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대작’ 대법 공개변론서 “소란 일으켜 죄송” 울먹이기도
화투그림 대작(代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가수 조영남(75)씨가 28일 법정에서 “화투 가지고 놀면 패가망신한다는 옛 어르신 말이 있는데, 제가 너무 오랫동안 화투를 가지고 놀았나 봅니다”며 고개를 숙였다. 1심과 2심에서 유ㆍ무죄 판단이 엇갈렸던 점을 감안해 대법원이 이날 공개변론을 열자 조씨는 직접 법정에 나와 입장을 밝혔다.
조씨의 대작 사건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검찰은 화가 송모씨 등이 그린 그림에 자기 서명만 넣은 작품을 판매해 총 1억8,100여만원을 챙긴 혐의(사기)로 조씨를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조씨는 송씨에게 1점당 10만원 상당을 주고 자신의 기존 작품을 그려오게 했고, 대작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작품을 판매했다. 1심은 조씨의 혐의를 유죄로 보고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지만, 2심은 지난해 8월 무죄를 선고했다.
1ㆍ2심이 완전히 엇갈리자 대법원은 조씨 측과 검찰을 불러 공개변론을 열었다. 검찰은 조씨의 행위가 그림 구매자를 속인 ‘사기 행위’라고 강조했다. 조씨가 △추상적 아이디어만 지시했을 뿐 상세한 지시나 감독을 하지 않았고 △같은 공간에서 작업이 이뤄지지도 않았으며 △액자까지 끼워질 정도로 사실상 완성된 작품을 받은 뒤 덧칠만 해 판매했다는 논리다.
검찰 측 참고인으로 출석한 신제남 한국전업미술가협회 자문위원장은 “어떤 미술 장르든 조수를 쓸 수 있지만, 대형 작품을 할 때는 같은 공간에서 감독 지시를 받아 이뤄지는 게 원칙”이라며 “아마추어가 전업작가를 고용해 조금 손 보는 척하고 사인하는 것은 작가적 양심이 결여된 수치스러운 행각”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조씨 측은 조씨가 오랜 기간 화투라는 소재를 활용해 작품 활동을 했고, 방송에서 조수를 활용한 자신의 작업방식을 말하기도 했다고 맞섰다. 조씨의 작품은 그림의 사실적 완성도보다는 개념이 더 중요한 팝아트 장르의 미술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조씨 측 참고인으로 나온 표미선 전 한국화랑협회 회장은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은 물건을 사진처럼 그리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조씨가 실재처럼 모사하는 방식의 작업을 한 게 아닌 이상 전업 작가를 조수를 쓴 것도 문제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조씨는 이날 법정에 직접 나와 “이런 소란을 일으킨 것에 정말 죄송하다”고 울먹이며 사과했다. 하지만 ‘고유한 아이디어를 표현한 창작물’이라는 주장은 굽히지 않았다. 그는 “피카소나 반 고흐가 ‘그림은 이렇게 그리는 것이다’고 단 한번도 말한 적이 없다”며 “제 그림은 화투를 통해 한국인의 애환을 표현한 작품으로 개념미술에 가깝다”고 강조했다.
대중의 관심이 집중된 이날 공개변론에 대법관들도 양측 주장에 귀를 기울였다. 김선수 대법관은 “이 사건은 피해자의 고소ㆍ고발로 개시된 사건이 아니다”고 지적하며 “구매자가 조씨가 직접 그린 작품으로 믿고 구매했다면, 민사적으로 검토될 문제 아니냐”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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