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 전파ㆍ건축 문화 이룩… 탁월한 보편적 가치 충족” 평가
2015년 도전했다 자진철회 경험… 확정 땐 한국의 14번째 세계유산
조선의 성리학자 퇴계 이황(1501~1570)은 백성과 사림의 교화를 위해 중국의 사립 고등교육 기관인 서원(書院)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서원을 중심으로 사림이 학문을 닦으며 풍습을 바로잡고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는 논리였다. 1548년 경북 영주 지역 풍기군수로 임명된 이황은 직전 군수인 주세붕이 세운 조선의 첫 사원 ‘백운동서원’(1543)을 계승하기로 했다. 그는 서원을 군내 공식 기관으로 지정하고 백운동서원에 대한 국가의 공식 지원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공감한 명종은 1550년 백운동서원을 ‘소수서원’으로 명명하고 현판과 서적을 내려 사액서원으로 공식 인정했다.
이후 전국 곳곳에 들어선 서원은 조선시대 인재 양성의 요람이자 학문과 정치의 중심 역할을 했다. 관료를 배출하는 학원에 가까웠던 중국의 서원과 달리, 조선의 서원은 선배 유학자를 기리는 ‘제향’(祭享), 성리학을 연구하는 ‘강학’(講學)을 위한 공간으로 자리 잡은 것이 특징이다.
소수서원을 비롯한 조선시대 서원 9곳이 ‘한국의 서원’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것이 확실시 된다. 문화재청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심사하는 세계유산위원회(WHC) 자문기구인 이코모스(ICOMOSㆍ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가 한국 서원 9곳을 묶은 ‘한국의 서원’을 등재 권고했다고 14일 밝혔다.
이코모스는 각국이 등재 신청한 유산을 조사한 뒤 등재 권고, 보류, 반려, 등재 불가 등 네 가지 권고안 중 하나를 결정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와 당사국에 전달한다. ‘등재 권고’를 받은 유산은 이변이 없는 한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는 것이 관례다. 이코모스는 서원이 조선시대 성리학의 사회적 전파를 이끌고 정형성을 갖춘 건축 문화를 이룩했다는 점이 세계유산의 필수 조건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OUV)를 충족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서원’에는 소수서원을 비롯해 경북 안동의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옥산서원(경북 경주), 도동서원(대구 달성), 남계서원(경남 함양), 필암서원(전남 장성), 무성서원(전북 정읍), 돈암서원(충남 논산) 등 9개가 포함됐다.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됐다는 평가를 받는 이 서원들은 2009년 이전에 모두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됐다.
서원은 공립 학교인 향교(鄕校)와 달리 향촌사회에서 자체 설립한 사설 학교다. 조선 중기 이후 8도에 417개소(서원과 혼칭된 사우 492개 제외)까지 늘었다가, 1865년부터 흥선대원군이 서원 훼철(철폐) 정책을 펼친 이후 1870년대 초엔 47개소만 남은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대원군은 서원이 본래 정신은 계승하지 못하면서 면세, 면역 등 특권만 누리며 국가 재정과 병력을 약화시킨다는 점을 철폐 이유로 들었다.
문화재청은 이번 등재 권고가 재도전을 통한 성공이라는 점에 의미를 실었다. 문화재청은 2015년 ‘한국의 서원’에 대해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을 했다가 이코모스의 반려 판정을 받고 이듬해 등재 신청을 자진 철회했다. 당시 이코모스는 서원 9곳 사이의 연계성, 중국ㆍ일본 서원과의 차별성이 부각되지 않았고 서원의 주변 경관이 문화재 구역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문화재청은 이코모스의 자문을 받아 보완 작업을 거쳐 지난해 1월 유네스코에 신청서를 다시 제출했다.
서원의 세계유산 등재 여부는 오는 6월 30일부터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리는 제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최종 결정된다. 등재로 결정되면 우리나라는 석굴암ㆍ불국사, 제주 화산섬ㆍ용암동굴, 조선왕릉, 종묘, 남한산성 등을 비롯해 총 14건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된다.
신지후 hoo@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