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 모임에서 어떤 명문대 교수의 푸념을 들었습니다. 교수가 된 지 십수 년인데, 아직도 후배 교수가 없어서 식사 때마다 운전을 도맡고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나이 적은 교수에게 운전을 떠맡기는 관행이 어이없었지만, 젊은 교수가 없다는 점에는 많은 교수가 공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대학은 늙어버렸습니다. 우리나라 4년제 대학 교수들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은 60대입니다. 많은 대학에서 정년 보장을 받은 50대 이상 교수들의 비율이 대체로 60~70%에 이릅니다. 대학들이 재정 압박으로 신규 교원을 뽑지 못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하지만 겨우 공고를 내도 교원을 채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공학, 경영학, 의약학, 경제학 등 응용 분야의 경우 우리나라 대학들은 인재 영입 경쟁에서 연전연패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분야를 예로 들면, MIT가 9월 개설하는 컴퓨팅대학은 50명 이상의 신규 교원들을 거의 뽑았지만 서울대 인공지능전문대학원은 단 한 명도 새로 채용하지 못하고 개설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경영학의 첨단 세부 전공에서도 유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개선될 여지가 별로 없습니다. 이들 분야에서 대학은 기업과의 경쟁에서 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경제학 박사를 고용하고 있는 기관은 150명 이상의 경제학 박사가 일하고 있는 미국 연준(Fed)인데, 곧 아마존에 추월당할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존이 경제학 박사를 무서운 속도로 채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 가운데는 향후 노벨경제학상을 받을 만한 재목들이 포함돼 있어 충격을 준 바 있습니다. 인공지능 분야에서는 대학이 경쟁에서 뒤처진 지 사실 꽤 되었습니다. 대학의 서너 배에 이르는 연봉을 제시할 뿐 아니라, 어마어마한 학습데이터를 통해 연구 기회를 주는 기업은 신진 연구 인력들에게 매력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대학들이 전반적으로 열세인 상황에서 그나마 세계적 명문 대학들은 기업에 준하는 파격적 연봉과 매력적인 연구 환경을 제시하면서 경쟁에 대응하고 있지만, 재정 압박과 각종 규제에 시달리는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발만 구르고 있는 실정입니다. 매우 걱정스럽습니다. 젊고 능력 있는 교원을 뽑지 못하면 첨단 연구도, 양질의 교육도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학계의 상황일 뿐인데 웬 호들갑이냐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지 모릅니다. 심지어 우리나라 대학들 좀 망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듣습니다. 연구와 교육에 있어 국내 대학이 아니라 다른 대안이 존재한다면 물론 그래도 됩니다. 그러나 최근 인공지능 분야에서 우리 기업들이 추구하고 있는 해외대학들과의 산학협력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고, 특히 인력 수급에 있어 해외 대학에만 의지한다는 것은 전혀 현실적인 대안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 대학문제라고 하면, 대개 입시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최근엔 교수들의 갑질에 관한 뉴스도 잦습니다. 물론 중요한 일들입니다. 그러나 교육과 연구의 질에 대한 관심 또한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것이 대학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적어도 서너 개의 대학은 파격적인 처우와 연구 환경을 통해 글로벌 인재를 유치하고, 이들을 기반으로 세계 수준의 연구와 교육을 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정부가 돈을 더 내라는 단순한 주장은 아닙니다. 대학 스스로의 개혁과 변화도 동반되어야 할 것입니다. 저같이 일정한 기득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지 못한 교수들의 몫이 줄어야 가능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서둘러야 합니다. 우수한 인적자원과 지식이 기업과 국가경쟁력의 원천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수년 전부터 우리는 이미 패배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조금 더 지나면 상황을 되돌릴 수조차 없을지도 모릅니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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