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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계약서도 없는 1인 디자이너 권익 보호에 직접 나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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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계약서도 없는 1인 디자이너 권익 보호에 직접 나섰죠”

입력
2019.10.22 04:40
수정
2019.10.22 14:3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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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기준을 바꾸는 ‘청년 개척자’들] <1> 혼익인간: 혼자 일하는 청년을 널리 이롭게 함

※N포, 무기력, 정치무관심, 각자도생… 우리 사회가 청년을 규정하는, 익숙한 수식들이다. 그런 가운데 스스로 존재하고, 스스로 빛을 내는 청년들의 목소리는 너무나 쉽게 지워지고 만다. 한국일보가 더 많은 변화와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해 나선 청년들의 목소리를 4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혼자 일하는 청년을 이롭게 함’을 모토로 결성된 1인 디자이너 모임 ‘혼익인간’의 김동규(왼쪽)씨와 이성휘씨가 15일 서울혁신파크 내 목공방 앞에서 웃고 있다. 이씨의 손에 ‘혼자 일하는 디자이너를 위한 설문조사 결과집’ 책자가 들려있다. 류효진 기자
‘혼자 일하는 청년을 이롭게 함’을 모토로 결성된 1인 디자이너 모임 ‘혼익인간’의 김동규(왼쪽)씨와 이성휘씨가 15일 서울혁신파크 내 목공방 앞에서 웃고 있다. 이씨의 손에 ‘혼자 일하는 디자이너를 위한 설문조사 결과집’ 책자가 들려있다. 류효진 기자

20대 프리랜서 디자이너 3명 “함께 어려움 풀어보자” 의기투합

석달간 119명 노동실태 설문조사… 서울시 청년정책네트워크서 활동하며 논의

이것은 2018년 2월 서울 을지로 펍 ‘신도시’에서 머리를 맞댄 청년 프리랜서 디자이너 세 명의 이야기다. 이름하여 ‘혼익인간’.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에서 받침 하나만 바꿨을 뿐. 혼자 일하는 디자이너의 권익 보호가 목적이다. 사수도 없이 1인 디자이너로 일하게 된 지 얼마 안 된 또래 세 명이 각자 일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터놓다가 자연스레 모임 결성으로 이어졌다. “지금 우리가 하는 얘기만 묶어도 책이 되겠다”고 누군가 뱉은 우스개는 현실이 됐다.

혼익인간 멤버 세 명 중 개인 작업으로 바쁜 우미숙씨를 뺀 이성휘(26)ㆍ김동규(27)씨를 지난 15일 서울혁신파크에서 만났다. “우리가 어려워하는 문제들이 비단 우리만의 문제인지, 우리처럼 혼자 일하는 디자이너는 얼마나 있는지 먼저 확인부터 해봐야 한다는 데 생각이 미쳤죠.” 프리랜서는 급격히 늘어나는 노동 형태지만 노동법상 사각지대로 남아있다. 일을 시작하는 계약 단계부터 철저히 을(乙)의 입장이지만 현재로선 구조적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만 다뤄진다. 계약 과정에서부터 프리랜서의 정당한 노동 조건을 보장해야 한다는 이들의 문제의식은 곧바로 1인 디자이너 실태조사로 이어졌다. 지난해 8월부터 세 달 간 설문조사에 매달려 119명의 답변을 받았다. 150쪽에 이르는 방대한 결과물은 ‘혼자 일하는 디자이너를 위한 설문조사 결과집’이라는 책자로 엮였다. 프리랜서 디자이너의 실태를 다룬 조사도 변변치 않은 현실 속에서 기성세대는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노동 형태에 대해 청년 당사자가 직접 문제를 제기했다는 것만도 의미 있는 진전이었다.

혼익인간 멤버 세 명이 지난해 뜨거웠던 여름 3개월을 바쳐 낸 결과물이다. 300부를 찍은 ‘혼자 일하는 디자이너를 위한 설문조사 결과집’은 이제 손에 넣기조차 어려운 희귀본이다. 류효진 기자
혼익인간 멤버 세 명이 지난해 뜨거웠던 여름 3개월을 바쳐 낸 결과물이다. 300부를 찍은 ‘혼자 일하는 디자이너를 위한 설문조사 결과집’은 이제 손에 넣기조차 어려운 희귀본이다. 류효진 기자

김씨는 “설문 작업을 하면서 똑같이 노동하는데 사회적 보장에서는 비껴나 있는 프리랜서의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표준계약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강조했다. 설문에 응답한 75.7%가 계약서 없이 전화나 미팅에서 구두로, 심지어는 문자나 이메일을 통해 일을 맡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마저도 계약서에는 을의 책임만 강하게 명시되었을 뿐 적어도 작업 기한을 며칠 보장한다거나 원고를 언제까지 준다는 등 갑(甲)인 클라이언트의 책임은 언급조차 없다. 디자이너협회에서 만든 표준계약서가 있지만 강제력이 없어 사실상 유명무실했다.

“어떻게 표준계약서를 작동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서울시의 청년자치정부 내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청정넷)에서 활동을 시작하게 됐어요.”(이성휘) 혼익인간을 대표해 그 동안의 고민을 실제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서였다. 이씨는 지난 5월부터 청정넷 아래 일자리경제분과 프리랜서ㆍ플랫폼 노동 권익개선 소주제 그룹에서 청년 18명과 함께 매달 두 차례 모임을 가졌다. 이때 요구한 시 차원의 프리랜서 실태조사와 서울시공정거래센터(가칭) 설립ㆍ운영은 청년 자율예산제에 따라 실제 예산이 배정돼 내년 본궤도에 오른다. 최소한 시와 산하기관이라도 표준계약서를 준수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프리랜서 권익보호를 위한 조례 개정안도 지난 16일 발의됐다. 12월 본회의에서 무리없이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디자이너로 혼자 일하게 된 지 얼마 안돼 겪게 된 어려움을 나눴던 이성휘(왼쪽)씨와 김동규씨가 서울혁신파크를 걷고 있다. 서울혁신파크 내 청년청 건물 1층에 작업실을 둔 이씨는 바지와 상의가 하나로 연결된 작업복을 입은 채다. 류효진 기자
디자이너로 혼자 일하게 된 지 얼마 안돼 겪게 된 어려움을 나눴던 이성휘(왼쪽)씨와 김동규씨가 서울혁신파크를 걷고 있다. 서울혁신파크 내 청년청 건물 1층에 작업실을 둔 이씨는 바지와 상의가 하나로 연결된 작업복을 입은 채다. 류효진 기자

청년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시가 디자이너와 계약을 맺을 때 평균 단가를 알면 좋겠다는 얘기가 많았어요. 민간기업은 가격을 굉장히 깎아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 우리는 서로 얼마나 받는지, 얼마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거든요.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게 받는 일은 없도록 제시할 평균 단가로 공개됐으면 좋겠다는 거죠.” 내년 개소하는 서울시공정거래센터를 프리랜서지원센터로 바꾸는 것도 계속 요구 중이다. 부당노동 행위 여부를 판단하고, 나아가 법적 지원까지 해줄 곳이 필요한 탓이다.

이같이 청정넷에서 논의된 프리랜서 권익 보호 과제는 지난 8월 열린 제3회 서울청년시민회의에서 7개의 정책 제안 중 하나로 발표됐다. 이날 직접 무대에 선 이씨는 이 같은 발언으로 발표를 끝마쳤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프리랜서 권익 보호를 위한 공론장을 함께 만들어가길 희망합니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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