒤인 2012년 영화 ‘나는 왕이로소이다’로 대중 앞에 다시 섰다. 넷플릭스 제공

 ◇’집행유예→자숙→복귀’ 무뎌지는 대중들 

연예인들이 마약에 빠지는 이유는 다양하다. 대중에게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해내야 하고, 각종 악성 댓글이나 구설수에 시달리지만, 직업적 특성상 스트레스를 풀만한 곳이 마땅찮다. 조현섭 총신대 중독재활상담학과 교수는 “일반인처럼 공개적인 장소에서 스트레스를 풀 방법을 찾지 못하다 보니 은밀한 방식으로 스트레스 해소하는, 마약 같은 음지의 수단을 쓰게 된다”고 설명했다. 천영훈 인천참사랑병원 원장도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내려면 연예인들은 짧은 시간에 숙면을 취하거나 체력을 회복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다”며 “그럴 경우 연예인들은 한때 논란이 된 프로포폴 같은 약물에 손쉽게 빠져들게 된다”고 말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확대도 한가지 요인이다. 한국 연예인도 이제 어릴 때부터 외국을 자연스럽게 드나들고 큰 돈을 만지는 시대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마약을 크게 죄악시하지 않는 해외 문화에 젖어 들면 약물을 일종의 ‘유행’이나 ‘멋’처럼 가볍게 여길 수 있다”면서 “특히 마약은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구매력이 있는 사람들만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유학파나 부유층 자제 등 소규모 집단과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접할 경우 범죄라는 인식은 더 옅어진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들 대부분이 가벼운 처벌을 받은 뒤 활동을 재개한다는 점이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마약사범 4,681명(2017년 기준) 중 1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은 사람은 1,876명으로 전체 40.1%에 달한다. 딱 드러나는 피해자가 없다 보니 전과가 없거나, 자수를 했거나, 수사에 협조했다는 등의 이유로 집행유예가 자주 나온다. 연예인도 마찬가지다. 집행유예 뒤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2~3년 정도 되는, ‘자숙기간’이라 불리는 공백기를 가진 뒤 대부분 다 복귀한다. 2009년 엑스터시 등을 투약한 혐의로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 받은 배우 주지훈(37)은 군복무 기간을 포함해 3년간 공백기를 가졌다. 최근에는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누비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이 같은 관행이 마약 범죄에 관대해지는데 일조하거나, 연예계 자정작용을 막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연예인을 우상으로 삼는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여파가 크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청소년들이 담배를 시작하는 계기도 흡연자가 멋있어 보여 흉내 내 보려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마약 범죄가 자주 노출될 경우 모방범죄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이규리 코리아타임스 기자 gyulee@koreatimes.co.kr

정해명 코리아타임스 기자 hmjung@korea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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