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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급식에 “맛 없다” 항의… 학교 영양사들 극단적 선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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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급식에 “맛 없다” 항의… 학교 영양사들 극단적 선택까지

입력
2019.07.27 04:40
수정
2019.07.27 08:56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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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절ㆍ전통음식’ 매뉴얼 따르면 학생 만족도↓ 가공식품엔 ↑ 

 만족도조사 스트레스… 학부모 민원에 ‘총알받이’ 내세우기도 

 

 

2017년 극심한 업무 스트레스를 겪다가 사망한 전북 김제 D고교의 영양사가 일할 당시 정성스러운 마음을 담아 인스타그램에 올린 급식 사진 중 하나. 사진을 토대로 부서진 식판을 이미지화 했다.
2017년 극심한 업무 스트레스를 겪다가 사망한 전북 김제 D고교의 영양사가 일할 당시 정성스러운 마음을 담아 인스타그램에 올린 급식 사진 중 하나. 사진을 토대로 부서진 식판을 이미지화 했다.

“아이들이 맛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맛보다는 영양을 생각해서 식단을 짜는 편입니다.” 급식이 맛 없다고 항의하는 학부모들에게 전북 전주 A중학교의 젊은 영양교사는 이렇게 답을 했다. 당당히 소신을 이야기했지만 마음은 타 들어 갔던 걸까. 영양교사 박세진(26ㆍ가명)씨는 지난 6월 2일 새벽 자택 아파트 옥상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유서를 남기지 않았지만 학교 급식 만족도 조사 결과가 전년도에 비해 좋지 않게 나오자 우울감을 호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학교 급식 문제로 괴로워하다가 영양교사(영양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2년 전 전북 김제 사건(한국일보 5월 29일자 6면)에 이어 두 번째이다.

도대체 학교 급식이 뭐길래. ‘우리 학교 급식에 랍스터가 나왔어요’라는 등 고급 급식은 자랑거리가 되곤 하지만, 한편으로 학생들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쉽게 입방아에 오르고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이 급식이다. 화살은 결국 학교 영양교사나 영양사에게 꽂힌다. 영양교사는 임용시험을 거쳐, 학교 영양사는 계약에 따라 고용되며 학교 급식 업무를 하는 것은 동일하다. 세진씨의 사례와 다른 학교 영양교사ㆍ영양사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들을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로 괴롭히는 ‘급식 잔혹극’을 들여다 봤다.

지난 6월 사망한 박세진(가명) 영양교사가 다른 학교 동료 영양교사에게 보낸 메시지.
지난 6월 사망한 박세진(가명) 영양교사가 다른 학교 동료 영양교사에게 보낸 메시지.

 ◇기본 반찬 4가지도 부족? 

세진씨 유족에 따르면, 세진씨는 지난 5월 30일 다른 학교 동료 영양교사에게 “우울해졌어요ㅠ (중략) 만족도 조사는 난리도 아니네요..ㅜㅜ”라고 괴로운 심정을 담은 문자 메시지를 남겼다. 급식 만족도 조사에서 지난해보다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자 괴로워했던 것이다. 세진씨는 남자친구에게도 힘든 마음을 털어놓았고 남자친구는 “이래도 저래도 그런 말이 나올 것 아니냐, 그냥 넘어가라”고 했지만, 세진씨는 “그게 안 넘어가진다”고 했다. A중학교는 지난해까지 밥과 국을 제외하고 반찬을 5,6가지를 제공했는데, 세진씨는 올해 부임 이후 상반기 중간에 반찬을 4가지로 줄였다. 그러나 민원이 빗발쳐서 5월부터 반찬을 5가지로 다시 늘렸다. 전국학교영양사회 송주헌 회장은 “급식은 밥, 국 외에 김치 포함해 3가지 반찬이 기본”이라며 “그 외에는 영양사 재량”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여러 압박 때문에 재량을 행사하는데 한계가 있었던 셈이다.

세진씨는 재작년 임용시험에 합격해 지난해에는 전북 완주군의 한 초등학교에서 영양교사로 일했다. 인근 중학교까지 함께 급식을 제공했지만 총 100식 정도로 많지 않았다. 그러나 2년차에 갑자기 900식 정도 제공하는 A중학교에 배치되면서 힘들어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리사는 8명, 영양교사는 세진씨 한 명이었다.

