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나라별 중산층 기준이 큰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예금 잔고 1억원 이상, 부채 없는 30평대 아파트 등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중산층의 기준은 경제적인 요건에 치우쳐있던 반면, 다룰 줄 아는 악기가 하나 이상 있을 것(프랑스), 정기 구독하는 비평지가 있을 것(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는 문화적 측면이 중산층을 규정하는 주요 기준에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문화가 밥 먹여 주냐’라고 말하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정말로 문화가 밥 먹여주는 시대가 되었다. 봉준호, BTS로 대변되는 한류를 필두로 한국은 세계 7위의 콘텐츠 강국으로 성장했고 이제는 글로벌 문화대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문화가 신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은 만큼, 문화산업의 원천과 정체성의 근간이 되는 문화유산에 어느 때보다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5대 국정 목표 중 하나로 ‘고르게 발전하는 지역’을 내세웠고, ‘자치’와 ‘균형 발전’을 강조했다. 지역 문화 분권 실현을 통하여 지역 간 문화 격차를 해소하고 지역 고유의 문화 양식을 보호하고 지역민들의 문화권을 보장한다고 강조했다. 문화유산은 그 시대, 그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와 생각, 희로애락을 담아내기에 그 존재만으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지난날 수많은 전란과 일제강점기, 미군정, 한국전쟁 등 슬픈 역사를 겪으면서 우리의 문화유산은 본래의 자리를 떠나 타지로 떠돌게 되었다. 불법, 부당하게 반출된 문화유산을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 회복하는 일은 문화유산에 깃든 역사성과 정체성을 회복하고 보전하는 일이며, 문화유산의 ‘본래의 가치’를 인식하고 그 안에 담긴 공동의 기억을 다시 실현하는 노력인 것이다.
따라서 문화유산의 회복은 지난날의 부당함을 바로잡고 지역의 문화 주권을 수호할 뿐만 아니라 문화 분권 창달이라는 시대적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나아가 지역 문화를 활성화하여 국토 균형 발전에도 기여한다. 일례로, 하회탈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53년 만에 고향 안동에 돌아오면서 안동은 하회탈의 본고장이라는 정체성과 자긍심을 회복하게 되었고, 하회탈 관련 콘텐츠와 관광 상품 등을 개발해 지역 브랜드를 창출하고 문화 발전에 이바지했다. 또한 관광객들이 하회탈을 보기 위해 안동을 찾게 되면서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고 균형 발전을 촉진하는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독일의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는 일본의 목조반가사유상을 보고 “인간 존재의 가장 정화되고, 원만하고, 영원한 모습”이라고 극찬했다. 우리나라의 금동미륵반가사유상과 쌍둥이처럼 닮아 있어 그 원류가 백제일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수준 높은 문화를 꽃피웠던 공주와 부여에는 온전한 반가사유상이 없다. 국립부여박물관에는 하반신만 남겨진 반가사유상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온전치 못한 모습으로 타지로 반출된 다른 문화유산의 빈자리들을 지키고 있는 모습이 더욱 씁쓸하고 안타깝게 느껴진다. 지역민들이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선 이때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화답을 기대한다.
김정윤 문화유산회복재단 정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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