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용식 단바망간기념관장
강제징용노동 피해자 부친과 1989년부터 운영… “후계자 없이 홀로 유지 힘들어”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몸으로 오른손에는 곡괭이를 들고 고향이 있는 방향의 먼 하늘을 바라보고 서 있는 사람. 서울 용산역 앞을 포함해 전국 8곳에 세워진 일제 강제징용 노동자상은 사실 국내에서 처음 세워진 게 아니다. 첫 설립지는 일본 교토시에 있는 ‘단바망간기념관’. 5,000여개의 박물관이 있는 일본 안에서 유일하게 강제징용 역사를 보여주는 곳이다.
“2016년에 동상이 세워진 후 협박성 전화나 이메일이 전보다 많아졌습니다. 거의 매일 같이 ‘다 거짓말인데 왜 일본 땅에 이런 것을 만드느냐’ ‘꺼져라’ ‘나가라’ 같은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도 지켜왔는데, 관람객도 갈수록 줄고 제가 나이도 들어 폐관을 고민하게 됐습니다.”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대회의실에서 만난 이용식(61) 단바망간기념관장은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한 기념관 상황을 담담하게 설명했다. 아버지인 고 이정호씨의 뒤를 이어 26년간 기념관을 운영해 온 입장에서 폐관은 가장 피하고 싶은 일이지만, 올해 9월 어머니 임청자씨가 돌아가신 후로 상황이 더 악화됐다. 연간 기념관 운영비가 500만엔(약 5,000만원)정도 되는데, 그 중 절반 가까운 200만엔을 어머니의 연금으로 충당하고 있었던 데다 이 관장 외에 기념관을 지키던 유일한 직원도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이 관장이 다른 수입으로 100만엔 정도의 비용을 충당하고 나머지는 입장료 수입으로 메웠는데 관람객 수가 크게 줄면서 적자만 늘어왔다. 많을 때는 한 해 5,200명은 되던 관람객 수가 지난해에는 고작 700명으로 쪼그라들었다.
1989년 교토시 단바 지역의 망간광산 갱도에 설립된 단바망간기념관은 이 관장의 가족이 사재를 털어 세운 곳이다. 단돈 1엔도 일본 정부의 운영보조금을 받은 적이 없다. 이 관장은 “열여섯 살에 강제로 탄광으로 끌려가 일을 했고 그 후유증으로 진폐증을 앓다가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이 역사를 후대에 알리겠다는 마음으로 만든 곳”이라고 설명했다. 기념관 주변에는 일제 당시 망간을 캤던 광산이 300여곳이나 있고 이곳에 끌려와 일한 조선인도 3,000명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9년에도 경영이 어려워 문을 닫았다가 한일 시민사회의 노력으로 2012년 다시 문을 열었지만 관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폐관위기 소식을 들은 한국노총이 지난 22일 후원행사를 연 것을 계기로 방한한 이 관장은 “은퇴하고 싶은데 후원금이 모여도 걱정”이라며 농담 섞인 말을 던졌다. 그는 “이제 나이가 환갑이고 지병으로 건강도 좋지 않은데 기념관을 운영할 후임자가 없다”며 “관람객들이 볼 수 있게 광산 안을 관리하는 그런 기술들은 속성으로 배워도 5년은 걸린다”고 말했다. 물론 이런저런 걱정 속에서도 기념관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크다.
“일본에 있는 원폭 피해 박물관이 ‘반미’가 아닌 평화를 위한 공간인 것처럼, 단바망간기념관 역시 ‘반일’이 아닌 한일 화해의 역사를 위한 곳입니다. 3,000만명 이상의 아시아 사람을 강제 연행한 일본이 자국의 가해 역사를 기억하고 사과해야 주변 국가와의 관계도 회복할 수 있습니다. 때론 싸움을 하더라도, 진짜 친구가 된다는 건 그런 것이 아닐까요.”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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