‘영양 중시’라는 소신을 가진 세진씨는 A중학교에서 학부모, 학생들의 직접적인 항의에 부딪혔다. 학부모들이 학교 시험감독(학부모 명예 감독교사)을 마치고 학교에서 급식을 먹었던 날이었다. 이미 자녀들에게서 “급식이 맛이 없다”는 말을 들었던 터. 급식 맛을 항의하러 교장과 교감을 찾았더니 “(영양교사에게) 직접 이야기 하시라”고 했다. 결국 학부모들은 세진씨를 찾아가 맛이 없다는 말을 했다. 세진씨는 그 자리에서 “건강을 우선 생각했다”고 답했다. 세진씨 사망 후 학부모들에게서 이런 과정을 들었던 지인은 유족에게 “교장, 교감에게 먼저 말을 했다고 하는데 그럼 보통 영양교사를 감싸주고 시정하겠다고 해야지 부모들에게 직접 영양교사에게 이야기 하라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한탄했다.

세진씨는 학교 동료에게 “학부모들이 급식 맛을 항의 했을 때 영양을 생각해서 식단을 짜는 편이라고 이야기 하니까 학부모들이 돌아가면서 ‘신출내기가 까불고 말대꾸한다, 아침 저녁으로 (전화로) 돌아가면서 항의하자’는 말을 하더라”고 털어놓은 적도 있다.

A중학교 인근의 다른 학교에서 급식을 담당하며 세진씨와 친분이 있었던 영양교사 이모씨도 올해 큰 학교로 부임하면서 초기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세진씨와 달리 지금은 잘 적응을 했다. 차이는 무엇일까. 이씨는 “교감 선생님이 전화를 하셔서 ‘학생들이 밥이 맛 없어졌다고 학부모님들에게 그렇게 말을 하나보다. 나는 맛있는데. 선생님이 바뀌어서 애들도 적응할 시간이 필요한가 보다. 이런 민원 사항이 들어왔으니까 조금만 더 신경써주라’는 식으로 기분 상하지 않게 전해주셨다”고 했다. 이씨는 “나는 학생ㆍ학부모에게서 직접 항의를 받은 적은 없다”며 “세진 선생님은 아이들이 직접적으로 와서 ‘선생님 밥 맛없어요’ 이런 말을 한다고 힘들어 했다, 직접 들으면 더 상처가 되지 않나”라고 말했다.

세진씨의 아버지인 박정환(가명)씨는 “집에서 엄마가 해준 밥에도 ‘짜다, 싱겁다’ 맛 품평을 하면 기분 나쁘지 않느냐”며 “만족도 설문조사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A중학교는 세진씨의 사망이 급식과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 학교 교감은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5월 급식 만족도 조사 결과는 잘 나왔다”고 했으나, 기자와 유족에게 결과 공개는 거부했다. 또 “영양교사의 사망 원인은 결혼 반대로 알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박정환씨는 “종교 문제 등으로 인해서 2년 정도 사귄 남자친구와 결혼에 반대의사를 밝혀왔던 것은 맞지만 최근에 그 점이 유독 문제 된 적은 없다”며 “그 남자친구도 그 문제는 전혀 아니라고 이야기 했다”고 말했다. 전주 덕진경찰서는 세진씨 사망에 타살 혐의가 없다고 지난 17일 사건을 종결했다. 투신 원인은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 유족은 산업재해 신청을 위해 세진씨의 친구ㆍ동료 등을 상대로 직접 원인을 조사하고 있는 실정이다.

박세진(가명) 영양교사가 2017년 임용시험 준비할 당시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 유족 제공
박세진(가명) 영양교사가 2017년 임용시험 준비할 당시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 유족 제공

 

 ◇급식 영양교사ㆍ영양사들의 ‘삼중고’ 

학교급식법 시행규칙에는 식단작성시 첫 번째로 ‘전통 식문화(食文化)의 계승ㆍ발전을 고려할 것’이라고 규정돼 있다. 이어 ‘곡류 및 전분류, 채소류 및 과일류, 어육류 및 콩류, 우유 및 유제품 등 다양한 종류의 식품을 사용할 것’ ‘염분ㆍ유지류ㆍ단순당류 또는 식품첨가물 등을 과다하게 사용하지 않을 것’ ‘가급적 자연식품과 계절식품을 사용할 것’ ‘다양한 조리방법을 활용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15년차 학교 급식 영양사 정모씨는 “급식 지침은 계절식품을 이용하고 우리 전통음식 이용하라고 하지만 아이들은 제철 나물 무침이나 된장찌개, 생선을 싫어한다”며 “지침에 충실하면 기호도ㆍ만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는지 알 수 없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정씨는 “기호도를 조사하면 아이들은 고기나 완제품, 후식을 좋아하고 채소 싫어하는 식으로 결과가 늘 똑 같다”며 “학생들이 좋아하는 가공식품이나 이런 것 많이 내면 잔반도 줄고 만족도도 높지만 그건 진정한 학교 급식은 아니지 않나”라고 말했다.

