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산업 ‘배터리’ 투자 차질
공장 가동 중단해 손실 최소화
“상반기 버텨낼지 여부가 관건”
지난해 업황 불황을 경험한 국내 화학업계는 올해도 좀처럼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생산 원자재인 석유가격은 급락했지만 코로나19 여파에 제품 수요가 급감한 탓이다. ‘포스트 반도체’로 야심 차게 준비한 배터리 사업 전망까지 불확실해지면서 올해를 ‘흑자 원년’으로 삼겠다고 구상한 청사진마저 수정해야 할 판이다.
적신호는 국내 간판 기업인 LG화학에서부터 감지되고 있다.
28일 LG화학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7.5% 증가한 7조1,157억원을 가져왔지만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5.8% 감소한 2,365억원을 기록했다. 시장 전망치를 상회했지만 코로나19 여파에선 자유로울 수 없는 실적이다.
전년 동기에 대비한 사업부문별 영업이익을 살펴보면 석유화학은 2,426억원으로 39.1% 감소했고 배터리는 518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차동석 LG화학 최고재무책임자(부사장)는 “코로나19로 해외공장 가동중단뿐만 아니라 전방산업의 고객사 가동중단 및 수요감소 영향으로 실적에 차질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첨단소재에선 6배 넘게 증가한 621억원을, 생명과학은 약 2배 늘어난 235억원을 기록한 게 위안거리다.
하지만 사업 다각화로 최악은 피해 간 LG화학 이외 업체들의 실적은 상당한 수준인 것으로 점쳐진다. 국내 화학업체 대부분은 원유에서 나프타를 추출한 후 에틸렌, 프로필렌 등을 생산하는 나프타 분해업에 의존하고 있다. 주요 수익원인 에틸렌은 스프레드(원료와 제품의 가격 차이)가 지난해 톤당 400달러대에서 손익분기점(보통 톤당 300달러) 이하인 200달러 중반까지 급락한 상태다. 원유값 하락이 나프타에 이은 에틸렌 제품 가격 하락으로 이어졌고,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 코로나발 수요부진까지 겹치면서 빚어진 결과다. 증권가에선 SK이노베이션은 7,000억원대 영업손실을, 롯데케미칼의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90% 가까이 하락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석유화학에서 발생한 마진으로 배터리 사업에 투자해 온 LG화학이나 SK이노베이션 등에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규모의 경제를 이루지 못한 배터리 부문의 경우엔 흑자 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사업 포트폴리오 구성부터 차질이 생길 수 밖에 없다.
특히 내림세인 유가는 배터리 사업 확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우선 배터리 제품의 주요 고객인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이 코로나19 사태로 전체적인 자동차 수요가 급감하면서 주문도 줄어들 게 뻔하다. 여기에 운영비가 내연기관 차량에 비해 효율적으로 평가됐던 전기차만의 장점 또한 사라지면서 판매에서도 불리해졌다. LG화학 관계자는 “배터리 부문에서 지난해 2배 가량 높은 15조원의 매출을 올리면서 업체 중에선 가장 빠르게 올해 손익분기점에 도달할 전망이었지만, 코로나19 위기로 매출 전망치가 계속 낮아지고 있어서 현재로선 장담할 수가 없다”고 걱정했다.
전기차 시장을 둘러싼 글로벌 환경이 갈수록 악화하면서 배터리 업체들은 사실상 위기경영 모드로 전환한 상태다. SK이노베이션이 석유사업 자회사 SK에너지의 울산콤플렉스 내 나프타분해시설 공정을 12월부터, 에틸렌프로필렌합성고무 공정을 2분기 내에 각각 가동을 중단하면서 전력 손실을 최소화하고 있다. LG화학은 유리기판 사업부 정리에 이어 액정화면(LCD) 패널에 부착해 빛 조절을 하는 필름인 편광판 사업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LG화학은 이어 올해 설비투자 규모도 당초 6조원에서 5조원 초·중반 수준으로 줄이면서 유동성 위기에 대비하고 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를 대체한다는 데에 이견이 없는 만큼,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는 반도체를 이어 한국 제조업을 이끌 먹거리임에 분명하다”며 “올해 배터리 시장은 열릴 것 같은데, 문제는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상반기를 버텨낼 수 있느냐의 여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박관규기자 ac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