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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양에 주목한 적 있나, 그림의 배경을 살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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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양에 주목한 적 있나, 그림의 배경을 살펴보라

입력
2020.01.14 04:40
수정
2020.01.17 09:53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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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방 이화여대 명예교수, 문화유산 사진 7만점 기증 전시

“인류 조형물의 90%가 문양… 만물 생성의 원리 숨겨져 있어”

10일 서울 종로구 인사아트센터에서 강우방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자신이 고안한 조형언어 분석법을 설명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10일 서울 종로구 인사아트센터에서 강우방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자신이 고안한 조형언어 분석법을 설명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주객의 전도.”

원로 미술사학자 강우방(79)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지금껏 미술사학이 등한시해 온 문양(文樣ㆍ무늬)을 복권시킨 명분이다. “문양은 예술사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해 왔다. 아무 의미 없는 장식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류가 창조해 온 조형물의 90%가 문양이다. 근대 이전엔 전부 문양이다. 미술사학의 주체는 문양이어야 한다.”

그러고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 회화에서 공간 대부분을 채우고 있는 건 추상적인 문양들이다. 그럼에도 미술사학자들은 형태를 통해 정체를 추정해볼 수 있는 구상적인 부분만 연구하고 문양은 내버려뒀다.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인사아트센터에서 강 명예교수를 만난 건 30여년 동안 찍은 국내외 문화유산 사진 7만여점을 국립문화재연구소에 기증했고, 이를 가지고 전시회를 연다고 해서다.

강 명예교수의 지론은 찍은 사진에서도 드러난다. 주로 폐허 속 사찰 유적을 찍었는데 자연과 어울리도록 찍어뒀다. 그는 “미술사학자 대부분은 답사를 가면 작품만 보기 일쑤”라며 “석탑과 석불 등은 주변 자연 풍광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기 때문에 함께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폐허를 거닐며 그 시대의 호흡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사진도 그냥 멋진 것, 대표적인 것 하나만 찍는 게 아니라 많이 찍는다. 어느 한 구석도 소외시키지 않기 위해서다. “각도와 조명에 따라 달리 보이는 모습들을 모두 담으려다 보니 한 작품을 찍는 데에 36컷 필름 한 롤을 다 쓰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강우방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직접 만든 문화유산 분석 자료들이 10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인사아트센터 전시장에 진열돼 있다. 홍인기 기자
강우방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직접 만든 문화유산 분석 자료들이 10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인사아트센터 전시장에 진열돼 있다. 홍인기 기자

국립박물관에 재직하던 1900년대까지가 답사의 시기였다면 이화여대 초빙교수로 자리를 옮긴 2000년부터는 연구의 시기다. 그가 주목한 건 기호의 상징성이었다. 그 해 고구려 벽화를 보고선 문자만 언어가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조형언어’라는 개념이 돋아났다.

본격 연구에 착수하면서 그는 조형물이 하는 말을 듣게 됐다 한다. “우주에 충만한 영기(靈氣)라는 것을 옛 사람들이 조형으로 가시화해 왔다”고 강 명예교수는 말했다. 고대 조형물에 포함돼 있는 상징 기호들을 해독하면 생명 생성의 과정과 원리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서양도 마찬가지다. “성화(聖畫)를 보면 마리아와 아기 예수가 있지 않나. 그건 보인다. 그래서 그것만 연구하는 거다. 하지만 그림에는 주제 말고도 복잡한 문양들이 있다. 사실 그게 주체다. 그 문양에 만물 생성의 원리가 숨겨져 있다.”

강 명예교수의 꿈은 오래된 인류의 상징인 이 조형언어를 부활시키는 것이다. “인류가 조각품을 만들었다는 30만년 전부터 장인(匠人)들에 의해 전승돼 온 조형언어가 14~16세기 르네상스 이후 장인 실종과 함께 퇴화하더니, 19세기 과학화 및 산업화 이후 완전히 망각되고 말았다.” 그렇기에 그는 “문양을 다시 읽어내면 우리가 모르는 99% 무의식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단초가 마련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10일 서울 종로구 인사아트센터 전시장에서 자신의 조형언어 분석법을 설명 중인 강우방 이화여대 명예교수 인터뷰. 홍인기 기자
10일 서울 종로구 인사아트센터 전시장에서 자신의 조형언어 분석법을 설명 중인 강우방 이화여대 명예교수 인터뷰. 홍인기 기자

강 명예교수에게 가장 인상적인 건 앎에 대한 의지다. 그는 “분야 간 관계를 모르면 권위자가 될 수 없는데 전공이 세분화되면서 미술사학이 위기를 맞고 있다”고 진단하더니 자신의 연구가 “돈키호테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이 세계를 계몽하겠다는 게 내 포부”라 말했다. 누가 알랴, 그에 대한 의심이 무지의 소산일지. 강 명예교수는 17, 28일 오후 2~4시에 인사아트센터 1층에서 직접 조형언어 이론과 방법론을 설명한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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