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도서관 같지 않은 도서관이 지난달 문을 열었다. 도서관을 이용하려면 하루 입장료만 5만원(반일 3만원)을 내야 하는데, 대출은 안 되고 관내 열람만 허용한다. 연회비(66만원)를 내면 입장료는 반값으로 할인된다. 문학도서관을 표방한 소전서림(素磚書林)이 그 주인공이다. 누구나 찾을 수 있는 공공도서관이 익숙한 한국에서는 아무래도 낯선 유료 도서관 모델. 도서관의 새로운 모델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부터 도서관의 공공성을 훼손한다는 주장까지 소전서림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도서관의 문턱을 왜 이렇게 높인 걸까. 최근 소전서림에서 만난 황보유미 관장은 “다수의 대중이 찾기보다는 취향이 비슷한 문화 애호가들이 모일 수 있는 파리의 살롱을 꿈꾸다 보니 입장료를 받게 됐다”고 말했다. “인스타그램에 사진 올리려고 한번 들르는 곳으로 변질되지 않기 위해서” 부담을 안고 유료 운영을 택할 수밖에 없었단 설명이다. 도서관 입장료에는 소전서림에서 당일 열리는 공연과 강연비가 포함돼 있다.
포부대로 일단 공간은 고급스럽다. 원래는 미술관이었던 건물을 개조해 1층은 카페와 와인바, 지하는 도서관으로 꾸며놨다. 곳곳에 걸린 그림은 해외 유명 작가의 작품이며, 의자 하나하나도 디자인에 신경을 썼다. 클래식 공연이나 북토크, 강연이 가능한 공간, 문인들이 모여 가볍게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사랑방도 마련해 놨다. 읽고 마시고 듣고 볼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인 셈이다.
기본 정체성은 문학도서관이다. 국내외 문학 도서 3만권을 비롯해 각종 인문학과 예술서적까지 합쳐 4만여권이 구비돼 있다. 도서 큐레이션에는 서평가 이현우, 평론가 박혜진, 시인 서효인 등 여러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작가 개인을 기리는 특정 도서관이 아닌 문학도서관 자체를 모토로 만들어진 건 소전서림이 처음이다.
반응은 엇갈린다. ‘유료 입장료로 도서관이 갖는 공공성의 가치를 훼손시킨다’거나 ‘문학을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면서 곱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다. 반면 책 그 자체를 즐기는 새로운 공간 모델로 일단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실제로 외국에선 유료로 운영되는 사립 도서관과 서점이 많다. 하루 입장료 1,500엔(약 1만6,000원)을 받는 대신 정기적으로 미술 전시회를 여는 일본 도쿄 롯폰기의 분키츠(文喫) 서점 같은 곳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 역시 책을 중심으로 공연과 강연, 공간 대여 등 다양한 문화 서비스를 접목시켜 입장료를 받는 유료서점과 회원제 도서관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소전서림 큐레이션에 참여한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소전서림은 도서관이나 서점이라기보다 사실 북카페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며 “문학을 중심으로 한 사교 클럽의 장이 생겼다는 점 자체는 매우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소전서림의 ‘콧대 높은’ 실험은 성공할 수 있을까. 개관 이후 현재까지 하루 평균 이용객은 15명 수준. 황보 관장은 “앞으로 강연과 공연 프로그램이 시작되면 더 늘어날 것이라 기대한다”면서도 “지금 규모에선 40명이 최대치”라고 선을 그었다. ‘고급 살롱’이라는 정체성만큼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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