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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 아이콘' 내몰고 시정 홍보관 짓겠다는 경기 이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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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 아이콘' 내몰고 시정 홍보관 짓겠다는 경기 이천시

입력
2020.12.18 09:30
수정
2020.12.18 09:37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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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플란드 카페에 재계약 불가통보 후 명도 소송
인테리어 비용 3억 날리고 3년도 안 돼 문닫을 판
지자체 건물은 임대차보호 적용 안 돼 사각지대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이천시 소유의 건물. 이승엽 기자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이천시 소유의 건물. 이승엽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탓에 소상공인ㆍ자영업자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린 상황에서 경기 이천시가 시 소유 건물에 입주한 소상공인을 거리로 내몰아 논란이 일고 있다.

이천시가 해당 건물을 비우려는 목적은 '시 홍보관'을 만들기 위해서다. 절차대로 했다고는 하지만, 지방자치단체가 코로나 사태 와중에 시정 홍보를 위해 계약 만료 한 달 전에 갑자기 "나가라"고 통보한 것은 '갑질'과 다름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이천시, 계약 만료 한 달 앞두고 "재계약 불가"

16일 법원에 따르면 이천시는 코로나19 1차 유행이 한창이던 올해 2월 27일 시 소유의 서울 종로구 팔판동 백월빌딩(지하 2층 지상 4층)에서 카페 '라플란드'를 운영하는 권모씨와 조모씨에게 "재계약이 불가하니 계약이 만료 즉시 점포를 비워 달라"고 통보했다.

당시 라플란드의 계약 만료 시점은 3월 30일이어서, 가게를 비워야 하는 말미가 한 달에 불과했다. 또한 라플란드 측은 3억원의 인테리어 비용까지 투자한 상황에서 개업한 지 3년도 안 된 점포를 비우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권씨와 조씨가 가게를 비우지 않자, 이천시는 7월 법원에 건물인도(명도) 소송을 제기했다. 이천시는 이 건물에 입점한 4층의 의류업체에도 자리를 비워달라고 요구했다.

앞서 라플란드는 2017년 4월 이천시로부터 건물 관리· 운영권을 위임받은 월전미술문화재단과 지하 1층과 지상 1층을 빌리는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이천시는 이 곳에 시 홍보관과 직원들을 위한 서울출장소를 만들기로 했고, 모든 입점 업체에 재계약 불가 통보를 한 것이다. 현행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상 임차인에게는 10년의 계약 갱신 요구권이 보장되지만, 지자체 소유인 이 건물은 임대차보호법이 아니라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을 적용받는 탓에 계약 갱신 요구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법에는 갱신 요구권을 규정하는 조항 자체가 없다.

월전미술문화재단이 지난 2월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건물에 입주해 있는 소상공인에게 보낸 전대차 계약 종료 안내 통보. 독자 제공

월전미술문화재단이 지난 2월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건물에 입주해 있는 소상공인에게 보낸 전대차 계약 종료 안내 통보. 독자 제공


임대차보호법 적용 안되는 공유재산...임대 갑질 사각지대

라플란드는 단순한 카페가 아니라 이 일대를 대표하는 아이콘 같은 곳이다. 공연 기회가 없는 젊은 클래식 음악가들을 초청해 매주 작은 음악회를 열거나, 뮤지컬 '캣츠'의 오리지널 캐스트 불러 팬 미팅 자리를 주선하기도 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삼청동을 찾는 관광객이 급감하면서 공실이 늘어갔지만, 이 가게의 불빛만은 늘 밝게 켜져 있었다고 한다. 최근엔 서울시에서 진행하는 '공연 업계 회생 프로젝트 사업'의 일환으로 성악가들을 초청해 작은 콘서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라플란드를 연 권씨는 삼청동에 옷가게와 카페 등이 어우러진 편집숍을 여는 것이 평생의 꿈이었다. 그러던 중 권씨의 뜻을 알아 본 장학구 월전미술문화재단 이사장과 오랜 논의 끝에, 재단에서 운영 중인 이 건물에 큰 규모의 매장을 열기로 결정했다. 이 건물은 2008년 월전미술문화재단이 고(故) 월전 장우성 화백의 유지를 받들어, 이천시에 기부한 곳이다.

여러 대기업들도 눈독 들인 장소였으나, 재단은 삼청동 상권과 문화를 살릴 적임자로 권씨와 라플란드를 낙점했다. 계약 단위는 1년이었으나, 계약 연장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재단 측 말을 믿었다. 3·4층에서 영업 중인 음식점과 의류매장이 10년 이상 장기 영업 중이던 터라 권씨는 마음을 놓고 있었다.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이천시 소유의 한 건물 입구가 폐쇄돼 있다. 이승엽 기자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이천시 소유의 한 건물 입구가 폐쇄돼 있다. 이승엽 기자


3억 인테리어비용도 허공으로... 삼청동 인근 상인들도 반발

그런데 이천시 측의 날벼락 같은 명도 통보를 받고, 권리금은 커녕 억대의 인테리어 비용까지 날리게 된 권씨는 눈물부터 나왔다고 한다. 이천시는 그간 삼청동 상권이 쇠락하며 다른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인하할 때도 매년 5% 인상을 고집했고, 권씨는 한해 9,000만원에 이르는 임대료를 빼놓지 않고 부담했다고 한다.

이천시의 일방적인 건물 비우기에는 주변 상인들도 반발하고 있다. 특히 문화공간으로서 역할을 하던 라플란드가 나간 자리에 '시 홍보관'이 들어선다는 소식에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삼청동에서 한식 전문점을 운영하는 A씨는 "그나마 있던 상인들도 삼청동을 떠나는 판에 버티던 사람을 쫓아내고 있다"며 "코로나로 방문객이 더 줄어 곡소리가 나오는 판에, 누가 이천시 홍보관을 보러 삼청동에 오겠냐"고 비판했다. 국밥집 사장 오모(58)씨도 "라플란드 카페는 삼청동 지역 특화 및 도시 재생 사업의 핵심"이라며 이천시의 조치에 반대했다.

이에 대해 이천시는 재단 측과 지난해부터 건물 매각 및 홍보관 신설 계획에 대해 논의해 왔으며, 재단을 통해 상인들에게 이전부터 입장을 전달해 왔다고 밝혔다. 이천시 관계자는 "계약 만료에 따라 재계약 불가 통보를 한 것일 뿐 갑작스러운 일방 통보라는 주장은 잘못됐다"며 "절차상으로 문제가 없으며, 현재 민사 소송 중이서 자세한 내용은 밝히기 어렵다"고 해명했다.

이승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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