19년차 학교 급식 영양사 서모씨는 “아이들이 요즘은 집에서 해주는 밥을 먹는다기 보다는 편의점 음식 먹거나 가족끼리도 외식을 많이 하다 보니까 바깥 음식에 너무 많이 길들여져 식단을 짤 때 갈수록 힘들다”고 했다. 서씨는 “아이들은 맵고 짜고 달고 그런 것을 많이 선호하는데, 한편 급식도 교육이니까 영양량과 계절식품, 채소, 생선도 넣어야 하고 아이들 기호도 어느 정도 반영해야 하고 또 조리를 하다 보면 손 많이 가는 음식을 할 수도 있는데 여사님(조리원)들은 간단한 메뉴를 해주라고 하신다”고 했다. 그는 “삼중고”라고 말했다.

송주헌 회장은 “일부 학교는 이미 결재한 식단을 다시 변경하도록 요구하고 이미 (식재료) 발주한 것도 변경ㆍ수정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며 “식단 변경 요청에 따라 긴급히 간단하게 조리할 수 있는 것으로 변경한 후에 급식을 먹는 학생에게서 먹을 게 없다는 표정을 보게 되면 영양사 입장에서는 매우 곤혹스럽다”고 전했다. 송 회장은 “또 학교급식은 교육급식으로 영양 권장량에 맞춰 제공되는 것인데 기호식품이 아닌 경우는 대놓고 식단 잘못 짰다는 식의 모욕적인 발언을 듣는 사례가 있었다”고 말했다.

급식 만족도 조사는 학교별로 1년에 1회 이상 실시하고, 기호도 조사는 학교 재량에 따라 실시한다. 만족도 조사 문항은 기본적으로 단위 학교에서 결정할 수 있지만, 교육청이 일괄 실시하는 경우가 많아 같은 교육청 관할지는 대부분 동일하다. 교육부도 별도로 1년에 한번 지역별로 표본을 추출해 조사를 하고 있다. A중학교의 지난해 만족도 조사 문항을 보면 건강과 올바른 식습관에 도움을 주는지, 간은 적당한지, 위생적인지 등을 묻는다. 직접적으로 맛을 묻는 질문은 없지만, ‘전반적으로 학교급식에 만족하는지’를 묻는 항목이 있어 이 부분에 맛에 대한 평가가 반영된다. 2016, 2017년 만족도 조사 문항을 보면 처음부터 ‘우리 학교의 급식은 맛있는지’를 묻고 있다. 전북교육청 관계자는 “교육청에서 학교로 내려 보내는 문항은 똑같다”며 “아이들이 흔히 ‘맛이 없다’ 이런 민원이 발생할 때는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기호도 조사를 하곤 한다”고 설명했다.

급식 만족도 조사의 효용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정씨는 “기존에는 학부모의 (급식비) 부담이 많았지만 지금은 거의 무상급식이다”며 “무상급식은 교육적인 차원으로 봐야 하며 학생이나 학부모 중심에 맞춰서 모니터링 하는 것은 굳이 안 해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씨는 “식단을 제공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만족도ㆍ기호도 조사 결과를 참고하는 것은 좋다”며 “다만 교육부에서 별도 조사결과로 지난해까지 시ㆍ도 교육청 별로 순위를 냈는데 올해 개선한다고는 하지만 순위 평가는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학생 아들을 둔 학부모 이모(45)씨는 “건강식이라서 맛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건강을 고려해서도 맛있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소통창구를 두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이씨는 “그렇다고 해도 학부모가 영양사에게 직접 이야기 하는 것은 있어서는 안될 일”이라고 덧붙였다.

교육부 학생건강정책과 관계자는 “학생들이 기호도 중심으로 만족도를 체크하기 때문에 학교급식의 목적과 다를 수 있다는 현장 의견은 알고 있다”며 “하지만 다른 정책들도 서비스를 제공하면 만족도 조사를 하기 때문에 개선점을 찾기 위한 만족도 조사는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교육부가 매년 실시하는 조사도 지역별 순위를 따지는 게 아니고 정책 반영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며 “학생들이 좋아하는 것을 모두 해주라는 뜻은 아니며 절충점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진희 기자 riv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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