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용화 월드옥타 회장
문화유산회복재단 명예회장 위촉
“일제강점기, 망국의 혼란을 틈타, 불법 유출되어 전 세계에 흩어진 우리 문화재들을 보면 꼭 750만 해외동포들의 삶과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점에서 국외 문화재 환수 운동은 한인 디아스포라의 정신적 귀환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요.”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를 이끌고 있는 하용화(63) 회장은 27일 열린 재단법인 문화유산회복재단(이사장 이상근) 명예 회장 위촉식에 앞서 본보에 이렇게 말했다. 하 회장은 월드옥타가 해외동포 2, 3세들에게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심어 주는 데 문화유산 회복만큼 적합한 아이템을 찾기 어려웠다며 세계 74개국에 뻗어 있는 월드옥타 146개 지회를 통해 문화재 환수에 힘을 보태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그는 “국적은 이미 오래전에 모국과 작별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한국인으로서 뿌리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날로 커지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현재 해외에 유출된 우리 문화재는 15만~17만여점으로 추정된다. 대략 20개국에서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개인 소장품 등 비공개 몫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화유산회복재단 측은 광복 후 지금까지 1만여점의 문화재만 국내로 돌아온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하 회장은 “소재가 확인된 문화재는 국가에서 관심을 기울일 수 있지만, 어느 누군가의 창고에 처박혀 존재감도 없이 빛을 잃어 가는 문화재를 생각하면 가슴 한편이 저려온다”며 “글로벌 한민족 보부상으로 자리매김한 월드옥타 회원사들을 통해 이들 미발견 문화재를 찾아내는 데 앞장서겠다”고 힘줘 말했다.
지난해 10월 임기 2년의 제20대 월드옥타 회장에 선출된 하 회장은 문화유산회복재단과 올 4월 23일 국외 소재 문화유산 반환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바 있다. 당시 하 회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역사의 상처를 안고 있는 문화유산의 회복을 바라는 마음에서 활동에 동참하게 되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실제 그는 지난 7월 월드옥타 모스크바 지회와 함께 한국문화유산보존 네트워크 러시아센터를 구성하기도 했다. 이번 명예회장 위촉식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깊숙이 발을 들여놓아, 문화재 환수에 월드옥타 네트워크를 본격 가동하겠다는 의미다.
1981년 창립된 월드옥타는 재외동포 최대의 경제 네트워크로 발돋움해 그 위상을 뽐내고 있다. 하 회장은 “월드옥타 정회원(CEO) 7,000명과 한인 2세대 등 차세대 회원 2만1,000명이 움직이면 조만간 문화재 환수에 가시적인 성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 회장은 1986년 미국 이민 길에 올라, 1992년 솔로몬보험을 창업해 큰 성공을 거뒀다. 이후 제31대 뉴욕한인회장, 미주 한인 청소년재단 회장 등을 역임했다. 2015년에는 미국 내 한인들의 우울증을 치료하고 자살 방지를 위해 ‘에스더 하’ 재단을 설립, 운영하고 있다. 거부(巨富)를 일군 그의 뉴욕 사무실 책상에는 뜻밖에 계영배(戒盈杯)가 놓여있다고 한다. 과음을 경계하기 위해 만든 잔인 계영배는 잔의 70% 이상 술을 채우면 모두 밑으로 흘러내려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하 회장은 매일 계영배를 보면서 부(富)의 사회 환원을 상기한다며 문화재 환수 운동도 그런 차원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7~8월 모국을 방문해 중소기업중앙회와 MOU를 맺는 등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는 가운데에서도 청년 창업스쿨을 열어 ‘해외 취업 열정이 스펙이다’라는 주제의 특강을 통해 후배들에게 꿈을 심어 주고 있다.
한편 문화유산회복재단은 2006년 일본 왕실 궁내청 서릉부에 소장돼 있는 조선왕실의궤 환수운동에 앞장서 대중에 이름을 알렸다. 이어 2010년 당시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로부터 조선왕실의궤 1,205권 반환을 이끌어 내 존재감을 인정받았다. 이상근 이사장은 “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문화유산을 잃어버림으로써 역사가 왜곡되고 진실이 세탁되는 과정을 수없이 지켜보아야 했다”며 “해외에 떠도는 기억이 삭제당한 ‘고아’ 문화유산을 찾아 나서는 데 민관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형철 선임기자 hcc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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