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예술인노조 위원장인 연극배우 이종승씨는 지난 1월 이후로 무대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매달 잡혀 있던 공연이 코로나19 사태로 줄줄이 취소됐기 때문이다. 생계 때문에 택배 아르바이트와 건설 현장 일용직으로 나섰지만, 그나마도 일거리가 들쑥날쑥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이씨는 “남자는 육체 노동이라도 하지만, 여자 배우나 스태프는 아예 일자리가 없다”고 전했다.
20일 문화예술계 숙원이었던 예술인을 적용대상으로 포함시킨 고용보험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코로나19, 메르스, 사스 같은 예기치 않은 재난으로 일거리가 끊겼을 때 예술인도 실업급여를 받는 것은 물론, 출산ㆍ유산ㆍ사산으로 인한 출산전후급여도 받을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추산에 따르면 개정안으로 5만명 정도의 예술인이 혜택을 본다. 시행일도 공포 후 1년에서 6개월로 당겨졌다. 이르면 올 11월 고용보험 적용 대상인 예술인이 나온다는 얘기다.
예술계는 환영하는 분위기이면서도 좀 더 두고 보자는 입장이다. 구체적 내용은 앞으로 만들어질 시행령에 넘긴 상황이라 앞으로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미 정부와 문화계간 다른 목소리도 감지된다.
개정안은 ‘문화예술용역 계약을 체결하고, 자신이 직접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을 고용보험 대상에 포함시켰다.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실직 전 24개월 동안 고용보험 보험료를 내면서 일한 기간이 9개월 이상이어야 한다. 고용노동부는 예술인의 예술 활동 종사 기간이 연평균 4.7개월이라는 점을 감안해 9개월로 산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장에선 9개월 요건을 충족하기 어렵다고 본다. 예컨대 한 배역에 4, 5명씩 함께 캐스팅될 경우, 배우 한 명이 무대에 오르는 날만 따지면 9개월을 채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일한 날이 일정 정도 이상이면 1개월로 간주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지만, 그 일수 기준도 현장과 괴리가 크다. 무대에 오르기 전, 만들고 연습하고 준비하는 기간이 훨씬 더 긴 예술계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문화예술노동연대 오경미 사무국장은 “준비 기간을 포함하면 9개월 요건은 그리 어렵지 않다”며 “계약서에 준비 기간에 대한 조항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용역 계약이 다단계로 이뤄지거나 팀 단위로 이뤄지는 경우, 누가 사업주가 되느냐는 문제도 있다. 공연 제작사가 음향 회사와 계약하고 그 음향 회사가 프리랜서 스태프를 고용한다면, 그 스태프의 고용보험료 절반을 누가 내야 하느냐는 문제가 생긴다.
영세한 업계 특성을 감안한 지원책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제작사나 그 제작사로부터 하청받는 회사나 모두 사정이 어렵다 보니 보험료 부담이 적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한 공연제작사 대표는 “규모가 작은 업계 특성상 세무, 회계, 노무 업무 담당 직원을 따로 두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법 시행 초기 영세 사업주를 지원하는 대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각 분야마다 천차만별인 현실도 걸림돌이다. 영화계는 이미 표준계약서, 4대 보험이 자리잡았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냥 용역 계약인 경우가 많다. 미술계는 더하다. 1년에 한 번 전시회를 열기도 어려운데다, 계약서에 급여를 명시하는 사례도 거의 없다. 문체부는 각 분야별 실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현장 예술인과 협의하겠다는 입장이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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